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튜링, 4개의 장면으로 보는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
1912년 런던에서 태어난 앨런 튜링은 튜링 기계로 계산 개념을 형식화하고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했지만, 1952년 동성애 유죄 판결로 몰락한 뒤 41세에 사망했다.
앨런 튜링은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 논리학자, 암호학자, 철학자로, 1912년 6월 23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954년 6월 7일 4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튜링 기계라는 개념으로 알고리즘과 계산이라는 추상적 아이디어를 형식화했고, 이 업적 때문에 오늘날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삶을 이해하려면 네 개의 장면을 순서대로 따라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1. 13세 소년이 도출한 계산 형식
튜링은 13살 때 이미 역탄젠트 함수의 무한한 연속을 어림잡을 수 있는 계산 형식을 스스로 도출해냈다. 이는 그가 정규 교육 과정을 앞서 나가는 수학적 직관을 이미 어린 나이에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후 그는 1931년부터 1936년까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1933년에는 중심극한정리를 증명하여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특별연구원으로 선출되었다. 이 시기의 성취는 훗날 그가 논리학의 근본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기초 체력을 마련해 주었다.
2. 튜링 기계와 결정가능성 문제
1936년, 튜링은 결정가능성 문제에 대한 부정적 증명을 발표한 뒤 프린스턴 대학교로 건너갔다. 그는 1936년부터 1939년까지 프린스턴에서 수학했고, 이 기간 동안 알론조 처치와 존 폰 노이만을 만났다. 이때 그가 고안한 튜링 기계는 무한히 이어진 띠와 그 위의 기호를 읽고 수정하는 기계로 이루어진 사고 실험이었다. 이 단순한 모델은 이후 모든 컴퓨터가 무엇을 계산할 수 있고 무엇을 계산할 수 없는지를 가늠하는 이론적 기준이 되었다.
3. 전쟁 속의 암호학자, 에니그마를 깨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튜링은 독일군의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봄베라는 암호 해독기를 도입해 에니그마 해독에 성공했고, 이 성과는 전쟁의 흐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45년 10월 1일, 그는 국립물리연구소에서 영국 최초의 컴퓨터를 제작하기 위한 수학 부서 창설을 추진했다. 이 공로로 1946년에는 대영 제국 훈장 4등급을 수훈했다.
4.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그리고 죽음
1950년 튜링은 '마인드' 저널에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제안한 튜링 테스트는 기계의 답변이 얼마나 인간다운지를 평가하는 실험으로, 오늘날까지 인공지능 논의의 출발점으로 인용된다. 그러나 그의 삶은 1952년 동성애 혐의로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급격히 무너졌다. 그는 감옥 대신 화학적 거세를 선택했고, 1954년 자택에서 치사량의 사이안화 칼륨을 먹고 사망했다. 그로부터 약 60년이 지난 2013년 12월 24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튜링의 동성애 죄를 사면했다.
남겨진 것들
튜링이 세상을 떠난 지 12년이 지난 1966년부터 ACM은 컴퓨터 과학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게 튜링상을 수여하고 있다. 이 상은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여겨지며, 그의 이름을 딴 것 자체가 그가 이 학문 전체의 토대를 놓았다는 사실을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