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왕은 실존 인물일까, 전설일까? 엑스칼리버 이전의 '진짜 기록'을 찾아서
실존을 증명할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가장 이른 기록도 수백 년 뒤의 것이고 그를 '왕'이 아닌 '전쟁지도자'로 부릅니다. 원탁과 성검은 후대 전설입니다.
아서왕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로마 이후 시대 브리튼의 사료는 매우 드물어서, 아서의 역사적 존재에 대해 확정적인 대답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평가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대부분 아서를 역사 인물이 아니라 신화나 민간전승 속 인물로 봅니다. 바위에 꽂힌 검, 엑스칼리버, 원탁의 기사, 카멜롯은 모두 수백 년 뒤 작가들이 덧붙인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는 '기록 속의 아서'와 '전설 속의 아서왕'을 분명히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가까운 증인은 아무 말이 없다
어떤 인물의 실존을 따질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그 시대와 가장 가까운 기록입니다. 아서가 활약했다는 시기는 500년 무렵인데, 그때를 다룬 핵심 사료가 6세기 수도사 길다스의 《브리튼의 파괴와 정복》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바돈 산 전투는 언급하면서도 아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길다스가 이름을 들어 칭찬한 사람은 암브로시우스 아우렐리아누스라는 다른 지도자였습니다.
길다스만이 아닙니다. 《앵글로색슨 연대기》를 비롯해 400년에서 820년 사이에 남아 있는 필사본 가운데 아서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색슨족을 물리친 대영웅이 정말 있었다면, 가까운 시대의 기록자들이 모두 그 이름을 빠뜨렸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입니다.
처음 등장한 아서는 '왕'이 아니었다
아서가 처음 분명하게 등장하는 문헌은 웨일스의 사제 넨니우스가 썼다고 알려진 9세기 라틴어 역사서 《브리튼인의 역사》입니다. 이 책은 아서가 싸웠다는 열두 번의 전투를 싣고 있는데, 마지막 바돈 산 전투에서 아서가 혼자 960명을 쳐 죽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기록이라기보다는 영웅담에 가까운 숫자입니다.
더 중요한 점은 초기 문헌이 그를 왕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브리튼인의 역사》도 《캄브리아 연대기》도 그를 '왕(rex)'이라 하지 않고, 앞의 책은 '전쟁지도자(dux bellorum)'라고 부릅니다. 게다가 이 첫 언급은 아서가 활약했다는 시대보다 300년 이상 뒤에 쓰였습니다.
연대기의 날짜는 증거가 될까
10세기의 《캄브리아 연대기》는 바돈 산 전투를 516–518년 무렵으로, 아서와 모드레드가 맞붙어 둘 다 죽은 캄란 전투를 537–539년 무렵으로 기록합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날짜는 아서 실존의 근거로 자주 쓰였지만, 이 연대기로 《브리튼인의 역사》를 뒷받침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아서를 언급한 다른 모든 문헌처럼 이 연대기도 사건이 있은 지 적어도 400년 뒤에 쓰였기 때문입니다.
고고학도 답을 주지 못했다
12세기 이후 아서의 이름이 붙은 지명은 많이 생겼지만, 고고학적으로 확인하려면 금석문 같은 물증이 필요합니다. 1998년 콘월의 틴타겔성 유적에서 발견된 이른바 '아서 석'은 6세기 유물이 확실해 잠깐 파란을 일으켰지만, 곧 아서와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다른 증거로 꼽히던 글래스턴베리 십자가도 오늘날 학자들은 12세기 무렵 위조된 것으로 봅니다.
1191년 글래스턴베리 수도원이 아서의 무덤을 찾았다고 발표한 일도, 학자들은 의도적으로 연출된 발견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수도원이 유명한 무덤으로 명성을 얻으려 했거나, 아서가 돌아온다는 켈트인의 믿음을 잠재우려 했다는 해석입니다.
역사학자들의 결론
이처럼 초기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학자는 로마 이후 브리튼을 다룰 때 아서를 아예 다루지 않습니다. 역사학자 토머스 찰스에드워즈는 "역사적 인물 아서가 존재했을 수도 있다고만 말할 수 있을 뿐, 역사학자들은 그에 관해 어떠한 의미 있는 이야기도 해 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2013년 역사학자 가이 핼서올은 학계에서 회의론자들이 확실히 승리했다고 정리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아서가 본래 민담 속 가공의 영웅이거나 잊힌 켈트의 신이었는데, 나중에 실제 사건과 엮이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로마 군인 루키우스 아르토리우스 카스투스, 5세기 브리튼의 왕 리오타무스 같은 '진짜 아서' 후보도 거론되지만, 어느 것도 결정적이지 않습니다.
전설이 시작된 곳
오늘날 널리 알려진 아서의 모습을 만든 것은 1130년대 몬머스의 제프리가 쓴 유사 역사서 《브리타니아 열왕사》입니다. 그래서 아서 이야기의 문헌은 이 책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이 책은 엄청난 인기를 끌어 라틴어 필사본만 200점 넘게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 우서 펜드래건, 마법사 멀린, 왕비 귀네비어, 검 엑스칼리버, 아발론 섬 같은 요소도 이 책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그 뒤 프랑스 작가 크레티앵 드 트루아가 랜슬롯과 성배 이야기를 더했고, 15세기에 토머스 맬러리가 《아서왕의 죽음》으로 전설 전체를 영어로 다시 엮었습니다. 바위에서 검을 뽑는 장면, 원탁, 랜슬롯과 왕비의 사랑은 모두 이 전설의 세계에 속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아서왕은 있었을까
답은 두 갈래입니다. 역사 인물로서의 아서는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증인은 침묵하고, 그의 이름을 적은 문서는 모두 수백 년 뒤의 것입니다. 하지만 전설로서의 아서는 웨일스의 전쟁 영웅에서 제국을 세운 왕으로, 다시 원탁의 기사를 거느린 이상적인 군주로 모습을 바꾸며 천 년 넘게 살아남았습니다. 이름 뒤에 실제 인물이 있었다 해도, 그는 아마 지방의 전쟁지도자였지 엑스칼리버를 든 왕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서왕으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꼬리에 꼬리를 물다 |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다 | 전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났다. |
| 살을 붙이다 | 이야기에 내용을 덧붙이다 | 후대 작가들이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 |
| 사실무근 | 근거가 전혀 없음 | 그 무덤 이야기는 사실무근이었다. |
| 반신반의 |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함 | 사람들은 그 발견에 반신반의했다. |
| 베일에 싸이다 | 알려지지 않아 신비롭다 | 아서의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
연습: '살을 붙이다', '베일에 싸이다'를 넣어 여러분이 아는 전설에 대해 세 문장을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