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은 어떤 사람일까? 독일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메시아』를 쓴 작곡가

헨델은 독일 출신 바로크 작곡가로, 런던에서 이탈리아 오페라를 쓰다가 영어 오라토리오 『메시아』로 세계적인 이름을 남겼습니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은 독일에서 태어나 인생 대부분을 런던에서 보낸 바로크 시대 작곡가입니다. 그는 런던 관객을 위해 이탈리아어 오페라를 수십 편 쓰다가, 사업이 기울자 영어 오라토리오로 방향을 틀었고, 1741년 여름 약 24일 만에 「할렐루야」 합창으로 유명한 『메시아』를 완성했습니다. 『메시아』는 지금도 서양 음악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합창곡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라도, 언어도, 장르도 바꿔 가며 살아남은 한 음악가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할레의 소년

헨델은 1685년 3월 5일, 당시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땅이던 할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궁정 외과의였고 아들이 법학을 공부하기를 바랐습니다. 초기 전기 작가 메인웨어링은 "아버지가 집에서 악기를 금지해 소년이 다락방에 숨긴 클라비코드로 몰래 연습했다"고 썼지만, 오늘날 학자들은 이 장면을 낭만적으로 꾸민 이야기로 보고 있으며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할레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프리드리히 빌헬름 차하우에게 배웠다는 점입니다. 차하우는 작곡과 건반을 가르치고, 여러 작곡가의 악보를 베껴 쓰게 했습니다. 다양한 음악 '문체'를 손으로 익힌 이 훈련은 헨델이 평생 써먹은 밑천이 됩니다.

함부르크와 이탈리아에서 배운 무대

1703년 헨델은 함부르크로 가서 그 도시 오페라 극장의 오케스트라에 들어갔고, 1705년에는 첫 오페라 『알미라』와 『네로』가 그곳에서 무대에 올랐습니다. 겨우 스무 살 무렵이었습니다.

1706년 무렵에는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로 건너갔습니다. 1709년 베네치아에서 초연한 『아그리피나』는 27일 밤 연속 공연되는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노래하듯 흐르는 선율과 극적인 감각은 이때 몸에 밴 것입니다.

하노버에서 런던으로

1710년 헨델은 하노버 선제후 게오르크의 궁정 악장이 되었지만, 곧 런던 방문 허락을 받아 떠났고 1712년에는 아예 영국에 정착했습니다. 런던에서 처음 올린 오페라 『리날도』(1711)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1714년, 하노버의 옛 고용주가 영국 국왕 조지 1세로 즉위합니다. 1717년 7월 템스강 위에서 국왕을 위해 『수상 음악』이 연주되었는데, 이 음악 덕분에 국왕과 화해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 확실한 기록은 없습니다. 헨델은 1727년 영국 국적을 얻었습니다.

오페라 사업의 흥망

약 20년 동안 헨델의 본업은 런던 관객을 위한 이탈리아어 오페라였습니다. 1719년부터는 귀족들이 투자한 '왕립 음악 아카데미'의 음악 감독을 맡았고, 나중에는 직접 오페라단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스타 가수의 출연료는 비쌌고 경쟁 극단과의 싸움도 치열해 사업은 늘 불안했습니다. 1737년 건강이 크게 나빠진 뒤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1741년 『데이다미아』를 끝으로 그는 오페라에서 손을 뗐습니다.

24일 만에 쓴 『메시아』

돌파구는 영어 오라토리오였습니다. 의상도 무대 장치도 없이 독창·합창·관현악으로 연주하는 극적인 대작입니다. 『메시아』의 가사는 찰스 제넨스가 킹 제임스 성경 등에서 골라 엮었고, 헨델은 1741년 8월 22일 작곡을 시작해 9월 14일에 끝냈습니다.

초연은 런던이 아니라 더블린에서 1742년 4월 13일에 열렸습니다. 자선 음악회였고, 약 400파운드의 수익금은 빚 때문에 감옥에 갇힌 142명을 풀어 주는 데 쓰였습니다. 정작 런던의 첫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성경 말씀을 극장에서 노래하는 것을 못마땅해한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이 정말 일어섰을까

요즘도 「할렐루야」 합창이 나오면 청중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공연이 많습니다. 런던 초연 때 국왕 조지 2세가 일어서자 모두가 따라 일어났다는 설명이 흔하지만, 국왕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는 없습니다. 전설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반면 런던 '파운들링 호스피털'(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던 시설)과의 인연은 기록이 분명합니다. 헨델은 1750년부터 해마다 그곳에서 『메시아』 자선 공연을 지휘했고, 이사가 되었으며, 유언으로 악보 사본을 남겼습니다. 1749년에는 런던의 공개 축하 행사를 위해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도 작곡했습니다.

실명, 죽음,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사원

말년의 헨델은 시력을 잃어 1752년에는 완전히 앞을 보지 못했지만, 연주와 지휘는 계속했습니다. 1759년 4월 14일 런던 브룩 스트리트의 집에서 74세로 세상을 떠났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습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고전파 작곡가들도 그의 음악을 깊이 존경했고, 1789년 모차르트는 『메시아』를 새로 편곡하기도 했습니다.

독일 사람이 이탈리아어로 오페라를, 영어로 오라토리오를 써서 결국 영국인이 '우리 작곡가'라 부르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외국어를 늦게 시작했다고 걱정하는 학습자에게 헨델의 삶은 꽤 든든한 응원입니다.

헨델과 함께 배우는 한국어 표현

표현 뜻 예문
방향을 틀다 계획이나 진로를 바꾸다 헨델은 오라토리오로 방향을 틀었다.
손을 떼다 하던 일을 그만두다 그는 오페라 사업에서 손을 뗐다.
돌파구를 찾다 막힌 상황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다 그는 『메시아』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이름을 남기다 후세에 널리 알려지다 헨델은 음악사에 이름을 남겼다.
세월이 흘러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세월이 흘러도 그의 음악은 사랑받는다.

연습해 보기: 내 인생에서 '방향을 튼'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방향을 틀다', '돌파구를 찾다'를 넣어 한국어 문장 세 개를 써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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