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기둥에 새긴 '눈에는 눈': 바빌론 왕 함무라비와 그의 법전 이야기
함무라비는 기원전 1792–1750년경 바빌론을 다스리며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한 왕입니다. 현무암 비석에 새긴 법전의 내용과 '눈에는 눈'의 뜻을 풀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은 거의 글자 그대로의 뜻이었습니다. 제196조와 제200조는 누군가 다른 사람의 눈이나 이를 상하게 하면 그 사람의 눈이나 이도 똑같이 상하게 한다고 정했고, 이런 원칙을 동해보복(탈리오)이라고 부릅니다. 이 법전을 내놓은 사람은 기원전 1792년 무렵부터 1750년 무렵까지 바빌론을 다스린 아모리인의 여섯 번째 왕 함무라비로, 그는 작은 왕국을 메소포타미아의 으뜸가는 강국으로 키웠습니다. 다만 '눈에는 눈'은 길고 꼼꼼한 법문의 한 조각일 뿐이고, 벌의 무게는 신분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왕과 비석과 법의 내용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작은 나라에서 출발한 왕
함무라비는 바빌론 왕 신무발리트의 아들입니다. 언제 태어났는지, 몇 살에 왕위에 올랐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43년 동안 다스렸으니 아주 어린 나이에 즉위했을 수도 있지만, 이미 스물이나 서른 살 무렵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가 즉위할 때 바빌론은 땅이 좁고 사방이 경쟁국으로 둘러싸인 나라였습니다.
통치 첫 20년 남짓은 기록이 많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해마다 중요한 일을 따서 그해의 이름을 지었는데, 함무라비 초기의 '연도 이름'은 대부분 건설 공사나 신에게 바친 제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그는 붐비는 지역의 여러 왕 가운데 하나였던 셈입니다.
메소포타미아를 하나로 묶다
흐름이 바뀐 것은 통치 후반부였습니다. 함무라비는 처음에 마리의 왕 짐리림과 손잡고 남쪽 왕국 라르사를 번개처럼 공격해 기원전 1763년에 합병했고, 이로써 메소포타미아 남부 평야 전체를 차지했습니다. 200년 넘게 여러 왕이 해내지 못한 일이었기에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이어서 에슈눈나를 꺾었고, 옛 동맹이던 마리에도 칼끝을 돌려 기원전 1761년에서 1759년 사이에 마리를 함락하고 파괴했습니다.
그는 라르사, 에슈눈나, 마리라는 강국들을 정복해 메소포타미아의 거의 전부를 바빌론의 지배 아래 두었습니다. 라르사와 마리에서 나온 편지들 덕분에 그의 치세는 메소포타미아 역사에서 기록이 특히 잘 남은 시기로 꼽힙니다. 그는 한동안 병을 앓은 뒤 즉위 43년째인 기원전 1750년 무렵 세상을 떠났고, 아들 삼수일루나가 뒤를 이었습니다.
검은 돌에 새긴 법
함무라비 법전은 통치 말기인 기원전 1753년 무렵 아카드어의 고대 바빌로니아 방언으로 쓰였고, 대표적인 사본은 키 큰 현무암 비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비석 꼭대기에는 정의의 신이기도 한 태양신 샤마시와 함무라비를 새긴 부조가 있고, 그 아래로 약 4,130줄의 쐐기문자가 이어집니다. 5분의 1은 시처럼 쓴 머리말과 맺음말이고, 나머지 5분의 4가 법 조문입니다. 머리말에서 함무라비는 신들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누르지 못하게 하라'며 자신에게 왕권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이 비석은 1901년 지금의 이란 땅인 수사에서 다시 발견되었습니다. 만들어진 지 약 600년 뒤에 전리품으로 그곳에 옮겨졌던 것이고, 지금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습니다. 아랫부분의 몇 단은 고대에 갈아서 지워졌는데, 처음 보고한 학자는 비석을 가져간 엘람 왕이 그 자리에 자기 글을 새기려 했다고 추측했습니다. 그래도 고대 근동에서 가장 길고, 가장 잘 정리되고, 가장 잘 보존된 법률 문서입니다.
조문은 어떻게 쓰였나
현대 학자들은 조문을 282개로 나눠 셉니다. 재판, 재산, 농사, 돈, 가족, 폭행, 여러 직업, 노예 소유 같은 주제별로 묶여 있습니다. 모든 조문은 '만약 이런 일이 생기면, 이렇게 한다'는 형식입니다. 벌만 다루지도 않았습니다. 물건값을 정하고, 이자의 상한을 20퍼센트로 두었으며, 품삯도 정했는데 계절 노동자에게는 더 많이 주게 했습니다. 맨 앞의 두 조문은 증거 없이 남을 고발한 사람을 벌하는 내용이라, 무죄 추정의 이른 형태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눈에는 눈'의 실제 모습
동해보복 원칙은 분명히 있었지만, 신분 차이가 뚜렷한 사회 안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법 앞에 평등하지 않았고, 나이와 직업뿐 아니라 신분과 성별에 따라서도 받는 벌이나 배상이 달랐습니다. 법전에는 대략 자유민 상층, 평민, 노예의 세 신분이 나옵니다. 벌이 자식에게 넘어가는 조문도 있어서, 부실하게 지은 집이 무너져 집주인이 죽으면 지은 사람을 사형에 처하고, 집주인의 아들이 죽으면 지은 사람의 아들을 사형에 처한다고 정했습니다.
이 법전이 실제 재판에 쓰인 '법률'이었는지는 학자마다 의견이 갈립니다. 서기들이 실제 판례를 바탕으로 정리한 학문적 작업, 곧 올바른 판결의 본보기를 적은 글이라는 견해가 많고, 재판관이 참고하는 모범으로 쓰였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머리말과 맺음말을 보면 정의로운 왕 함무라비를 기리고 그 이름을 후대에 남기려는 기념비이기도 했습니다.
남긴 것
함무라비의 제국은 오래가지 못했고, 그의 왕조는 기원전 1595년 히타이트의 공격으로 끝났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정복자의 모습은 흐려지고, 이상적인 입법자로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비석이 발견된 뒤로는 구약성경 「출애굽기」의 율법과 어떤 관계인지도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둘 다 '만약 ~하면' 형식과 눈에는 눈의 원칙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미국 하원 회의장에는 역사 속 입법자들과 함께 그의 부조 초상이 걸려 있고, 뉴욕 유엔 본부 등에도 비석의 복제품이 있습니다.
함무라비로 배우는 영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an eye for an eye | 받은 만큼 되갚기 | An eye for an eye solves nothing. |
| set in stone | 바꿀 수 없게 정해진 | The schedule is not set in stone. |
| lay down the law | 규칙을 단호히 정하다 | The coach laid down the law. |
| the burden of proof | 입증 책임 | The burden of proof is on you. |
| equal before the law | 법 앞에 평등한 | Everyone should be equal before the law. |
연습 과제: 학교나 회사의 규칙 하나를 "set in stone"과 "lay down the law"를 넣어 영어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