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협을 처음 헤엄쳐 건넌 사람은? 매슈 웹 선장의 22시간
1875년 8월 매슈 웹은 아무 도구 없이 도버에서 칼레 근처까지 약 22시간 만에 헤엄쳐 처음으로 영국 해협을 건넜습니다. 그의 영광과 나이아가라에서의 비극적 최후를 정리했습니다.
아무 보조 도구 없이 영국 해협(도버 해협)을 처음 헤엄쳐 건넌 사람은 영국 상선의 선장 매슈 웹입니다. 그는 1875년 8월 24일부터 25일까지 도버에서 칼레 근처까지 헤엄쳤습니다. 걸린 시간은 약 22시간이었고, 조류에 이리저리 밀리며 지그재그로 나아간 탓에 실제로 헤엄친 거리는 직선거리보다 훨씬 긴 약 39마일이었습니다. 이 위업으로 그는 빅토리아 시대의 유명 인사가 되었지만, 그 뒤의 삶은 명성과 돈, 그리고 인간 몸의 한계에 대한 교훈이기도 합니다.
세번강의 소년
웹은 1848년 슈롭셔주 돌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세번강에서 헤엄을 배웠습니다. 열두 살에 훈련선 콘웨이호에서 선원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리버풀의 해운 회사에서 견습을 거쳐 이등 항해사 자격을 땄습니다. 바다에서 그는 물속에서의 용기로 이름났습니다. 대서양에서 배 밖으로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고 바다에 뛰어든 일로, 인명 구조의 용기를 기리는 첫 스탠호프 메달을 받았습니다.
해협이 어려운 까닭
도버와 칼레 사이 해협은 가장 좁은 곳이 약 33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물이 차갑고 조류가 세며 하루에도 몇 번씩 방향이 바뀌고, 세계에서 배가 가장 붐비는 뱃길 가운데 하나입니다. 헤엄쳐 건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첫 실패와 22시간의 도전
1875년 8월 12일 첫 도전은 궂은 날씨 때문에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꺾이지 않고 두 주도 지나지 않아 다시 나섰습니다. 8월 24일 추위를 막으려 돌고래 기름을 몸에 바르고 도버에서 물에 들어가, 보트의 호위를 받으며 평영으로 나아갔습니다. 밤새 조류와 피로에 맞섰고, 도중에 해파리에 쏘였으며, 프랑스 해안을 눈앞에 두고 거센 물살에 막힐 뻔했습니다. 그리고 25일, 약 22시간 동안 약 39마일을 헤엄친 끝에 마침내 칼레 근처 해변에 닿았습니다.
하루아침에 스타로
그는 국민 영웅이 되었고, 시민들의 성금은 2,424파운드에 이르렀습니다. 강연을 다니고 이름과 얼굴을 상품에 빌려주며, 근대 초기의 스포츠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의 기록은 오래도록 깨지지 않아, 두 번째로 해협 횡단에 성공한 토머스 버지스는 36년 뒤인 1911년에야 나타났습니다.
볼거리 공연, 몰락, 그리고 나이아가라
명성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었습니다. 웹은 돈을 벌려고 영국과 미국에서 지구력 공연을 이어 가, 1877년에는 템스강을 40마일 헤엄쳤고 1882년에는 보스턴의 수조에서 128시간 넘게 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분쟁이나 부진으로 끝나는 일이 잦아지며 형편은 나빠졌습니다. 1883년 7월, 이미 결핵을 앓던 그는 나이아가라 폭포 아래의 거센 소용돌이 급류를 헤엄쳐 건너려다 물속으로 휩쓸려 서른다섯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위대한 일 중에 쉬운 것은 없다"
기사 작위가 거론되었지만 받지는 못했습니다. 고향 돌리에는 형제가 세운 기념비가 있는데, "위대한 일 중에 쉬운 것은 없다"라는 짧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1965년에는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에 올랐습니다. 지금은 수천 명이 해협을 헤엄쳐 건넜지만, 모두 웹 선장이 가능하다고 증명한 그 길을 따라간 것입니다.
매슈 웹으로 배우는 우리말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칠전팔기 | 여러 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남 | 칠전팔기의 마음으로 다시 도전했다. |
| 끈기 있다 | 쉽게 포기하지 않다 | 그는 끈기 있게 헤엄쳤다. |
| 물살을 거스르다 | 흐름에 맞서 나아가다 | 남들과 다른 길로 물살을 거슬렀다. |
| 겨우 버티다 | 간신히 견디다 | 이번 주는 겨우 버티고 있다. |
| 위업을 이루다 | 큰일을 해내다 | 그는 누구도 못 한 위업을 이뤘다. |
연습 과제: 지금 마주한 도전 하나를 "끈기 있다", "칠전팔기"를 넣어 세 문장으로 쓰고, 마지막을 웹의 말로 마무리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