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벨은 어떻게 전화기를 발명했을까? 목소리와 청각에 평생을 건 발명가 이야기

그레이엄 벨은 어떻게 전화기를 발명했을까? 목소리와 청각에 평생을 건 발명가 이야기

1876년 벨은 전화기 특허를 받고 '왓슨 씨, 이리 와 주세요'라는 첫 통화를 했습니다. 말하기 교사였던 그가 전화기에 이른 과정과 특허 논쟁을 정리합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전화기 발명 과정은 전기 실험실이 아니라 '목소리'를 가르치는 교실에서 시작됐습니다. 음성학자 아버지와 점점 청력을 잃어 간 어머니 곁에서 자랐고, 청각장애인에게 말하기를 가르치면서 소리가 어떻게 전해지는지를 끈질기게 연구했습니다. 그 결실로 1876년 3월 7일 미국 특허 제174,465호가 나왔고, 사흘 뒤인 3월 10일 그는 전화선으로 첫마디를 보냈습니다. "왓슨 씨, 이리 와 주세요. 보고 싶습니다"라는 유명한 문장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같은 날 접수된 다른 서류와 오래 이어진 특허 다툼도 숨어 있습니다.

목소리를 연구하는 집안

벨은 1847년 3월 3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알렉산더 멜빌 벨은 음성학자였고, 어머니는 일라이자 그레이스 시먼즈였습니다. 아버지는 청각장애인에게 발음을 가르치기 위한 기호 체계인 '시화법(Visible Speech)'을 만든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벨이 열두 살 무렵부터 청력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소리를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전할지는 그에게 책 속 문제가 아니라 집안의 절실한 과제였습니다. '그레이엄'이라는 가운데 이름은 열한 살 때 가족의 친구 이름을 따 스스로 붙인 것입니다.

말하는 인형을 만든 소년

1863년, 십대의 벨은 형 멜빌과 함께 말하는 기계 머리를 만들었습니다. 찰스 휘트스톤이 만든 기계를 보고 영감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열아홉 살에는 소리 전달에 관한 보고서를 언어학자 알렉산더 엘리스에게 보냈고, 엘리스는 그에게 헬름홀츠의 연구를 알려 주었습니다. 장난처럼 시작한 공작과 진지한 음향학 공부, 이 두 가지가 훗날 발명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캐나다를 거쳐 보스턴으로

1870년, 두 형제를 결핵으로 잃은 벨 가족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브랜트퍼드 근처로 이주했습니다. 1871년 벨은 보스턴의 농아 학교에서 교사들을 가르쳤고, 1872년 10월에는 자신의 '발성 생리학과 말하기 원리' 학교를 열었습니다. 같은 해 보스턴 대학교 웅변학부에서 발성 생리학과 화술 교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제자 가운데에는 훗날 널리 알려진 헬렌 켈러도 있었습니다. 1873년 가을, 벨은 개인 지도를 접고 소리 실험에 전념하기로 결심합니다.

1876년 2월 14일, 같은 날의 두 서류

전화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날은 1876년 2월 14일입니다. 이날 발명가 일라이셔 그레이가 물을 이용한 송화기 구상을 담은 '예고 등록'을 특허청에 냈고, 같은 날 벨의 변호사도 벨의 특허 출원서를 제출했습니다. 3월 3일 심사관이 출원을 승인했고, 3월 7일 특허가 나왔습니다. 누가 먼저였느냐는 오랫동안 논쟁거리였습니다. 미국 정부는 1887년부터 특허 무효를 다투었지만 이 소송은 1897년 11월 30일 취하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출신 안토니오 메우치도 훨씬 일찍 전화 모형을 만들었다고 주장했고, 2002년 미국 하원은 그의 업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결의를 냈습니다. 다만 그가 벨에게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립니다.

첫 통화에서 회사 설립까지

1876년 3월 10일, 벨은 조수 토머스 왓슨을 전화로 불러 목소리가 전선을 타고 전해진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듬해인 1877년 벨 전화 회사가 세워졌고, 1885년에는 AT&T(미국 전화전신회사) 창립에도 참여했습니다. 1877년 7월 11일에는 성홍열로 청력을 잃은 메이블 허버드와 결혼했습니다. 전화를 발명한 사람의 아내가 전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벨의 관심이 어디를 향했는지 조용히 말해 줍니다.

빛으로 목소리를 보내다

벨의 발명은 전화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찰스 섬너 테인터와 함께 빛으로 목소리를 무선 전송하는 '포토폰'을 개발했고, 1880년 6월 21일 워싱턴에서 약 700피트(약 210미터) 떨어진 곳까지 목소리를 보냈습니다. 단독 특허 18건, 공동 특허 12건을 보유했으며, 그중에는 비행체와 물 위를 달리는 탈것에 관한 특허도 있었습니다. 1898년부터 1903년까지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협회의 제2대 회장을 지냈습니다.

청각장애 교육을 둘러싼 공과

벨은 평생 청각장애인 교육에 힘을 쏟았고, 1891년에는 청각장애인에게 말하기를 가르치는 교육을 널리 알리기 위한 협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지한 것은 수어보다 입 모양 읽기와 발화를 앞세우는 '구화법'이었습니다. 그래서 농인 공동체로부터 수어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위대한 발명가를 이야기할 때 이런 엇갈린 평가까지 함께 아는 것이 균형 잡힌 이해입니다.

캐나다 호숫가에서 맞은 마지막

1885년 여름, 벨 가족은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케이프브레턴섬의 배덱에서 휴가를 보냈고, 이듬해부터 그곳에 저택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저택에는 조상의 땅 스코틀랜드 고지대를 떠올리게 하는 '베인 브레아'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벨은 1922년 8월 2일 바로 그 베인 브레아에서 일흔다섯 해의 삶을 마쳤습니다.

그레이엄 벨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표현 뜻 예문
~에 전념하다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쏟다 그는 소리 실험에 전념했다.
밑바탕이 되다 어떤 일의 기초가 되다 어린 시절의 공작이 발명의 밑바탕이 되었다.
논쟁거리 서로 다투어 따질 만한 문제 누가 먼저였는지는 오랜 논쟁거리였다.
의견이 갈리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메우치의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힘을 쏟다 정성을 다해 노력하다 벨은 청각장애인 교육에 힘을 쏟았다.

연습 과제: 요즘 가장 힘을 쏟고 있는 일을 '~에 전념하다'와 '밑바탕이 되다'를 넣어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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