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카네기는 왜 재산의 90%를 기부했을까? 실 감는 소년에서 강철왕, 도서관 3천 곳까지

주급 1.2달러 방적공장 소년이 강철왕이 되어 재산 약 90%를 기부했습니다. 『부의 복음』의 생각과 홈스테드 파업이라는 그림자까지 함께 살펴봅니다.

앤드루 카네기가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한 이유는, 큰 부자는 자기 재산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나눠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1889년 『노스 아메리칸 리뷰』에 「부(Wealth)」라는 글을 실었고, 이 글은 훗날 「부의 복음」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글에서 그는 부자가 재산을 사회를 위해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고, 누진세와 상속세까지 지지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약 3억 5천만 달러, 곧 재산의 90% 가까이를 주로 생애 마지막 18년 동안 내놓았습니다. 그 생각의 뿌리는 가난한 이민 소년 시절, 토요일 밤마다 책을 빌려 읽던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스코틀랜드 직조공의 아들

카네기는 1835년 11월 25일 스코틀랜드 던펌린에서 수직 직조공 윌리엄 카네기와 마거릿 모리슨 카네기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손으로 베를 짜는 일은 기계화의 물결 속에서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1848년, 열두 살의 카네기는 가족과 함께 미국 앨러게니(지금의 피츠버그 일부)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주급 1달러 20센트에서 시작하다

미국에서 그가 처음 얻은 일은 면직 공장에서 실패를 갈아 끼우는 '보빈 보이'였고, 주급은 1달러 20센트였습니다. 이후 주급 2달러를 받는 보빈 공장으로 옮겼습니다. 1849년에는 피츠버그의 오하이오 전신 회사에서 전보 배달원이 되었습니다. 거리를 뛰어다니며 전보를 전하는 일은 고되었지만, 도시의 상인과 기업가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토요일 밤의 400권짜리 서재

이 시절 카네기의 인생을 바꾼 사람이 있습니다. 제임스 앤더슨 대령은 토요일 밤마다 일하는 소년들에게 400권의 개인 장서를 열어 주었습니다. 카네기는 그때, 자신이 부자가 되면 가난한 소년들에게 똑같은 기회를 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훗날 그가 세계 곳곳에 약 3,000곳의 도서관을 세우는 데 돈을 댄 것은, 이 결심을 지킨 결과였습니다.

철도에서 배운 사업

1853년 그는 펜실베이니아 철도의 토머스 A. 스콧에게 고용되었고, 1859년 12월 1일에는 서부 지구 감독이 되었습니다. 남북전쟁이 일어난 1861년에는 미 육군 전신대에 들어가 동부의 군용 철도와 전신선을 감독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제철 사업을 키워 키스톤 브리지 회사를 세웠고, 이 회사는 1874년 완공된 미시시피강의 이즈 브리지에 강철을 공급했습니다.

강철왕의 탄생

1875년부터 1900년까지 카네기는 베서머 제강법과, 원료부터 생산까지 한 회사가 맡는 수직 계열화로 강철 제국을 쌓았습니다. 1883년에는 홈스테드 제강소를 사들였고, 1892년 카네기 철강 회사를 세웠습니다. 1901년 그는 이 회사를 J. P. 모건에게 3억 345만 달러에 팔았고, 이 거래가 US 스틸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카네기 개인의 몫은 약 2억 2,564만 달러였습니다.

홈스테드 파업이라는 그림자

카네기의 이야기에는 어두운 장면도 있습니다. 1892년 7월 1일부터 11월 20일까지 홈스테드 제강소에서 큰 파업이 벌어졌습니다. 회사 운영을 맡은 헨리 클레이 프릭은 노조를 무너뜨리려 했고, 7월 6일 사설 경비 회사 핑커턴의 요원들이 바지선으로 상륙하려다 노동자들과 총격전이 벌어져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4천 명이 넘는 주 방위군이 투입되었고, 파업은 노조의 큰 패배로 끝났습니다. 카네기는 공개적으로는 노조를 지지하고 파업 파괴자를 비판했지만, 노조를 깨려는 프릭의 계획은 승인했습니다. 너그러운 자선가와 냉정한 경영자, 두 얼굴을 함께 보아야 카네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카네기 홀에서 영웅 기금까지

그가 남긴 것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1891년 뉴욕에 카네기 홀이 문을 열었고, 1900년에는 200만 달러를 내 피츠버그에 카네기 공과대학(지금의 카네기 멜런 대학교)을 세웠습니다. 1902년에는 연구를 위한 카네기 연구소를, 1904년에는 용감한 시민의 행동을 기리는 카네기 영웅 기금을, 1911년에는 뉴욕 카네기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1887년 루이즈 휫필드와 결혼한 그는, 1919년 8월 11일 매사추세츠주 레녹스의 섀도 브룩 저택에서 기관지 폐렴으로 여든셋의 삶을 마쳤습니다.

앤드루 카네기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표현 뜻 예문
맨손으로 시작하다 가진 것 없이 출발하다 카네기는 맨손으로 시작해 강철왕이 되었다.
사회에 환원하다 번 것을 사회에 돌려주다 그는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했다.
마음먹다 무엇을 하기로 결심하다 그는 소년들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빛과 그림자 좋은 면과 어두운 면 그의 삶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다.
기회의 문을 열다 다른 사람이 도전할 수 있게 해 주다 도서관은 많은 사람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 주었다.

연습 과제: 어린 시절 나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 준 사람이나 장소를 떠올려, '마음먹다'와 '기회의 문을 열다'를 넣어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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