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펠러는 어떻게 그렇게 부자가 됐을까? 스탠더드 오일의 독점과 해체, 그리고 거액의 기부
록펠러는 스탠더드 오일을 독점에 가까운 기업으로 키워 미국 최초의 억만장자가 되었고, 1911년 회사가 쪼개진 뒤 약 5억 3천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존 D. 록펠러(1839–1937)가 큰 부자가 된 것은 1870년에 세운 스탠더드 오일을 끈질긴 비용 절감, 경쟁사 인수, 철도 회사의 비밀 할인 같은 방법으로 키워 1900년 무렵 미국 석유 사업의 약 90%를 쥔 회사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916년 그는 미국 최초의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삶에는 두 얼굴이 있습니다. 대법원이 회사를 쪼갠 냉혹한 사업가, 그리고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자선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열여섯 살의 장부 담당
록펠러는 1839년 7월 8일 뉴욕주 리치퍼드에서 태어났고, 가족은 뒤에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근처에 자리 잡았습니다. 열여섯 살에 클리블랜드의 한 농산물 회사에서 장부 담당 보조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부 일은 그의 평생을 빚었습니다. 정확한 숫자를 좋아했고 모든 지출을 적었으며, 뒤에 거대한 회사도 같은 꼼꼼함으로 운영했습니다.
석유 사업에 뛰어들다
1860년대 펜실베이니아 서부에서 석유가 발견되자 혼란스러운 석유 붐이 일었습니다. 작은 채굴업자와 정유업자가 넘쳐 나고 값은 널뛰었으며 망하는 회사가 줄을 이었습니다. 록펠러는 돈이 위험한 시추가 아니라 원유를 등불용 등유로 정제하는 데 있다고 보았고, 1870년 동업자들과 스탠더드 오일을 세웠습니다.
스탠더드 오일의 방식
크고 효율적인 정유 공장, 부산물까지 알뜰히 쓰는 운영, 작은 경쟁사는 얻을 수 없는 철도 회사의 비밀 할인, 그리고 값을 낮춰 몰아붙인 뒤 경쟁 정유사를 사들이거나 합치는 전략으로 1900년 무렵 미국 석유 사업의 약 90%를 장악했습니다. 지지자들은 질서와 싼 등유를 가져왔다고 했고, 비판자들은 경쟁을 짓밟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경쟁은 죄악"이라고 말했다고도 전해집니다.
타벨의 폭로와 1911년 해체
1904년 기자 아이다 타벨이 회사의 방식을 낱낱이 파헤친 『스탠더드 오일의 역사』를 펴냈고, 이 책은 탐사 보도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정부는 반독점법으로 회사를 고소했고, 1911년 대법원은 34개 회사로 쪼개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가운데 몇 곳은 오늘날 엑슨모빌, 셰브론으로 이어지는 대형 석유 회사로 자랐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새 회사들의 주식을 모두 갖고 있어서 해체 뒤 오히려 더 부자가 되었습니다.
재산을 사회로
독실한 침례교인이었던 그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고, 첫 직장 때부터 수입의 일부를 기부했습니다. 뒤에는 기부를 조직적인 사업으로 바꿔 시카고 대학교를 지원하고, 1901년 록펠러 의학연구소, 1909년 록펠러 위생위원회, 1913년 록펠러 재단을 세웠습니다. 위생위원회의 활동은 미국 남부의 구충병을 거의 없애는 데 이바지했고, 평생 기부액은 약 5억 3천만 달러로 추정됩니다. 1937년 5월 23일, 97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록펠러로 배우는 우리말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시장을 독차지하다 | 시장을 혼자 다 차지하다 | 그 회사는 시장을 독차지하려 했다. |
| 자수성가 | 스스로 힘으로 성공함 | 그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다. |
| 사회에 환원하다 | 번 것을 사회에 돌려주다 | 그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
| 허투루 쓰다 | 함부로 낭비하다 | 그는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
| 대충대충 하다 | 꼼꼼하지 않게 하다 | 안전 문제는 대충대충 하면 안 된다. |
연습 과제: 록펠러처럼 이번 주 외국어 공부에 쓴 시간을 기록하고, "허투루 쓰다", "사회에 환원하다"를 넣어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