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G. 그레이스는 누구일까? 현대 타격을 만든 수염 난 크리켓 의사

W. G. 그레이스는 일류 크리켓에서 44시즌을 뛰며 5만 4천 점 넘게 올리고 2,800개가 넘는 위킷을 잡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첫 스포츠 스타입니다.

W. G. 그레이스(1848–1915)는 크리켓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가운데 한 명이자 현대 타격의 아버지로 꼽히는 영국 선수입니다. 1865년부터 1908년까지 이어진 일류 크리켓 경력에서 54,211점(센추리 124회)을 올리고 위킷 2,809개를 잡았는데, 지금 보면 믿기 어려운 숫자입니다. 덥수룩한 턱수염에 당당한 체구의 'W.G.'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첫 스포츠 스타였고, 동시에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브리스틀 근처의 크리켓 가족

윌리엄 길버트 그레이스는 1848년 7월 18일 브리스틀 근처 다운엔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 전체가 크리켓에 푹 빠져 있어, 부모는 아이들을 격려했고 형제 몇 명도 높은 수준에서 뛰었습니다. 그는 집 과수원에서 쉬지 않고 연습했고, 1865년 겨우 열여섯 살에 일류 크리켓에 데뷔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대단했나

크리켓은 타자가 점수(런)를 쌓고 투수가 타자를 아웃시키려 하는 배트와 공의 경기입니다. 그레이스 이전의 타자들은 앞발을 내디디며 공격하는 쪽이나 뒤로 물러서며 수비하는 쪽 가운데 하나에 치우치기 쉬웠습니다. 그레이스는 둘을 모두 익혀 오는 공에 맞춰 가장 알맞은 타격을 골랐습니다. 이 전천후 기술 때문에 그는 현대 타격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경기를 바꾼 기록

1871년 그는 일류 크리켓에서 처음으로 한 시즌 2,000점을 넘겼고, 1876년에는 344점을 쳐 일류 크리켓 최초의 트리플 센추리를 기록했습니다. 투수와 수비수로서도 뛰어나서 위킷 수가 득점만큼 놀랍습니다. 1880년부터 1899년까지 잉글랜드 대표로 오스트레일리아와 테스트 매치 22경기에 나섰고, 소속 팀 글로스터셔를 비롯해 거의 모든 팀에서 주장을 맡았습니다.

크리켓 하는 의사

그레이스는 의학도 공부해 1879년 의사가 되었고, 크리켓 시즌과 진료를 병행하며 브리스틀에서 일했습니다. 다른 운동도 잘해 육상 허들 챔피언이었고, 초창기 축구 명문 원더러스에서 공을 차기도 했습니다.

이름만 아마추어?

빅토리아 시대 크리켓은 순수한 애정으로 뛴다는 '젠틀맨' 아마추어와 보수를 받는 프로 '플레이어'를 나눴습니다. 그레이스는 공식적으로 아마추어였지만, 경비와 기념 경기 등으로 대부분의 프로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규칙이 허락하는 한, 때로는 그 이상으로 이점을 챙기는 수 싸움으로도 유명해 논란이 많았습니다. 그의 '꼼수'에 관한 일화는 많지만 모두 사실로 확인되지는 않습니다.

말년과 남긴 것

그는 누구보다 오래 뛰어, 1900년부터 1904년까지 런던 카운티 주장을 맡았고 예순 가까운 1908년에야 일류 크리켓 경력을 마쳤습니다. 1915년 켄트주 모팅엄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레이스는 크리켓을 수많은 관중이 몰리는 볼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W.G.를 보러' 경기장에 갔고, 그의 명성이 크리켓을 영국 국민 생활의 중심에 올려놓았습니다.

W. G. 그레이스로 배우는 우리말 표현

표현 뜻 예문
반칙이다 공정하지 않다 남의 숙제를 베끼는 건 반칙이다.
진퇴양난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함 상사와 사이에서 진퇴양난이다.
노익장 늙어서도 기운이 왕성함 예순 가까이 뛴 노익장이었다.
팔방미인 여러 방면에 능한 사람 그는 운동의 팔방미인이었다.
스스로 나서다 남이 시키기 전에 하다 그녀는 스스로 나서 영어를 배웠다.

연습 과제: 이번 주에 있었던 일을 "진퇴양난", "스스로 나서다"를 넣어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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