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행진곡은 누가 만들었을까? 바흐를 되살린 천재 멘델스존 이야기

펠릭스 멘델스존은 '결혼행진곡'을 쓰고, 16세에 8중주를 완성했으며, 잊혔던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되살린 작곡가입니다. 누나 파니의 이야기도 함께.

결혼식에서 신부가 입장할 때 흔히 듣는 '결혼행진곡'은 독일 초기 낭만주의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지휘자였던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이 만들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을 위해 쓴 음악 가운데 한 곡이며, 그 밖에도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 서곡 '헤브리디스', 교향곡 '이탈리아'와 '스코틀랜드', 오라토리오 '엘리야'가 유명합니다. 그는 음악사에서 손꼽히는 신동이었고, 1829년 스무 살의 나이에 거의 잊혔던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지휘해 바흐 음악이 다시 살아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철학자의 손자로 태어나다

멘델스존은 1809년 2월 3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유명한 유대인 철학자 모제스 멘델스존이었고, 아버지 아브라함은 은행가였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유대교를 떠난 상태였고, 펠릭스는 일곱 살 때 베를린에서 조용히 루터교 세례를 받았습니다. 1822년 부모도 세례를 받으면서, 가족은 외삼촌의 이름에서 따온 '바르톨디'라는 성을 덧붙였습니다. 유대계 출신과 기독교식 교육이라는 이 이중의 배경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오래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누나 파니

펠릭스는 베를린에서 누나 파니와 함께 자랐습니다. 파니 역시 일찍부터 재능을 보인 음악가이자 작곡가였습니다. 두 사람은 평생 음악으로 깊이 이어져 있었고, 파니는 동생의 작품에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1820년 편지에서 파니에게 음악은 "장식일 수밖에 없다"고 썼고, 펠릭스에게는 직업이 될 수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파니의 가곡 여섯 곡은 펠릭스의 이름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장면이 생겼습니다. 1842년 빅토리아 여왕이 그의 곡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이탈리아'를 불러 주고 싶다고 하자, 펠릭스는 그 곡이 사실 누나의 작품이라고 털어놓아야 했습니다. 파니는 450곡이 넘는 작품을 남겼지만, 결혼 후의 성인 헨젤이라는 자기 이름으로 작품집을 낸 것은 1846년이 되어서였습니다.

10대에 쓴 걸작

1819년부터 그는 베를린에서 카를 프리드리히 첼터에게 작곡을 배웠고, 12–14세 사이에 현악 교향곡 13곡을 썼습니다. 첼터의 소개로 만난 대문호 괴테는 소년에게 크게 감탄하며 모차르트에 견주었습니다.

열여섯 살인 1825년에는 현악 8중주를, 열일곱 살인 1826년에는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을 완성했습니다. 17년 뒤 그는 이 연극을 위한 부수 음악을 더했는데, 그 안에 '결혼행진곡'이 들어 있습니다. 반면 1827년 오페라 '카마초의 결혼'은 그의 생전에 단 한 번 공연되었고, 이 실패로 그는 오페라에서 멀어졌습니다.

바흐를 다시 무대로

19세기 초 바흐는 전문가들에게 존경받았지만 거의 연주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에게서 '마태 수난곡' 필사본을 선물받은 펠릭스는 1829년 베를린에서 이 곡을 지휘했습니다. 바흐가 세상을 떠난 뒤 손에 꼽을 만한 공연 가운데 하나였고, 라이프치히 밖에서는 처음이었습니다. 이 연주회는 독일 안팎에서 바흐 음악이 부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 공연장에서 바흐를 듣는다면, 스무 살 청년이 다시 이어 놓은 전통을 듣고 있는 셈입니다.

스코틀랜드, 이탈리아, 라이프치히

같은 해 그는 처음 영국을 찾았고, 이후 모두 열 번, 합쳐서 약 20개월을 머물렀습니다. 스코틀랜드 여행에서 서곡 '헤브리디스'(일명 '핑갈의 동굴')와 '스코틀랜드' 교향곡이 나왔고,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밝은 '이탈리아' 교향곡이 나왔습니다. 다만 '이탈리아'는 그가 만족하지 못해 생전에 출판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1835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지휘자가 되었고, 1843년에는 라이프치히 음악원을 세워 슈만과 모셸레스를 교수로 불렀습니다. 1837년 세실 장르노와 결혼해 다섯 자녀를 두었습니다. 1844년에 완성한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는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트 다비트를 위해 썼고, 그가 초연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아낀 음악가

영국에서 멘델스존은 큰 인기를 누렸고,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도 그의 음악을 사랑했습니다. 1846년 8월 26일에는 오라토리오 '엘리야'가 버밍엄 타운홀에서 초연되었습니다. 그가 떠난 뒤인 1858년, 여왕의 맏딸 빅토리아 공주와 프로이센 왕세자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결혼식에서 '결혼행진곡'이 연주되었고, 이 곡은 지금까지 결혼식의 단골 음악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른 죽음과 긴 그림자

1847년 5월 14일, 파니는 동생의 칸타타를 연습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큰 슬픔에 빠진 펠릭스도 같은 해 11월 4일 라이프치히에서 서른여덟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뒤 그의 명성은 음악과 상관없는 이유로 상처를 입었습니다. 1850년 바그너는 반유대주의 소책자 '음악에서의 유대성'으로 그를 깎아내렸고, 나치 정권은 그의 작품 연주와 출판을 금지했으며 1936년 라이프치히의 기념상을 철거했습니다. 2008년에 새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20세기 중반부터 재평가가 이어져, 지금은 출판된 작품 거의 전부를 음반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멘델스존으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표현 뜻 예문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크게 될 사람은 어릴 때부터 다르다 열여섯에 8중주를 쓴 멘델스존을 보면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피는 못 속인다 타고난 성품이나 재능은 드러난다 남매가 모두 작곡가라니 피는 못 속인다.
시대를 앞서가다 남보다 먼저 새로운 일을 하다 그는 바흐를 되살리며 시대를 앞서갔다.
공을 돌리다 자기 업적을 남의 덕으로 인정하다 그는 여왕 앞에서 누나에게 공을 돌렸다.
세월이 흘러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세월이 흘러도 '결혼행진곡'은 사랑받는다.

연습: 주변의 재능 있는 사람을 떠올리며 '피는 못 속인다'와 '시대를 앞서가다'를 넣어 세 문장을 써 보세요.

이 인물로 언어 배우기

주제별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