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슈만의 생애: 손가락 부상, '노래의 해', 그리고 엔데니히 요양원
로베르트 슈만은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이자 음악 평론가다. 손가락 이상으로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어린이 정경》과 가곡을 남긴 뒤 46세에 세상을 떠났다.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은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음악 평론가다. 오른손 손가락이 점점 마비되면서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작곡과 비평에 인생을 걸었다. 1854년에는 라인강에 몸을 던졌다가 구조되었고, 스스로 원해 본 근처의 요양원에 들어가 2년 뒤 46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 짧은 생애 동안 그는 19세기에서 가장 개인적이고 시적인 피아노곡과 가곡을 남겼다.
법률 대신 음악을 고른 서점집 아들
슈만은 1810년 6월 8일 작센 왕국의 츠비카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아우구스트 슈만은 서점 주인이자 출판인, 작가였고, 로베르트는 다섯째이자 막내였다. 책에 둘러싸여 자란 덕분에 문학을 평생 사랑했고, 많은 작품이 시와 소설에서 출발한다.
일곱 살에 동네 오르가니스트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뜻에 따라 1828년 라이프치히 대학교 법학과에 들어갔고, 이듬해 하이델베르크로 옮겼다. 라이프치히에서는 피아노 교사 프리드리히 비크에게 배웠고, 1830년 마침내 법률이 아닌 음악을 택했다.
손가락 하나가 바꾼 운명
그의 목표는 연주 여행을 다니는 피아니스트였다. 그런데 오른손 손가락 하나 이상이 점점 마비되면서 그 꿈은 끝났다. 원인은 지금도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이 좌절이 없었다면 작곡가 슈만도 없었을지 모른다. 연주에 쏟으려던 열정을 그는 모두 작곡에 쏟아부었다.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
슈만은 글솜씨도 뛰어났다. 1834년 음악 잡지를 함께 창간했고, 1835년 1월부터는 《음악신보》를 혼자 맡아 약 10년 동안 편집했다.
그는 잡지에 가상의 단체 '다비드 동맹'을 등장시키고 실제 친구들도 회원으로 넣었다. 자기 자신도 두 인격으로 나눴다. 충동적이고 열정적인 플로레스탄, 온화하고 꿈꾸는 오이제비우스다. 1835년에 완성한 피아노곡집 《사육제》 작품 9에는 이 두 사람이 곡 제목으로 나온다.
《어린이 정경》과 《트로이메라이》
1837년의 《크라이슬레리아나》 작품 16, 1838년의 《어린이 정경》 작품 15처럼 그의 대표 피아노곡은 대부분 1830년대에 나왔다. 《어린이 정경》은 서른 곡쯤 되는 소품 가운데 13곡을 골라 묶은 것이다. 슈만은 클라라에게, 그가 "가끔 어린아이 같다"는 그녀의 말에서 이 곡들이 나왔다고 털어놓았다.
곡 제목은 작곡을 마친 뒤에 붙였고, 슈만은 그것을 연주자를 위한 '섬세한 힌트'일 뿐이라고 했다. 일곱 번째 곡 《트로이메라이》(꿈)는 그의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가 되었고, 1944년 독일 전기 영화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클라라와의 결혼, 그리고 '노래의 해'
1836년 1월 슈만은 비크의 딸이자 이름난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았다. 몇 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법원은 아버지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다고 판결했고, 두 사람은 1840년 9월 12일 결혼했다.
그해 1840년은 '노래의 해'로 불린다. 하이네의 시에 붙인 16곡의 《시인의 사랑》, 샤미소의 시에 붙인 8곡의 《여인의 사랑과 생애》 같은 가곡이 쏟아졌다. 이어 교향곡 1번 《봄》이 1841년 3월 31일 멘델스존의 지휘로 초연되었고,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는 1845년에 완성되었다.
뒤셀도르프와 젊은 브람스
1850년 4월, 안정된 수입을 바라며 뒤셀도르프의 음악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수줍은 성격과 정신적 불안정 때문에 지역 음악가들과 잘 지내지 못했고, 3년 만에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같은 해인 1853년, 스무 살의 브람스가 슈만 부부를 찾아왔다. 깊이 감탄한 로베르트는 글 〈새로운 길〉을 써서 무명의 청년을 높이 평가했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글이 되었다.
병, 라인강, 그리고 엔데니히
슈만은 평생 여러 차례 정신적 위기를 겪었고, 1843년 초에도 심각한 상태였다. 드레스덴 의사의 보고서에는 불면, 전신 쇠약, 청각 이상, 떨림, 여러 가지 공포증이 적혀 있다.
1854년 2월 27일 그는 라인강에 몸을 던졌고 어부들에게 구조되었다. 3월 4일 본인의 요청으로 본 근처 엔데니히의 사립 요양원에 들어갔다. 클라라는 1856년 7월 29일 그가 세상을 떠나기 겨우 이틀 전에야 남편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기록된 사인은 폐렴이다. 46년의 삶이 남긴 가곡과 교향곡, 피아노곡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연주된다.
슈만과 함께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꿈을 접다 | 바라던 목표를 포기하다 | 그는 손가락 때문에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었다. |
| 전환점 | 방향이 바뀌는 중요한 순간 | 손 부상은 그의 인생에서 전환점이었다. |
| 정성을 쏟다 | 마음과 힘을 다하다 | 그는 가곡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았다. |
| 생각에 잠기다 | 깊이 생각하다 | 《트로이메라이》는 생각에 잠긴 사람 같은 곡이다. |
| 재능을 알아보다 | 남의 능력을 먼저 발견하다 | 슈만은 젊은 브람스의 재능을 알아보았다. |
연습: 내 인생의 '전환점'을 한국어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 '정성을 쏟다'도 함께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