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친구 샴스를 잃고 시인이 된 코니아의 학자
루미는 13세기 코니아에 살며 페르시아어로 글을 쓴 이슬람 학자입니다. 친구 샴스와의 만남과 이별이 그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시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루미(잘랄 앗딘 무함마드 루미)는 13세기의 이슬람 학자이자 설교자, 신비주의자로, 주로 페르시아어로 글을 썼고 생애 대부분을 지금의 튀르키예에 있는 코니아에서 보냈습니다. 그의 대표작은 두 가지입니다. 사라진 친구를 그리워하며 쓴 서정시집 『샴스 타브리지 시집』, 그리고 이야기와 가르침을 여섯 권에 담은 장편시 『마스나비』입니다. 『마스나비』는 "페르시아어로 된 코란"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오늘날 루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시인 가운데 한 명이지만, SNS에 떠도는 "루미 명언" 속 모습과 중세 아나톨리아에 살았던 학식 깊은 신앙인 루미 사이에는 꽤 큰 거리가 있습니다.
떠돌며 자란 어린 시절
루미는 1207년 9월 30일, 지금의 타지키스탄에 있는 와흐시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 이름 "발히"는 근처 도시 발흐와의 인연을 보여 줍니다. 아버지 바하웃딘 왈라드는 설교자이자 법학자였습니다. 가족은 서쪽으로 옮겨 다니며 한때 사마르칸트에 살았고, 1215–1220년 몽골의 침입으로 중앙아시아에서 더 멀어졌습니다. 카라만에서 약 7년을 지낸 뒤, 1228년 셀주크 군주 알라웃딘 카이쿠바드의 초청으로 코니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여행 도중 어린 루미가 니샤푸르에서 대시인 아타르를 만났고, 아타르가 그의 앞날을 알아보았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인전에 나오는 이야기로, 모든 학자가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루미의 생애에 관해 널리 알려진 내용 상당수가 사실과 전설이 섞인 후대 전기에서 나왔기 때문에, 화려한 일화일수록 한 발짝 떨어져 읽는 편이 좋습니다.
당시 코니아는 셀주크 궁정이 있던 국제적인 도시였고, 페르시아어가 문화의 언어였습니다. 루미는 주로 페르시아어로 썼고 아랍어도 썼으며, 시 곳곳에 튀르크어와 그리스어 낱말이 가끔 섞여 있습니다. 여러 언어가 오가던 도시의 분위기가 작품에도 그대로 묻어나는 셈입니다.
샴스와의 만남, 그리고 이별
코니아에 온 뒤 십수 년 동안 루미는 제자와 가족에 둘러싸인 종교학자였지 시인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바뀐 날은 1244년 11월 15일, 떠돌이 수행자 샴스 타브리지를 만난 날입니다. 한 전승에 따르면 샴스는 바구니를 엮으며 떠돌면서 자신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고, 전설은 어떤 목소리가 그를 루미에게 이끌었다고 덧붙입니다. 두 사람은 떨어질 줄 모르는 친구가 되었고, 루미의 제자와 가족은 이 낯선 사람을 질투했습니다.
샴스는 한 번 코니아를 떠났다가 설득을 받고 돌아왔지만, 1248년 12월 5일 영영 자취를 감췄습니다. 살해되었다는 설, 신성모독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설, 그냥 길을 떠났다는 설이 있습니다. 살해설의 근거는 믿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진실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슬픔이 시가 되다
루미는 친구를 찾아 헤맸고, 결국 샴스가 자기 안에 살아 있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쏟아져 나온 수많은 서정시는 작가가 아니라 친구의 이름을 붙인 『샴스 타브리지 시집』으로 묶였습니다. 이 슬픔이 시인 루미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이야기의 도서관, 『마스나비』
1258년 무렵, 쉰네 살쯤이던 루미는 아끼는 제자 후사뮷딘 첼레비의 부탁으로 『마스나비』를 구술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가 받아 적었고, 작업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져 여섯째 권은 끝을 맺지 못했습니다. 여섯 권, 약 2만 5천 대구로 이루어진 이 시의 제목은 "영적인 대구"라는 뜻입니다. 코란과 하디스, 일상에서 가져온 이야기를 들려준 뒤 그 교훈을 차분히 풀어 가는 방식이어서, 많은 이들이 세계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신비주의 시로 꼽습니다.
빙글빙글 도는 메블레비 교단
루미는 1273년 12월 17일 코니아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자들과 아들 술탄 왈라드가 메블레비 교단을 세웠고, 음악에 맞춰 도는 의식 "세마"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1274년 그의 무덤 위에 세운 영묘는 지금 코니아 메블라나 박물관의 일부입니다. 유네스코는 2005년 세마 의식을 인정했고, 탄생 800주년인 2007년을 "국제 루미의 해"로 정했습니다.
"루미 명언"은 한 번 의심하기
영어권에서 루미의 인기는 현대의 자유로운 영어판 덕이 큽니다. 콜먼 바크스의 판본만 50만 부 넘게 팔렸습니다. 따뜻하고 읽기 쉬운 글이지만, 자유로운 영시는 루미의 페르시아어 원문과 같지 않습니다. 출처 없이 예쁜 그림에 얹힌 "명언" 가운데는 그의 작품에서 찾을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루미는 코란과 이슬람 사상에 깊이 뿌리내린 학자였고, 그 배경을 지운 인용은 오히려 그를 작게 만듭니다. 공유하기 전에 어느 작품의 누구 번역인지 한 번 확인해 보세요.
루미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둘도 없는 친구 | 아주 소중한 친구 | 샴스는 루미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
| 감쪽같이 사라지다 | 흔적 없이 없어지다 | 샴스는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졌다. |
|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다 | 삶이 완전히 달라지다 | 그 만남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
| 앞뒤를 자르다 | 맥락을 빼고 일부만 쓰다 | 앞뒤를 자른 인용은 오해를 낳는다. |
| 혼을 담다 | 온 마음을 쏟다 | 그는 시 한 편 한 편에 혼을 담았다. |
연습해 보기: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 만남에 대해 "둘도 없는 친구"와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다"를 넣어 세 문장을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