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타가와 히로시게는 누구? '도카이도 53역참'과 '히로시게 블루', 고흐가 따라 그린 우키요에 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는 《도카이도 53역참》과 《명소 에도 100경》으로 알려진 에도 시대 우키요에 화가입니다. 그의 생애와 대표작, 고흐와 모네에게 준 영향을 정리합니다.
우타가와 히로시게(1797–1858)는 일본 에도 시대의 우키요에 화가로, 우키요에의 마지막 위대한 거장으로 꼽히며 가로 형식의 풍경화 연작 《도카이도 53역참》과 세로 형식의 연작 《명소 에도 100경》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미인이나 인기 배우를 주로 그리던 당시 우키요에와 달리 길과 강, 비와 눈이 있는 풍경을 서정적으로 그렸고, 그 판화는 마네와 모네가 수집해 연구하고 빈센트 반 고흐가 따라 그릴 만큼 서양 회화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소방 관리의 아들에서 화가로
히로시게의 본명은 안도 도쿠타로입니다. 그는 에도의 정화소(定火消) 저택에서 일하던 하급 관리 안도 겐에몬의 아들로 태어났고, 1809년 어머니를 잃고 같은 달 아버지가 은퇴하자 열세 살(세는 나이)에 소방 관리 직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열다섯 살 무렵 초대 우타가와 도요쿠니의 문하에 들어가려 했지만 제자가 가득 차 있어 거절당하고, 우타가와 도요히로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듬해인 1812년 스승과 자신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딴 '우타가와 히로시게'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배우 그림과 미인화를 그렸지만, 1828년 스승 도요히로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풍경화를 주로 그렸습니다.
《도카이도 53역참》은 어떤 작품인가
도카이도는 쇼군이 있던 에도와 천황이 있던 교토를 잇는 가장 중요한 길로, 길을 따라 말과 음식, 잠자리를 제공하는 역참 53곳이 있었습니다. 1832년 히로시게는 조정에 바칠 말을 운반하는 공식 사절단에 끼어 이 길을 따라 교토까지 갔고, 돌아와서 역참마다 한 장씩, 여기에 출발점과 도착점을 더해 모두 55장의 연작을 만들었습니다. 다만 지금 일본 학계에서는 이 여행 이야기를 의심스럽게 보기도 합니다.
호에이도판(1833–1834)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우키요에 연작입니다. 새 판화 한 장 값은 구리 동전 12–16닢으로, 짚신 한 켤레나 국 한 그릇 값과 비슷했습니다. 인기가 워낙 높아서 히로시게는 이후 도카이도를 주제로 30가지쯤 되는 서로 다른 연작을 만들었습니다.
'히로시게 블루'란
히로시게의 그림은 대담한 구도와 함께 푸른색, 특히 쪽빛의 아름다움으로 서양에서 높이 평가받습니다. 이 선명한 파랑은 일본 전통의 쪽 염료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사실은 당시 유럽에서 들여온 새 안료인 '베로 아이', 곧 프러시안 블루입니다. 목판화에서는 유화보다 색이 선명하게 살아나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재팬 블루', 혹은 페르메이르의 청금석 파랑에 빗대어 '히로시게 블루'라고 불렀습니다. 이 색은 인상파와 아르누보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어 자포니즘 유행을 이끈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명소 에도 100경》과 반 고흐
1856년 히로시게는 "세상을 등지고" 불교 승려가 되었고, 같은 해 《명소 에도 100경》을 시작했습니다. 이 연작은 출판업자의 딸과 사랑에 빠진 부유한 승려가 미리 돈을 내 주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반 고흐는 일본 판화를 수백 장 모았는데, 그중 열두 장이 히로시게의 작품이었습니다. 1887년 여름에는 히로시게의 《가메이도 매화정원》과 《오하시 아타케의 소나기》를 그대로 따라 그렸습니다. 이 모사를 거치며 고흐는 섞지 않은 색을 칠하고, 다른 인상파 화가들이 피하던 검은색을 과감히 쓰고, 윤곽선의 힘을 되살렸습니다. 히로시게의 양식은 20세기 러시아 예술 운동인 미르 이스쿠스트바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마지막 날들과 남긴 것
히로시게는 1858년 에도에 콜레라가 크게 번지던 때 6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염병이 직접적인 사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친구인 3대 우타가와 도요쿠니가 그린 추모 초상에는, 죽으면 서방 정토의 명소를 돌아보고 싶다는 뜻의 마지막 노래가 남아 있습니다.
8,0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지만 그는 부유하지 않았습니다. 받는 보수가 다른 인기 화가들보다 적어 수입이 일용직 노동자 임금의 두 배 정도에 불과했고, 유언에는 빚을 갚으라는 지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우키요에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여겨지며, 특히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의 서구화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인물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문하에 들다 | 스승의 제자가 되다 | 히로시게는 도요히로의 문하에 들었다. |
| 눈길을 끌다 |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다 | 선명한 파랑이 눈길을 끈다. |
| 한 시대를 풍미하다 | 한때 크게 유행하다 | 그의 풍경화는 한 시대를 풍미했다. |
| 발자취를 남기다 | 업적이나 흔적을 남기다 | 히로시게는 서양 미술에도 발자취를 남겼다. |
| 청출어람 |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 | 히로시게의 풍경화는 청출어람이라 할 만하다. |
연습: 내가 잘 아는 거리나 길 하나를 골라 "눈길을 끌다"와 "한 시대를 풍미하다"를 넣어, 히로시게라면 어떻게 그렸을지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