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 하리, 정말 '전설의 여간첩'이었을까? 총살 100년 뒤 드러난 진실
프랑스와 독일 양쪽에서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가들은 그녀가 넘긴 것이 소문 수준이었고 프랑스가 희생양을 필요로 했다고 봅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마타 하리는 프랑스 군 정보기관의 첩자가 되기로 했고, 이후 마드리드에서 돈을 받고 독일에 프랑스 정보를 넘기겠다고 제안해 'H-21'이라는 암호명까지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실제로 중요한 첩자였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영국 정보부 MI5가 공개한 보고서에서도 그녀가 독일에 주요 군사 정보를 빼돌렸다는 프랑스 측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역사가들은 전쟁에 지쳐 가던 프랑스가 그녀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봅니다.
모자 가게 집 딸
마타 하리의 본명은 마르하레타 헤이르트라위다 젤러로, 네덜란드 북부 레이우아르던에서 사업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모자 가게를 운영하며 석유에 투자해 한때 자녀들을 좋은 학교에 보낼 만큼 부유했지만, 1889년 파산했습니다. 부모는 이혼했고 어머니는 1891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훗날 자바 혈통이라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학자들은 그녀의 부모가 모두 네덜란드인이었다고 결론짓습니다.
열여덟 살 때 그녀는 아내를 구한다는 신문 광고를 보고 네덜란드 식민지군 장교 루돌프 매클라우드와 결혼해 자바로 건너갔습니다. 남편은 술에 빠져 폭력을 휘둘렀고, 1899년에는 두 아이가 심하게 앓다가 아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사람은 1902년에 별거했고, 이혼은 1906년에 확정되었습니다.
'자바의 공주'라는 거짓말
파리로 간 그녀는 서커스 기수와 화가의 모델로 생계를 꾸리다가, 1905년 3월 13일 기메 박물관 공연으로 하루아침에 유명해졌습니다. 그녀는 자바섬에서 온 공주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며 '동양식' 춤을 선보였고, '마타 하리'라는 이름은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로 '새벽의 눈'이라는 뜻입니다. 네덜란드 시골 출신이라는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인도의 사제라는 둥 자바의 공주라는 둥 갖가지 헛소문을 퍼뜨렸고, 그럴수록 팬들의 열기는 더 뜨거워졌습니다.
1910년 무렵에는 흉내 내는 무용수가 넘쳐 났고, 그녀는 춤을 출 줄 모르는 무용수라는 비판까지 받게 됩니다. 마지막 무대는 1915년 3월 13일이었습니다. 그 무렵 그녀는 여러 나라의 고위 장교와 정치인을 상대하는 코르티잔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중립국 여권과 러시아인 연인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네덜란드는 중립을 지켰습니다. 네덜란드 국민인 그녀는 스페인과 영국을 거쳐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오갈 수 있었고, 그 움직임은 자연히 정보기관의 눈에 띄었습니다.
운명을 바꾼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녀는 프랑스군과 함께 싸우던 스물세 살의 러시아 대위 바딤 마슬로프를 '평생의 사랑'이라 불렀습니다. 마슬로프가 부상으로 왼쪽 눈을 잃자 그녀는 전선 근처 병원에 면회를 신청했고, 프랑스 군 정보기관은 프랑스를 위해 첩자가 되면 만나게 해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보수는 100만 프랑, 목표는 그녀가 예전에 춤을 보여 준 독일 황태자였습니다. 하지만 황태자는 이름뿐인 장군이라 큰 군사 기밀을 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암호명 H-21
1916년 말 마드리드에서 그녀는 독일 무관 아르놀트 칼레를 만나 돈을 받고 프랑스 정보를 넘기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듬해 1월 칼레는 베를린으로 H-21이라는 독일 첩자에 관한 무선 전보를 보냈고, 프랑스가 이를 가로채 그녀를 지목했습니다. 그런데 이 전보는 프랑스가 이미 해독한 것으로 알려진 암호로 쓰여 있었습니다. 일부러 읽히게 해서 그녀를 체포하게 만들었다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독일 정보 책임자는 그녀가 파리 정치인과 장군들의 사생활 소문만 가져온다며 불만이었다고 합니다.
증거 없는 재판
그녀는 1917년 2월 13일 파리의 호텔에서 체포되어 7월 24일 재판을 받았습니다. 혐의는 독일을 위해 첩보 활동을 해 적어도 5만 명의 병사를 죽게 했다는 것이었지만, 프랑스도 영국도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변호인은 검찰 측 증인을 반대 신문할 수도 없었고, 그녀를 포섭했던 정보장교 라두는 증거를 조작하기까지 했습니다.
1917년 봄 프랑스군은 실패한 공세와 대규모 항명 사태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실패를 떠넘길 독일 첩자 한 명은 정부에 매우 편리한 존재였습니다. 역사가 줄리 윌라이트는 그녀가 스페인 지역 신문에서 찾을 수 없는 정보는 아무것도 넘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사랑했던 마슬로프마저 증언을 거부하자 그녀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끝까지 독일 첩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새벽의 총성, 그리고 남은 의문
1917년 10월 15일 동이 트기 직전, 그녀는 뱅센성의 해자에서 열두 명의 병사로 이루어진 총살대 앞에 섰습니다. 마흔한 살이었습니다. 영국 기자의 목격담에 따르면 그녀는 묶이지 않았고 눈가리개도 거절했습니다. 시신을 거둘 가족은 없었고, 방부 처리된 머리는 파리 해부학 박물관에 보관되었다가 2000년에 사라진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처형 100년 뒤인 2017년, 프랑스군은 1,275쪽에 이르는 재판 기록을 공개했습니다.
마타 하리가 실제로 첩자였는지, 아니면 그것 역시 그녀가 퍼뜨린 수많은 헛소문 가운데 하나였는지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군대를 무너뜨린 팜 파탈이라는 이미지가 그녀를 처형한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마타 하리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희생양이 되다 | 남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쓰다 | 그녀는 전쟁 실패의 희생양이 되었다. |
| 양다리를 걸치다 | 두 쪽과 동시에 관계를 맺다 | 그녀는 두 나라에 양다리를 걸쳤다는 의심을 받았다. |
| 덜미를 잡히다 | 약점이나 증거가 드러나 붙잡히다 | 결국 전보 한 통에 덜미를 잡혔다. |
| 뒤집어씌우다 |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다 | 정부는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뒤집어씌웠다. |
| 의문이 남다 | 확실하지 않은 점이 있다 | 그 판결에는 아직도 의문이 남아 있다. |
연습: '희생양이 되다', '덜미를 잡히다'를 넣어 마타 하리의 재판에 대해 세 문장을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