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 슈만은 작곡가였을까? 13살에 협주곡을 쓰고 61년간 무대에 선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은 19세기 독일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다. 13살에 피아노 협주곡을 시작했고 61년간 연주했다. 작곡을 멈춘 이유까지 정리했다.
그렇다. 클라라 슈만(1819–1896)은 19세기에 가장 존경받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다. 13살에 피아노 협주곡을 쓰기 시작했고, 가곡과 피아노곡, 피아노 삼중주, 바이올린 로망스를 남겼으며, 61년 동안 연주 활동을 이어 갔다. 오랫동안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로만 불렸지만, 그녀는 피아노로 대가족을 먹여 살리고 한 세대의 음악가를 길러 낸 독립된 예술가였다.
아버지가 설계한 어린 시절
클라라 요제피네 비크는 1819년 9월 13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는 피아노 교사, 어머니 마리아네는 성악가였고, 부모는 클라라가 다섯 살 때 이혼했다.
아버지의 교육은 철저했다. 클라라는 날마다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이론, 화성, 작곡, 대위법을 한 시간씩 배우고, 그 뒤에 두 시간을 더 연습했다. 당시 여자아이에게 작곡까지 가르치는 일은 드물었다. 이 혹독한 교육은 재능을 꽃피운 동시에 아버지의 강한 통제로 이어졌다.
아홉 살에 데뷔한 신동
클라라는 1828년 10월 28일, 아홉 살에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무대에 데뷔했다. 1831년부터 이듬해까지 아버지와 함께 파리까지 연주 여행을 했고, 도중에 바이마르에서 노년의 괴테 앞에서 연주해 메달을 받았다.
1838년 열여덟 살의 클라라는 빈에서 '오스트리아 왕실·황실 실내악 연주자' 칭호를 받았다. 또 악보 없이 외워서 연주한 초기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명이었는데, 당시 비평가들은 이를 특별한 일로 기록했다.
십 대가 쓴 피아노 협주곡
대표작인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 작품 7은 1833년 1월, 열세 살에 쓰기 시작해 1835년 9월에 완성했다. 초연은 1835년 11월 9일 라이프치히에서 멘델스존이 지휘하는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과 함께했고, 독주는 클라라 자신이 맡았다.
2악장 '로망스'는 관현악이 쉬고 피아노와 첼로만 연주하는 과감한 구성이며, 팀파니의 울림이 곧바로 마지막 악장으로 이어 준다.
재판으로 얻어 낸 결혼
아홉 살쯤 위인 로베르트 슈만은 1837년에 청혼했지만 아버지는 격렬히 반대했다. 두 사람은 법원에 소송을 냈고 결혼 허가를 받았다. 결혼식은 1840년 9월 12일, 클라라의 스물한 번째 생일 전날이었다. 이후 13년 동안 여덟 아이를 낳으면서도 연주는 멈추지 않았다.
결혼 이듬해인 1841년에는 시인 뤼케르트의 시에 붙인 가곡집을 부부가 함께 펴냈다. 클라라의 곡은 작품 12, 로베르트의 곡은 작품 37로 번호가 붙었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늘 로베르트의 작곡이 먼저였다. 로베르트 스스로도 집안일과 자신의 창작 생활이 아내의 작곡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적었다. 피아노를 치면 남편의 일을 방해하게 되는 집, 그것은 작곡가 클라라에게 작지 않은 벽이었다.
왜 작곡을 그만두었을까
원숙기의 작품으로는 《피아노 삼중주 사단조》 작품 17(1846)과 《세 개의 로망스》 작품 22(1853)가 있다. 그러나 1853년에 16곡을 쓴 것을 마지막으로, 남은 43년 동안은 편곡만 했다.
그녀는 작곡이 큰 기쁨이라고 적으면서도, 자신의 창작 재능을 더는 믿지 않게 되었고 여자는 작곡을 바라서는 안 된다고도 썼다. 재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시대의 기대가 펜을 멈추게 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가족을 지킨 연주자
1854년 2월 로베르트가 정신적으로 무너져 본 근처 엔데니히 요양원에서 마지막 2년을 보냈고, 1856년 7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클라라는 연주로 생계를 꾸렸다.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과 238회가 넘는 공연을 함께했고, 젊은 브람스의 작품을 여럿 초연했다.
1878년에는 프랑크푸르트 호흐 음악원의 첫 피아노 교사가 되었고, 교수진 가운데 유일한 여성으로 1892년까지 가르쳤다. 1896년 5월 20일 76세로 세상을 떠나 바람대로 본에 있는 로베르트 곁에 묻혔다. 1989년부터 유로화 도입 전까지 독일 100마르크 지폐에는 그녀의 얼굴이 실려 있었다.
편집자이자 교육자로 남긴 것
로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뒤 클라라는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출판사에서 나온 남편 작품집의 권위 있는 편집자가 되었다. 1831년부터 1889년까지의 연주회 프로그램이 1,300개 넘게 남아 있고, 1865년부터 1888년 사이에는 영국 순회 연주만 16번을 다녀왔다. 음악가의 길을 걸은 제자도 68명이 알려져 있다. 오늘날 그녀의 협주곡과 삼중주는 생전보다 훨씬 자주 연주되고 녹음된다.
클라라 슈만과 함께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신동 | 어릴 때부터 재능이 뛰어난 아이 | 클라라는 아홉 살에 무대에 선 신동이었다. |
| 외워서 연주하다 |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하다 | 그녀는 모든 곡을 외워서 연주했다. |
| 반대를 무릅쓰다 | 반대가 있어도 밀고 나가다 | 두 사람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
| 펜을 내려놓다 | 쓰는 일을 그만두다 | 그녀는 서른넷 무렵 작곡의 펜을 내려놓았다. |
| 생계를 꾸리다 | 돈을 벌어 살림을 이어 가다 | 클라라는 연주회로 생계를 꾸렸다. |
연습: 어릴 때 배운 것 하나를 떠올려 한국어로 세 문장을 써 보세요. '반대를 무릅쓰다'나 '생계를 꾸리다' 중 하나를 꼭 넣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