로시니는 왜 서른일곱에 오페라를 그만뒀을까? 『세비야의 이발사』의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는 『세비야의 이발사』, 『윌리엄 텔』 등 오페라 39편을 쓰고 서른일곱 무렵 오페라에서 물러나 그 뒤로 40년 가까이 살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로시니가 왜 오페라 쓰기를 그만두었는지는 아무도 확실히 모릅니다. 『세비야의 이발사』와 『윌리엄 텔』을 비롯해 오페라 39편을 만든 뒤 서른일곱 살 무렵 오페라에서 물러났는데, 그 이유는 지금까지도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역사가들은 지침, 병, 음악 유행의 변화, 이미 얻은 명성이 준 안정감 같은 여러 이유가 겹쳤을 것으로 봅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그 뒤로 40년 가까이 더 살며 파리에서 유명한 음악 모임을 열었고, 농담 삼아 '늙은이의 죄'라 부른 소품들을 계속 썼다는 사실입니다.
윤일에 태어나다
로시니는 1792년 2월 29일 이탈리아 아드리아해 연안의 페사로에서 태어났습니다. 윤일에 태어난 덕분에 말년에는 "진짜 생일은 몇 번밖에 못 치렀다"고 농담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가 음악가여서 그는 극장 속에서 자랐습니다.
눈부신 출세
그의 출세는 놀라울 만큼 빨랐습니다. 스무 살 남짓에 이미 이탈리아 곳곳의 극장을 위해 한 해에 여러 편의 오페라를 썼고, 평생 희극과 비극을 합쳐 39편을 남겼습니다. 흥얼거리게 되는 선율, 톡톡 튀는 리듬, 되풀이할수록 소리가 커지고 흥분이 고조되는 관현악에 관객들은 열광했습니다.
망한 첫 공연에서 명작으로
가장 유명한 희극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는 1816년 로마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첫날은 무대 사고와 관객의 야유로 엉망이었지만 곧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인공은 재치 있는 이발사 피가로로, "피가로! 피가로! 피가로!"를 외치는 등장 아리아는 오페라를 본 적 없는 사람도 만화나 광고에서 들어 봤을 것입니다.
베토벤과의 만남
1822년 그는 자신의 오페라가 큰 인기를 끌던 빈을 찾아 베토벤을 만났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베토벤과 독일어가 서툰 로시니의 대화는 쉽지 않았지만, 베토벤은 『이발사』 같은 희극을 더 쓰라고 권했다고 전해집니다.
파리와 『윌리엄 텔』
뒤에 유럽 오페라의 중심지 파리에 자리 잡은 그는 마지막 오페라 『기욤 텔(윌리엄 텔)』을 1829년 그곳에서 초연했습니다. 길고 무거운 작품이지만 서곡만은 따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특히 말 달리듯 빠른 마지막 부분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입니다.
수수께끼 같은 은퇴와 '늙은이의 죄'
『윌리엄 텔』 이후 그는 1868년까지 살았지만 오페라는 한 편도 쓰지 않았습니다. 건강과 우울, 혼란한 정치 상황, 오페라 취향의 변화, 그리고 더는 증명할 것이 없다는 마음까지 여러 이유가 거론되지만 본인은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음악은 놓지 않아 파리에서 토요일 밤 모임을 열고, 피아노 소품과 노래를 지어 '늙은이의 죄'라 이름 붙였습니다. 마지막 대작은 1863년의 『작은 장엄 미사』로, 1864년에 처음 연주되었습니다. 이름난 미식가이기도 해서 그의 이름이 붙은 요리도 있습니다. 1868년 11월 13일 파리 근교 파시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로시니로 배우는 우리말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쪽박을 차다 | 크게 망하다 | 첫 공연은 그야말로 쪽박을 찼다. |
| 기사회생 | 거의 망했다가 다시 살아남 | 오페라는 기사회생해 명작이 되었다. |
| 박수 칠 때 떠나라 | 잘될 때 물러나라 | 박수 칠 때 떠난 셈이다. |
| 유유자적 | 여유롭게 사는 모습 | 말년에는 유유자적하게 지냈다. |
| 입맛을 다시다 | 맛있는 것을 생각하며 군침을 삼키다 | 요리 이야기에 입맛을 다셨다. |
연습 과제: 『세비야의 이발사』처럼 처음엔 망했지만 결국 잘된 일을 "쪽박을 차다", "기사회생"을 넣어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