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의 심장은 왜 바르샤바에 있을까? 스무 살에 조국을 떠난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심장은 왜 바르샤바에 있을까? 스무 살에 조국을 떠난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1830년 폴란드를 떠나 다시 돌아가지 못했지만, 심장만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이유와 피아노에 바친 39년의 삶을 따라가 본다.

쇼팽의 심장이 바르샤바에 있는 이유는 그 자신이 그렇게 원했기 때문이다. 프레데리크 쇼팽은 1830년 11월, 스무 살에 폴란드를 떠난 뒤 한 번도 돌아가지 못하고 파리에서 짧은 생을 마쳤다. 1849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주치의가 심장을 꺼냈고, 1850년 누나 루드비카가 알코올에 담긴 심장을 그의 뜻대로 폴란드로 가져갔다. 지금 그 심장은 바르샤바 성십자가 성당의 기둥 안에 있고, 몸은 파리 페르라셰즈 묘지에 묻혀 있다.

몸은 프랑스에, 마음은 폴란드에. 이보다 그의 삶을 잘 요약하는 장면은 없을 것이다.

프랑스인 아버지, 폴란드인 어머니

쇼팽은 바르샤바 서쪽의 작은 마을 젤라조바 볼라에서 태어났다. 교구 기록에는 1810년 2월 22일로 되어 있지만 가족은 3월 1일에 생일을 챙겼고, 지금은 이 날짜가 널리 받아들여진다. 아버지 니콜라는 로렌 출신 프랑스인으로 1787년 폴란드로 이주했고, 어머니 유스티나는 폴란드인이었다. 가족은 그가 갓난아기일 때 바르샤바로 옮겼고, 그는 두 언어와 두 문화 사이에서 자랐다.

일곱 살에 무대에 선 신동

첫 스승은 체코 출신 피아니스트 지브니였다. 일곱 살에 이미 공개 연주회를 열었고, 1817년에는 폴란드 춤곡인 폴로네즈 두 곡을 작곡했다. 1826년부터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작곡가 엘스네르에게 배웠는데, 1829년 그의 졸업 평가서에는 "뛰어난 재능, 음악적 천재"라고 적혀 있었다.

떠난 지 몇 주 만에 닫힌 귀국길

1830년 11월 2일 쇼팽은 해외에서 활동하려고 바르샤바를 떠났다. 몇 주 뒤 러시아 지배에 맞선 11월 봉기가 일어났다가 진압됐고, 그는 다시는 조국에 돌아가지 못했다. 빈을 거쳐 1831년 10월 5일 파리에 도착했을 때, 슈만은 이미 음악 잡지에 "여러분, 모자를 벗으시오. 천재요!"라고 그를 소개한 상태였다.

무대를 싫어한 스타

1832년 2월 26일 파리에서 데뷔했지만, 평생 공개 연주는 서른 번 정도에 그쳤다. 큰 연주회장보다 귀족들의 살롱을 좋아했고, 레슨과 악보 출판으로 생계를 꾸렸다. 화려한 비르투오소 리스트와는 가깝지만 미묘한 친구 사이였고, 1833년부터 1841년까지 일곱 번 함께 무대에 섰다. 리스트가 큰 홀을 들썩이게 했다면, 쇼팽의 음악은 작은 방에서 귀 기울이는 사람을 위한 음악 같았다.

가르칠 때는 하나의 정해진 주법을 강요하지 않고 손가락의 독립을 중시했다. 그의 연습곡은 겹3도, 옥타브, 같은 음 연타 같은 기술을 익히려고 쓴 곡이지만, 그 자체로 훌륭한 연주곡이다.

조르주 상드와 노앙의 여름

1838년 쇼팽은 소설가 조르주 상드와 연인이 됐다. 1838–39년 겨울을 마요르카섬에서 보냈고, 1839년부터 1846년 무렵까지 여름마다 프랑스 중부 노앙에 있는 그녀의 집에 머물며 원숙기의 많은 작품을 썼다. 두 사람은 1847년에 헤어졌다.

거의 피아노만을 위한 음악

그의 작품은 거의 모두 피아노 독주가 들어간다. 기악 발라드라는 장르를 확립한 인물로 꼽히며, 마주르카, 왈츠, 녹턴, 폴로네즈, 연습곡, 전주곡, 소나타 등 230곡 넘게 남아 있다. 슈만은 쇼팽의 작품을 "꽃 속에 숨긴 대포"라고 표현했다. 마주르카와 폴로네즈는 폴란드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음악으로 자주 들린다.

서른아홉의 죽음, 그리고 심장의 여정

평생 몸이 약했던 쇼팽은 1842년 무렵부터 병이 깊어졌다. 1848년 11월 16일 런던 길드홀에서 폴란드 난민을 위한 자선 연주를 한 것이 마지막 공개 무대였다. 1849년 10월 17일 파리에서 서른아홉 살로 숨졌고, 사망 증명서에는 결핵이라고 적혔다. 파리 마들렌 성당의 장례식에서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불렸고, 초대장이 없는 3천 명 넘는 사람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심장은 1879년 성십자가 성당 기둥에 봉안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가져갔다가, 그의 기일인 1945년 10월 17일에 성당으로 돌아왔다. 바르샤바에서는 1927년부터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열리고, 1955년부터는 5년마다 오직 그의 작품으로만 경연한다. 2015년에는 조성진이 우승했다.

쇼팽으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음악 이야기는 한국어로 대화를 시작하기 좋은 주제다.

표현 뜻 예문
가슴을 울리다 깊이 감동시키다 그 녹턴이 가슴을 울렸다.
고향을 그리워하다 멀리 떠난 고향을 보고 싶어 하다 그는 파리에서 늘 고향을 그리워했다.
귀를 기울이다 주의해서 듣다 모두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타고난 재능 태어날 때부터 가진 능력 그녀는 타고난 재능이 있다.
소름이 돋다 감동해서 몸이 짜릿해지다 마지막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다.

연습해 보기: 쇼팽의 녹턴 한 곡을 듣고 느낀 점을 한국어 세 문장으로 써 보자. '가슴을 울리다'나 '소름이 돋다'를 넣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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