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의 인물
샤를마뉴·잔 다르크·헨리 8세·나폴레옹 등 유럽을 만든 사람들.
- 800년 성탄절에 왕관을 쓴 프랑크 왕: 카롤루스 대제는 정말 '유럽의 아버지'일까
카롤루스 대제가 '유럽의 아버지'로 불리는 까닭은 서유럽 대부분을 하나로 묶고, 서방 황제 자리를 되살리고, 법·교회·학문의 바탕을 놓았기 때문입니다.
- 검은 수염은 정말 잔혹한 해적이었을까? 연기를 두른 사나이의 '겁주기 전략'과 최후
전설만큼 잔혹하지는 않았습니다. 무서운 외모로 싸우지 않고 빼앗는 계산적인 해적이었고, 활동 기간은 2년 남짓, 1718년 오크라코크에서 최후를 맞았습니다.
- 나폴레옹은 정말 키가 작았을까? 코르시카 억양의 황제가 남긴 것들
나폴레옹의 키는 약 168cm로 당시 평균이었습니다. ‘작은 폭군’ 이미지는 영국 풍자에서 왔습니다. 섬 출신 포병 장교가 황제가 되고 무너지기까지를 정리했습니다.
-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은 왜 '맞았다'는 말이 끊이지 않을까?
노스트라다무스는 1555년 수수께끼 같은 4행시를 펴낸 16세기 프랑스 의사이자 점성가입니다. 사건 전에 구체적으로 맞힌 시는 없습니다. 적중설이 생기는 이유를 정리합니다.
-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지은 루트비히 2세, 정말 미친 왕이었을까?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지은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는 진찰도 없이 정신병 판정을 받고 다음 날 호수에서 숨졌습니다. 광인왕 별명의 진실을 정리합니다.
- 독도 안 듣고 총에도 안 죽었다? 라스푸틴의 마지막 밤, 부검 기록이 말하는 것
라스푸틴은 1916년 12월 이마에 맞은 근거리 한 발을 포함해 총상 세 군데로 숨졌습니다. 독살·익사설은 부검 결과와 맞지 않습니다.
- 드라큘라 백작은 실존 인물? '가시공작' 블라드 3세의 진짜 이야기
왈라키아 공 블라드 3세는 살아 있을 때부터 '드라큘라'로 불렸지만 흡혈귀는 아니었습니다. 이름의 유래, 오스만과의 전쟁, 잔혹 전설의 진위를 정리합니다.
- 마리 앙투아네트는 정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했을까? 기록으로 본 왕비의 진짜 얼굴
그녀가 그 말을 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이 문장은 그녀가 아홉 살이던 때 쓰인 루소의 『고백록』에 나옵니다. 단두대에 오른 왕비의 실제 삶을 정리했습니다.
- 마타 하리, 정말 '전설의 여간첩'이었을까? 총살 100년 뒤 드러난 진실
프랑스와 독일 양쪽에서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가들은 그녀가 넘긴 것이 소문 수준이었고 프랑스가 희생양을 필요로 했다고 봅니다.
- 빅토리아 여왕의 자녀들은 어떻게 유럽 왕실을 이었을까? '유럽의 할머니' 이야기
빅토리아 여왕의 4남 5녀는 대부분 유럽 왕실과 결혼해 여왕은 '유럽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63년 치세와 검은 상복, 혈우병 유전까지 정리합니다.
- 앤 불린은 정말 불륜을 저질렀을까? 천 일의 왕비가 참수된 진짜 이유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은 1536년 간통·근친상간·반역죄로 참수됐습니다. 역사가들이 의심하는 혐의와 몰락의 진짜 배경을 정리합니다.
- 엘리자베스 1세는 왜 평생 결혼하지 않았을까? '처녀 여왕'의 선택과 그 시대
엘리자베스 1세가 모든 청혼을 거절한 것은 결혼이 왕권과 나라의 평화, 자신의 안전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이 44년 통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살펴본다.
- 예카테리나 2세는 어떻게 러시아의 여제가 되었을까? 독일 공주의 34년
예카테리나 2세는 독일 소국의 공주 조피로 태어나 15살에 러시아로 갔고, 1762년 남편을 몰아내고 즉위해 34년 동안 러시아를 다스렸습니다.
- 잔 다르크는 왜 화형을 당했을까? 백년전쟁의 흐름을 바꾼 시골 소녀
열일곱 살 무렵 프랑스군을 이끈 잔 다르크는 1431년 '재범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했습니다. 시골 소녀가 왕을 대관시키고 재판에 서기까지를 정리했습니다.
- 조선소에서 일하고 수염에 세금을 매긴 황제: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를 어떻게 바꿨나
표트르 대제(1672–1725)는 네덜란드 조선소에서 배를 배우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세우고, 수염세를 매겨 러시아를 제국으로 만든 군주입니다. 주요 개혁과 그 대가를 정리했습니다.
- 헨리 8세의 여섯 왕비는 어떻게 됐을까? 이혼·처형·죽음으로 갈린 운명
아들을 원했던 헨리 8세는 왕비를 여섯 번 맞았습니다. 둘은 처형되고 하나는 출산 뒤 숨졌죠. 왕비별 결말과 로마와 결별한 이유를 정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