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는 어떤 사람일까? '달빛'의 작곡가가 '인상주의'라는 말을 싫어한 이유
클로드 드뷔시는 '달빛', '바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로 화성의 규칙을 바꾼 프랑스 작곡가입니다. 인상주의라는 이름을 거부한 이유와 그의 삶.
클로드 드뷔시(1862–1918)는 화성을 '규칙'이 아니라 '색채'로 다뤄 서양 음악의 소리를 바꾼 프랑스 작곡가입니다. 그의 대표작 '달빛'(Clair de lune)은 1890년 무렵 쓰기 시작한 피아노곡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의 셋째 곡으로, 제목은 시인 폴 베를렌의 같은 이름의 시에서 따왔습니다. 비평가들은 그림에 빗대어 그의 음악을 '인상주의'라고 불렀지만, 드뷔시는 이 말을 몹시 싫어해서 그런 말을 쓰는 사람은 바보라고까지 했습니다.
파리 근교의 소년과 감옥에 간 아버지
드뷔시는 1862년 8월 22일 파리 서쪽의 생제르맹앙레에서 다섯 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1870–71년 그의 아버지는 혁명 정부였던 파리 코뮌에 가담했고, 코뮌이 무너진 뒤 징역 4년을 선고받아 1년을 복역했습니다. 집안은 어수선했지만 아이의 재능은 감출 수 없었습니다. 1872년, 겨우 열 살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습니다.
폰 메크 부인과 로마 대상
학생 시절인 1880년부터 1882년까지 여름마다, 그는 차이콥스키의 후원자로 유명한 부호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의 집에서 전속 피아니스트로 일하며 유럽 곳곳과 모스크바를 다녔습니다.
1884년에는 칸타타 '탕자'로 젊은 작곡가들의 등용문인 로마 대상을 받았습니다. 상의 일부였던 로마 메디치 빌라 체류는 그에게 숨 막히는 시간이었고, 그는 훗날 숙소를 "끔찍했다"고 적었습니다.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이 이때부터 드러난 셈입니다.
바그너, 그리고 자바의 가믈란
같은 시대의 많은 젊은 음악가처럼 드뷔시도 바그너에게 빠져 1888년과 1889년 바이로이트 축제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곧 바그너를 흉내 내는 데는 미래가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새 길을 보여 준 것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들은 자바의 가믈란이었습니다. 징과 금속 건반 악기가 독특한 음계로 겹겹이 울리는 소리는 이후 그의 음악의 질감에 오래 흔적을 남겼습니다.
'달빛'과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달빛'의 처음 제목은 '감상적인 산책'이었고, 모음곡은 여러 번 고친 끝에 1905년에야 출판되었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판타지아'(1940)에 쓰일 예정이었으나 상영 시간 때문에 빠졌고, 그 장면은 나중에 다른 영화에서 다시 쓰였습니다.
1894년 12월에는 관현악곡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이 초연되었는데, 많은 사람이 이 곡을 그의 첫 관현악 걸작으로 꼽습니다. 느긋하게 떠다니는 듯한 첫 부분은 흔히 현대 음악이 시작되는 소리로 이야기됩니다.
'펠레아스', '바다', 그리고 독설가 크로슈 씨
대중에게 크게 인정받은 작품은 그가 완성한 유일한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로, 1902년 4월 30일 파리 오페라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화려한 아리아 대신 인물들은 대화하듯 노래하고, 그 둘레를 안개 같은 관현악이 감쌉니다.
1901년부터는 '크로슈 씨'라는 필명으로 음악 비평을 썼습니다. 괴팍한 가상의 비평가를 내세운 이 글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책으로 묶였습니다. 1905년 10월 파리에서 초연된 관현악곡 '바다'는 처음에는 평가가 엇갈렸습니다.
스캔들과 딸 '슈슈'
그의 사생활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오래 함께 살던 가브리엘 뒤퐁을 떠나 1899년 릴리 텍시에와 결혼했지만, 몇 해 뒤 다시 엠마 바르닥에게 갔습니다. 1904년 10월 릴리는 스스로 가슴에 총을 쏘았고, 목숨은 건졌으나 총알은 평생 몸 안에 남았습니다. 이 일로 드뷔시는 많은 친구를 잃었습니다.
1905년 엠마와의 사이에서 딸 클로드엠마, 애칭 '슈슈'가 태어났습니다. 두 사람은 1908년에 결혼했고, 그해 드뷔시는 딸에게 피아노 모음곡 '어린이 차지'를 바쳤습니다.
'인상주의'를 거부한 이유와 마지막 날들
초기 작품 '봄' 때부터 비평가들은 그의 음악에 인상주의라는 이름표를 붙였고, 드뷔시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림에서 빌려 온 말로는 음계와 화음, 음색에 대한 자신만의 논리를 가진 새로운 음악 언어를 설명할 수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1909–1913년에는 장면 하나, 기분 하나를 그려 내는 피아노 '전주곡집' 두 권을 썼습니다.
1909년 대장암 진단을 받았고, 1915년에는 초기의 인공항문 수술을 받았습니다. 1918년 3월 25일, 독일군 포탄이 파리에 떨어지던 때 55세로 집에서 숨을 거두었고, 전쟁 중이라 공식 장례식도 없었습니다. 이듬해 딸 슈슈도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달빛 아래의 피아노에서 출렁이는 바다까지, 그의 음악은 지금도 20세기 음악으로 들어가는 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드뷔시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분위기를 자아내다 | 어떤 느낌을 만들어 내다 | '달빛'은 고요한 밤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
| 틀을 깨다 |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다 | 드뷔시는 프랑스 음악의 틀을 깼다. |
| 자기만의 길을 가다 | 남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하다 | 그는 끝까지 자기만의 길을 갔다. |
| 몽환적이다 | 꿈속처럼 아련하다 | 그의 화음은 몽환적으로 울린다. |
| 평가가 엇갈리다 | 좋다는 사람과 나쁘다는 사람이 나뉘다 | '바다'는 초연 때 평가가 엇갈렸다. |
연습: '달빛'을 들으며 떠오르는 장면을 '분위기를 자아내다'와 '몽환적이다'를 넣어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