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여왕의 자녀들은 어떻게 유럽 왕실을 이었을까? '유럽의 할머니' 이야기

빅토리아 여왕의 4남 5녀는 대부분 유럽 왕실과 결혼해 여왕은 '유럽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63년 치세와 검은 상복, 혈우병 유전까지 정리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앨버트 공과의 사이에서 4남 5녀를 두었고, 이 자녀들이 대부분 유럽 여러 왕실과 결혼하면서 '유럽의 할머니'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손주들까지 이어진 혼인으로 여왕의 후손은 영국에서 러시아까지 여러 궁정에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 별명 뒤에는 열여덟 살에 즉위하고, 스스로 청혼하고, 남편을 잃은 뒤 40년 동안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열여덟 살의 여왕

여왕은 1819년 5월 24일 런던 켄싱턴 궁전에서 알렉산드리나 빅토리아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켄트 공작은 이듬해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어머니가 정한 엄격한 규칙인 '켄싱턴 시스템'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1837년 6월 20일 큰아버지 윌리엄 4세가 죽자 왕위에 올랐고, 1838년 6월 28일 대관식을 치렀습니다. 젊은 여왕에게 정치를 가르쳐 준 사람은 총리 멜버른 경이었습니다.

여왕이 먼저 청혼하다

군주인 여왕은 직접 청혼했습니다. 1839년 10월 15일 사촌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 공에게 결혼을 청했고, 두 사람은 1840년 2월 10일 결혼했습니다. 여왕은 재위 중 여섯 번이나 습격을 당했는데, 1840년 에드워드 옥스퍼드의 공격이 처음이었고 1850년 로버트 페이트의 공격 때는 실제로 다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국민의 동정과 인기는 더 커졌습니다.

'윈저의 과부'

1861년 12월 14일, 앨버트 공이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같은 해 초에는 어머니도 잃었습니다. 여왕은 남은 평생 검은 상복을 입었고, 오랫동안 공식 석상에 나서지 않아 '윈저의 과부'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도 여왕이 큰 충격을 받아 국정에서 물러나 오랫동안 은둔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검은 옷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슬픔을 세상에 드러낸 의사 표시였고, 오래 모습을 보이지 않는 군주의 모습은 왕실의 인기에도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외로운 여왕은 스코틀랜드인 하인 존 브라운에게 크게 의지했고, 둘의 가까운 관계는 많은 소문을 낳았습니다. 뒤에는 인도인 시종 압둘 카림과도 비슷한 유대를 맺었습니다. 1887년 웨이터로 들어온 그는 곧 '문시', 곧 선생이 되어 여왕에게 우르두어를 가르쳤습니다. 가족과 신하들은 반발했지만 여왕은 이를 인종적 편견이라 여겨 그를 끝까지 곁에 두었습니다.

인도 황제와 두 번의 기념제

여왕은 인도 황제 칭호를 가진 첫 영국 군주였습니다. 칭호는 1876년 5월 1일부터 쓰였고, 1877년 1월 1일 선포식이 열렸습니다. 1887년에는 즉위 50주년인 골든 주빌리를, 1897년 6월 20일에는 60주년인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맞았습니다. 골든 주빌리에는 왕과 왕족 50명을 초대한 연회가 열렸고, 다이아몬드 주빌리는 런던 거리를 약 10킬로미터 행진하는 제국 전체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1837년부터 1901년까지는 여왕의 이름을 따 '빅토리아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 대영제국은 빠르게 넓어졌고, 영국은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공업과 무역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철도가 여행을 바꾸고 전신과 전화가 등장했으며, 1901년에는 국민 넷 중 셋 이상이 도시에 살게 되었습니다. 100년 전에는 다섯 중 하나 정도였습니다.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처럼 여왕의 이름이 붙은 곳도 많습니다.

왕실을 따라 퍼진 혈우병

유럽 왕실을 이은 혈연은 혈우병도 함께 옮겼습니다. 아들 레오폴드가 혈우병 환자였고 두 딸이 보인자였으며, 뒷날 러시아의 황태자 알렉세이와 스페인 왕자 두 명에게서도 이 병이 나타났습니다. 학자들은 자연적인 유전자 돌연변이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우리는 즐겁지 않다'는 유명한 말도 여왕이 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고, 여왕 자신도 부인했습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은 여왕이 자주 크게 웃었다고 기록했습니다.

하얀 옷으로 떠난 여왕

여왕은 제2차 보어 전쟁이 한창이던 1901년 1월 22일 와이트섬의 오즈번 하우스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40년 동안 검은 옷을 입었던 여왕은 장례를 흰색으로 치러 달라고 했고, 흰 드레스와 결혼식 베일을 입은 채 프로그모어에 앨버트와 나란히 묻혔습니다. 63년 7개월의 재위는 2015년 고손녀 엘리자베스 2세가 넘어설 때까지 영국 군주 가운데 가장 길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으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표현 뜻 예문
상복을 입다 장례 때 슬픔을 나타내는 옷을 입다 여왕은 평생 상복을 입었다.
두문불출하다 집 밖에 나가지 않다 남편을 잃고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한 시대를 풍미하다 한 시기를 대표하다 그녀는 한 시대를 풍미했다.
피는 못 속인다 부모를 닮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손녀를 보니 피는 못 속인다.
막을 내리다 어떤 일이 끝나다 여왕의 죽음으로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연습해 보기: '한 시대를 풍미하다'와 '막을 내리다'를 넣어, 아는 역사 인물을 세 문장으로 소개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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