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오카 시키는 누구? 하이쿠를 근대 문학으로 만든 시인, '감을 먹으니 종이 울리네'와 야구 사랑

마사오카 시키는 '사생'을 내세워 하이쿠와 단카를 새롭게 바꾼 메이지 시대 시인입니다. 대표 하이쿠의 뜻과 나쓰메 소세키와의 우정, 병상의 마지막 나날을 정리합니다.

마사오카 시키(1867–1902)는 하이쿠, 단카, 신체시, 소설, 평론, 수필 등 많은 저작을 남기며 일본 근대 문학에 큰 영향을 준 메이지 시대의 시인입니다. 그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 그리는 '사생(写生)'을 내세워 낡은 형식으로 여겨지던 하이쿠를 정식 문학의 자리에 올려놓았고, 짧은 생애 동안 2만 수 가까운 하이쿠를 지었습니다. 마쓰오 바쇼, 요사 부손, 고바야시 잇사와 함께 하이쿠의 4대 거장으로 꼽기도 합니다.

마쓰야마에서 도쿄로

시키는 이요국 온센 군 후지와라신 정(지금의 에히메현 마쓰야마시)에서 옛 마쓰야마 번사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872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외할아버지인 유학자 오하라 간잔의 사숙에서 한서를 배웠고, 자유민권운동의 영향으로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1883년 중학교를 그만두고 상경해 도쿄대 예비문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나쓰메 소세키와 동창이 되었습니다. 1890년 도쿄제국대학 철학과에 진학했다가 이듬해 국문과로 옮겼고, 이 무렵부터 '시키'라는 이름으로 하이쿠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시키'라는 이름은 왜 붙었을까

'시키(子規)'는 두견새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결핵으로 피를 토한 자신을, 울면서 피를 토한다고 전해지는 두견새에 빗대어 그 한자 표기를 호로 삼았습니다. 그는 평생 54가지나 되는 호를 썼다고 스스로 적어 두었습니다.

하이쿠 혁신과 '사생'

대학을 그만둔 뒤 1892년 신문 《니혼》의 기자가 되었고, 이듬해 〈닷사이쇼오쿠 하이와〉를 연재하며 하이쿠 혁신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하이쿠나 단카 같은 짧은 전통 시가 근대 사회에서 시들어 간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시키는 하이쿠도 다른 문학과 같은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하이쿠를 분명한 문학의 한 갈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는 옛 유파의 말장난이나 공상 대신 자연을 사실적으로 관찰하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진부한 하이쿠를 비판하며 바쇼의 시정을 높이 평가했고, 에도 시대 문헌을 뒤져 잊혀 가던 요사 부손을 다시 발굴했습니다. 1897년에는 그의 호에서 이름을 딴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가 창간되었고, 뒤에 제자 다카하마 교시가 이어받았습니다.

대표작 '감을 먹으니 종이 울리네 호류지'

시키의 가장 유명한 하이쿠는 「柿くへば鐘が鳴るなり法隆寺(가키 쿠에바 가네가 나루나리 호류지)」로, 바쇼의 '오래된 연못' 하이쿠와 나란히 하이쿠의 대명사로 꼽힙니다. 계절어는 가을의 감입니다. 호류지 앞 찻집에서 쉬며 감을 먹고 있는데 마침 호류지의 종이 울려 가을을 느꼈다는 뜻이며, '먹으니'는 그냥 이어지는 상황을 말할 뿐 감을 먹어서 종이 울렸다는 인과 관계는 아닙니다.

이 하이쿠에는 우정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1895년 청일전쟁 종군 기자로 건너갔던 시키는 돌아오는 배에서 피를 토하고 고베에서 입원한 뒤 고향 마쓰야마로 돌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중학교 교사로 와 있던 소세키의 하숙에 50일쯤 머물렀는데, 소세키는 2층, 시키는 1층에 살며 날마다 하이쿠 모임을 열었습니다. 10월 말 도쿄로 돌아가는 길에 나라에 며칠 머문 것이 이 하이쿠로 이어졌습니다.

시키는 감을 무척 좋아해서 학생 시절에는 한 번에 일고여덟 개씩 먹곤 했다고 합니다. 다만 호류지를 찾은 날은 비가 왔기 때문에, 이 하이쿠는 실제 장면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2005년 일본 전국과수연구연합회는 시키가 이 하이쿠를 지은 날로 여겨 10월 26일을 '감의 날'로 정했습니다.

야구를 사랑한 시인

시키는 일본에 야구가 막 들어왔을 때의 열성 선수였고, 포지션은 포수였습니다. 1889년 피를 토할 때까지 야구를 계속했습니다. 어릴 적 이름 '노보루'에 빗대어 '야구(野球)'라는 두 글자를 '노보루'로 읽는 호를 쓰기도 했는데, 이는 베이스볼이 '야구'로 번역되기 4년 전인 1890년의 일입니다. 2002년에는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올랐습니다.

병상에서 보낸 마지막 날들

1897년 무렵부터 시키는 자리에 누워 지냈고, 1901년쯤 병이 더 깊어져 척추 결핵을 앓으며 모르핀으로 통증을 견뎠습니다. 그래도 붓을 놓지 않고 수필 《병상육척》을 썼는데, 죽음을 앞둔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감상 없이 객관적으로 그린 기록으로 지금도 읽힙니다. 1902년 9월 19일 34세로 세상을 떠났고, 도쿄 다바타의 다이류지에 묻혔습니다. 마지막 하이쿠에 수세미가 나와 그의 기일은 '수세미 기일(헤치마키)'이라고 불립니다.

이 인물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표현 뜻 예문
있는 그대로 꾸미지 않은 본래 모습대로 시키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읊었다.
새 바람을 일으키다 새로운 흐름을 만들다 그는 하이쿠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붓을 놓지 않다 글쓰기를 멈추지 않다 병상에서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막역한 사이 허물없이 아주 친한 사이 시키와 소세키는 막역한 사이였다.
천고마비 가을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찜, 좋은 가을 날씨 천고마비의 계절에 감 하이쿠를 떠올린다.

연습: 좋아하는 과일 하나로 세 줄짜리 짧은 시를 지어 보고, "있는 그대로"와 "새 바람을 일으키다"를 넣어 그 시를 두 문장으로 설명해 보세요.

마사오카 시키 이야기로 언어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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