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웨스팅하우스는 누구일까? 공기 브레이크를 만들고 에디슨과 '전류 전쟁'을 벌인 발명가
기차 공기 브레이크를 발명하고 교류 전기로 에디슨의 직류에 맞선 조지 웨스팅하우스. 그의 삶과 전류 전쟁, 나이아가라 폭포 발전소까지 정리했습니다.
조지 웨스팅하우스(1846년 10월 6일–1914년 3월 12일)는 미국의 발명가이자 사업가입니다. 그의 업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긴 열차를 안전하게 세울 수 있게 한 철도 공기 브레이크이고, 다른 하나는 교류 전기를 일찍부터 밀어붙여 토머스 에디슨의 직류 사업과 정면으로 맞선 일입니다. 평생 특허 360개를 받았고 회사 61곳을 세웠습니다. 에디슨과 테슬라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세 번째 주인공이 바로 웨스팅하우스입니다.
열아홉 살에 받은 첫 특허
웨스팅하우스는 뉴욕주의 작은 마을에서 농기계 작업장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어릴 때부터 기계와 사업 양쪽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남북전쟁 때는 십대의 나이로 군에 들어가 기병대 하사가 되었고, 그 뒤 해군에서 포함의 보조 기관사로 일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대학에 들어갔지만 첫 학기에 그만두었습니다. 그의 진짜 학교는 작업장이었습니다. 열아홉 살에 회전식 증기 기관으로 첫 특허를 받았고, 스물한 살에는 탈선한 화차를 선로에 다시 올리는 장치를 발명했습니다.
공기 브레이크가 왜 중요했을까
당시 기차는 제동수가 달리는 화차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칸마다 손으로 브레이크를 걸어야 멈췄습니다. 느리고 위험한 일이라 열차는 열 칸 정도까지만 달 수 있었고, 해마다 수천 명의 제동수가 죽거나 다쳤습니다. 웨스팅하우스는 두 기관사가 같은 선로에서 서로를 보고도 제때 멈추지 못해 부딪친 사고 현장을 직접 보았습니다.
1869년, 스물세 살의 그는 압축 공기로 브레이크를 거는 장치를 공개했습니다. 기관차의 압축기와 공기 탱크가 열차 전체를 잇는 관 하나로 공기를 보내, 기관사가 모든 칸의 브레이크를 한꺼번에 걸고 풀 수 있었습니다. 처음 장치는 관이 끊어지면 브레이크가 아예 안 듣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원리를 거꾸로 뒤집어, 평소에는 공기 압력이 브레이크를 풀어 두고 관이 끊어지면 저절로 브레이크가 걸리게 만들었습니다. 고장이 나도 안전한 쪽으로 멈추는 이 설계 덕분에 공기 브레이크는 세계 곳곳의 철도로 퍼졌습니다.
천연가스에서 전기로
웨스팅하우스의 관심은 철도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884년 피츠버그 집 마당에서 천연가스를 파 들어가다 약 1,500피트 깊이에서 가스가 터져 나와 굴착탑 꼭대기가 날아갔고, 그 가스를 막는 방법을 찾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그는 이 가스를 관으로 집과 공장에 보내는 사업을 시작해 1887년에는 1만 2,000가구가 넘는 집에 가스를 공급했습니다. 에너지를 관으로 안전하게 멀리 보내는 고민은 자연스럽게 전기를 멀리 보내는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전류 전쟁이란 무엇이었나
에디슨의 직류는 전압이 낮아 발전소에서 1마일쯤 떨어진 곳까지만 전기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교류는 변압기로 전압을 높여 멀리 보낸 뒤 쓰는 곳에서 다시 낮출 수 있었습니다. 웨스팅하우스는 1886년 매사추세츠주의 한 마을에 처음으로 여러 전압을 쓰는 교류 시스템을 놓았고, 같은 해 웨스팅하우스 전기 회사를 세웠습니다.
1887년 말, 그의 교류 발전소는 68곳이었고 에디슨이 7년 동안 세운 직류 발전소는 121곳이었습니다. 에디슨 쪽은 고압 교류가 사람을 죽인다는 두려움을 퍼뜨렸고, 뉴욕주의 새 전기의자에 웨스팅하우스 발전기를 쓰자고까지 했습니다. 1890년 첫 전기의자는 실제로 웨스팅하우스의 교류 발전기로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승부를 가른 것은 기술이었습니다. 웨스팅하우스는 니콜라 테슬라의 교류 유도 전동기 특허를 사들여 교류 시스템을 완성했고, 1892년 금융가 J. P. 모건이 에디슨의 회사를 교류로 돌려세우며 제너럴 일렉트릭으로 합치면서 전쟁은 사실상 끝났습니다.
시카고 박람회와 나이아가라 폭포
1893년 웨스팅하우스는 제너럴 일렉트릭보다 훨씬 낮은 금액을 써내 시카고 세계 박람회를 교류 전기로 밝히는 계약을 따냈고, 교류가 안전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이어 나이아가라 폭포에 발전기 열 대를 놓은 발전소가 1895년에 문을 열었고, 이 발전소는 1961년까지 돌아갔습니다. 폭포의 힘을 먼 도시의 불빛으로 바꾼 이 일이 오늘날 전력망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어떤 경영자였을까
웨스팅하우스는 1881년 미국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노동자에게 주 5일 반 근무를 준 고용주였습니다. 연금과 보험 제도를 두었고, 직원이 발명한 것은 그 사람 이름으로 특허를 내게 했습니다. 1907년 금융 공황으로 회사 경영권을 잃었고, 1914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11년에는 교류 시스템을 발전시킨 공로로 '에디슨 메달'을 받았으니, 묘한 인연입니다. 테슬라는 훗날, 그때 상황에서 자신의 교류 시스템을 받아들여 편견과 돈의 힘을 이길 수 있었던 사람은 이 세상에 웨스팅하우스 한 사람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발명 자체보다 발명을 세상에서 쓰이게 만든 사람으로 기억할 만한 인물입니다.
웨스팅하우스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제동을 걸다 | 하던 일을 멈추게 하다 | 은행이 그의 투자에 제동을 걸었다. |
| 선견지명 | 앞일을 내다보는 눈 | 교류를 고른 것은 선견지명이었다. |
| 정면으로 맞서다 | 피하지 않고 맞붙다 | 그는 에디슨과 정면으로 맞섰다. |
| 판도를 바꾸다 | 전체 흐름을 뒤집다 | 박람회가 전기 시장의 판도를 바꾸었다. |
| 손을 들어 주다 | 한쪽이 옳다고 인정하다 | 시장은 교류의 손을 들어 주었다. |
연습: '선견지명'과 '판도를 바꾸다'를 넣어, 내가 아는 회사나 사람에 대해 세 문장을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