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8세의 여섯 왕비는 어떻게 됐을까? 이혼·처형·죽음으로 갈린 운명
아들을 원했던 헨리 8세는 왕비를 여섯 번 맞았습니다. 둘은 처형되고 하나는 출산 뒤 숨졌죠. 왕비별 결말과 로마와 결별한 이유를 정리합니다.
헨리 8세(1491–1547)의 여섯 왕비 가운데 둘(앤 불린, 캐서린 하워드)은 참수됐고, 하나(제인 시모어)는 아들을 낳은 뒤 감염으로 숨졌고, 캐서린 오브 아라곤과 앤 오브 클리브스와의 결혼은 '처음부터 무효였다'는 혼인 무효 판정으로 끝났으며, 마지막 왕비 캐서린 파는 왕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흔히 '이혼'이라고 하지만 법적으로 헨리는 한 번도 이혼하지 않았습니다. 처형 직전 무효 처리된 앤 불린을 포함해 세 번의 결혼이 무효 처리되었기 때문에 법률상 아내는 세 명뿐이었던 셈입니다. 이 모든 일의 출발점은 왕위를 이을 적법한 아들을 얻겠다는 집착이었습니다.
왕이 될 예정이 아니었던 둘째 아들
헨리는 1491년 6월 28일 그리니치에서 헨리 7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원래 왕세자는 형 아서였고, 아서는 스페인 공주 캐서린 오브 아라곤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1502년 아서가 결혼 20주 만에 열다섯 살로 세상을 떠납니다. 스페인과의 동맹을 지키기 위해 헨리는 형수였던 캐서린과 결혼하게 되었고, 1509년 즉위하면서 교황의 특별 허가를 받아 혼인했습니다. 이 '형수와의 결혼'이 20년 뒤 커다란 문제가 됩니다.
첫 번째 왕비 캐서린과 오지 않는 왕자
튜더 왕조는 내전 끝에 세워진 신생 왕가여서 분명한 남자 후계자가 꼭 필요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캐서린은 1513년과 1515년에 사산된 아들을 낳았고, 1516년 2월에 태어난 딸 메리만이 살아남았습니다. 1527년 무렵 헨리는 이 결혼이 '신의 눈에 저주받았다'고 믿게 됩니다. 형제의 아내를 취하지 말라는 레위기 20장 21절을 근거로, 교황에게는 애초에 그런 결혼을 허락할 권한이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침 궁정에는 왕의 정부가 되기를 거부한 매력적인 여성 앤 불린이 있었습니다. 교황 클레멘스 7세가 혼인 무효를 허락하지 않자, 헨리는 교황을 빼고 문제를 풀기로 합니다. 1533년 1월 앤과 결혼했고, 5월에 캔터베리 대주교 크랜머가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로, 앤과의 결혼을 유효로 선언했습니다. 1534년 수장령으로 왕은 '잉글랜드 교회의 지상 유일한 최고 수장'이 되었고, 이것이 영국 국교회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왕비
앤 불린은 1533년 9월 7일 딸 엘리자베스를 낳았지만 아들은 낳지 못했습니다. 1536년 봄, 설득력 없는 증거로 간통과 반역 혐의를 뒤집어쓰고 5월 19일 런던탑 안뜰에서 참수되었습니다. 처형 다음 날 헨리는 앤의 시녀였던 제인 시모어와 약혼했고, 열흘 뒤 결혼했습니다. 1537년 10월 12일 드디어 왕자 에드워드가 태어났지만, 제인은 난산 끝에 감염으로 12일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네 번째부터 여섯 번째 왕비
네 번째 왕비 앤 오브 클리브스는 외교를 위한 결혼이었습니다. 화가 홀바인이 그린 초상화를 보고 결혼을 정했지만, 직접 만난 헨리는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결혼은 1540년 7월 무효가 되었습니다. 앤은 '왕의 누이'라는 칭호와 집 두 채, 넉넉한 연금을 받았습니다.
다섯 번째 왕비 캐서린 하워드는 앤 불린의 사촌으로 아직 십대였습니다. 다른 남성들과의 관계가 드러나 1542년 2월 13일 참수되었습니다. 여섯 번째 왕비 캐서린 파는 부유한 미망인으로, 왕과 종교 문제로 논쟁하기도 했고 왕과 두 딸 메리, 엘리자베스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데 힘을 보탰으며 왕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말년의 헨리, 그리고 역사의 아이러니
젊은 헨리는 운동과 음악에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1536년 1월 24일 마상 창 시합 사고로 다리의 옛 상처가 다시 터졌고 평생 낫지 않았습니다. 말년에는 몸이 크게 불어 기계 장치로 옮겨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가 매독을 앓았다는 설은 대부분의 역사가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헨리는 1547년 1월 28일 55세로 세상을 떠났고, 아들 에드워드 6세가 뒤를 이었습니다. 그 뒤 메리와 엘리자베스까지 세 자녀가 차례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가장 길고 가장 이름난 치세를 남긴 사람은, 태어났을 때 아버지를 실망시켰던 딸 엘리자베스였습니다. 아들을 얻으려고 나라의 종교까지 바꾼 왕이, 결국 딸 덕분에 더 오래 기억되고 있는 셈입니다.
헨리 8세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대를 잇다 | 집안의 혈통을 이어 가다 | 헨리는 아들로 대를 잇고 싶어 했다. |
| 등을 돌리다 | 관계를 끊고 외면하다 | 영국은 로마 교황청에 등을 돌렸다. |
| 눈 밖에 나다 | 윗사람의 신임을 잃다 | 크롬웰은 왕의 눈 밖에 났다. |
| 뜻대로 되지 않다 |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다 | 아들을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
| 역사의 아이러니 | 의도와 반대로 된 역사적 결과 | 딸이 명군이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
연습해 보기: '대를 잇다'와 '등을 돌리다'를 넣어, 헨리 8세가 로마와 결별한 이유를 세 문장으로 설명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