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은 왜 '교향곡의 아버지'일까? 수레 목수의 아들이 고전파를 만든 이야기

하이든은 100곡이 넘는 교향곡을 쓰고,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궁정 악장으로 약 30년간 이 형식을 다듬어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요제프 하이든(1732–1809)이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까닭은, 100곡이 넘는 교향곡을 쓰며 긴 생애 동안 교향곡을 고전파 관현악의 중심 형식으로 키워 냈기 때문입니다. '현악 4중주의 아버지', '소나타 형식의 아버지'라는 별명도 있고, 모차르트의 절친한 친구이자 젊은 베토벤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출발점은 악보도 읽지 못하는 부모를 둔 시골 수레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작은 마을 소년이 어떻게 런던의 환호를 받게 되었는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시골 마을의 소년

하이든은 1732년 3월 31일 헝가리 국경 가까운 오스트리아의 마을 로라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마티아스는 수레 목수이자 하프를 독학한 민요 애호가였고, 어머니 마리아는 백작 저택에서 요리사로 일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악보를 읽을 줄 몰랐지만 집에는 늘 노래가 있었습니다.

여섯 살 무렵 부모는 음악 교육을 위해 그를 하인부르크에서 교장 겸 합창 지휘자로 일하던 친척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노래와 하프시코드,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훗날 "자주 배가 고팠고 더러운 옷이 부끄러웠다"고 회상했습니다.

빈의 소년 성가대원

1739년 빈 슈테판 대성당의 음악 감독 게오르크 로이터가 소년의 노래를 듣고 그를 데려갔고, 하이든은 1740년부터 약 9년 동안 성가대원으로 지냈습니다. 하지만 본인 말로는 로이터에게 받은 작곡 수업이 단 두 번뿐이었다고 합니다.

1749년 무렵 변성기가 오자 그는 성가대에서 쫓겨났습니다. 다른 단원의 땋은 머리를 잘라 버린 장난이 핑계가 되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하루아침에 빈 한복판에서 일자리도 집도 없는 10대가 된 것입니다.

혼자 공부한 시절

이후 하이든은 레슨과 연주로 겨우 생계를 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작곡가 포르포라의 시종 겸 반주자로 일하면서, 푹스의 교재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으로 대위법을 독학했습니다. C. P. E. 바흐의 건반 소나타도 깊이 연구했습니다. 1757년 무렵 모르친 백작 가문의 악장이라는 첫 정규직을 얻었고, 여기서 첫 교향곡들을 썼습니다.

에스테르하지 가문에서 보낸 30년

1761년 하이든은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손꼽히는 부자 귀족 에스테르하지 가문에 들어가 1766년 정식 악장이 되었습니다. 니콜라우스 1세 밑에서 약 30년, 주로 헝가리 시골에 지은 화려한 에스테르하자 궁전에서 일했습니다.

작곡은 물론 오케스트라 운영, 가수 선발과 훈련, 궁정 오페라 공연까지 맡아 사실상 극단 감독 노릇을 했습니다. 일은 많았지만 매일 쓸 수 있는 실력 좋은 악단과 음악을 사랑하는 주군이 있었습니다. 하이든은 세상과 떨어져 마음껏 실험할 수 있었기에 "독창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고별' 교향곡 이야기

1772년, 후작이 에스테르하자 궁전에 예정보다 오래 머물자 아이젠슈타트에 아내를 두고 온 단원들은 집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하이든은 직접 부탁하는 대신, 마지막 아다지오에서 단원들이 한 명씩 연주를 멈추고 촛불을 끈 뒤 퇴장해 결국 바이올린 두 대만 남는 교향곡을 썼습니다. 드물게 올림바단조로 쓴 제45번 '고별'입니다.

하이든이 노년에 전기 작가들에게 들려준 바에 따르면, 후작은 이 '눈치'를 알아듣고 곧 궁정을 집으로 돌렸다고 합니다. 단원들이 그를 '파파 하이든'이라 부르며 따른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런던

1784년 무렵 하이든은 모차르트를 만나 나이 차를 넘어선 우정을 나눴고, 모차르트는 훗날 '하이든 4중주'로 불리는 작품들로 존경을 표했습니다. 1792년 빈에 온 젊은 베토벤도 그에게 배웠습니다.

1790년 주군이 세상을 떠나자 공연 기획자 잘로몬의 초청으로 런던에 갔습니다. 1791–92년과 1794–95년 두 차례 머물며 마지막 교향곡 12곡을 썼는데, 그중 '놀람' 교향곡 느린 악장에서 갑자기 터지는 큰 화음은 하이든식 유머의 가장 유명한 예입니다.

『천지창조』, 황제 찬가, 그리고 마지막

빈으로 돌아온 그는 오라토리오 『천지창조』(1798)와 『사계』(1801)를 완성했습니다. 1797년에 쓴 '황제 찬가'의 선율은 훗날 오늘날 독일 국가의 선율로 쓰이게 됩니다.

1809년 5월 31일, 나폴레옹 군대가 점령한 빈에서 77세로 눈을 감았습니다. 장례 직후 골상학 신봉자들이 그의 머리를 훔쳐 가는 일까지 벌어졌고, 머리가 유해와 다시 함께 묻힌 것은 1954년이었습니다.

하이든이 지금도 중요한 이유

하이든이 교향곡과 4중주를 '발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주제, 예상을 뒤집는 전개, 유머, 꼼꼼한 발전이라는 고전파의 '문법'을 다듬은 사람은 그였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그 바탕 위에 섰습니다. 작곡 수업은 두 번, 나머지는 교재와 끝없는 연습. 혼자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이보다 든든한 선례도 드뭅니다.

하이든과 함께 배우는 한국어 표현

표현 뜻 예문
눈치를 주다 말없이 뜻을 알리다 하이든은 음악으로 후작에게 눈치를 줬다.
눈치채다 숨은 뜻을 알아차리다 후작은 단원들의 마음을 눈치챘다.
독학하다 스승 없이 혼자 배우다 그는 대위법을 독학했다.
생계를 잇다 겨우 먹고살다 젊은 시절 레슨으로 생계를 이었다.
잔뼈가 굵다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해 익숙하다 그는 궁정 음악에서 잔뼈가 굵었다.

연습해 보기: 휴가를 더 받고 싶을 때 어떻게 '눈치를 줄지' 상상해 보세요. '눈치를 주다', '눈치채다'를 넣어 한국어 문장 세 개를 써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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