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은 정말 키가 작았을까? 코르시카 억양의 황제가 남긴 것들
나폴레옹의 키는 약 168cm로 당시 평균이었습니다. ‘작은 폭군’ 이미지는 영국 풍자에서 왔습니다. 섬 출신 포병 장교가 황제가 되고 무너지기까지를 정리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생각만큼 키가 작지 않았습니다. 키는 약 168cm로 당시 남성의 평균 정도였고, ‘성질 급한 꼬마 황제’라는 이미지는 그를 ‘리틀 보니’라고 놀린 영국 신문과 풍자화의 영향이 큽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키가 아니라, 프랑스어를 외국어로 배운 섬 소년이 십여 년 만에 황제 자리까지 올랐다는 사실입니다.
프랑스어가 모국어가 아니었던 소년
나폴레옹은 1769년 8월 15일 지중해의 코르시카섬 아작시오에서 태어났습니다. 코르시카는 바로 한 해 전인 1768년에 제노바 공화국이 프랑스에 넘긴 땅이었습니다. 태어나는 시기가 조금만 빨랐어도 ‘가장 유명한 프랑스인’은 제노바의 신민으로 태어났을 겁니다.
그가 처음 쓴 말은 코르시카어와 이탈리아어였습니다. 아홉 살에 프랑스 본토로 건너왔지만 평생 코르시카 억양이 섞인 프랑스어를 썼고, 철자도 서툴렀습니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위로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유럽의 법을 다시 쓴 사람도 끝내 원어민처럼 말하지는 못했으니까요.
학교에서는 출신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지만, 1784년 파리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이듬해 코르시카 출신으로는 처음 졸업하고 포병 소위가 됐습니다.
혁명이 열어 준 출셋길
1789년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귀족이 아닌 장교에게도 길을 열었습니다. 1793년 툴롱 포위전에서 포병 지휘관이던 그는 항구를 내려다보는 요새를 공격하는 계획을 세웠고, 도시는 그해 12월 함락됐습니다. 1795년 10월에는 파리에서 왕당파 폭동을 대포로 진압했습니다. 1796년 3월 조제핀과 결혼한 뒤 곧장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으로 떠났고, 1796~97년의 연승으로 국민적 영웅이 됐습니다.
1798년 이집트 원정은 군사적으로는 실패였지만, 이 원정에서 로제타석이 발견됐습니다. 훗날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열쇠가 된 바로 그 돌입니다.
스스로 왕관을 쓴 황제
1799년 11월,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로 총재정부를 무너뜨리고 제1통령이 됐습니다. 1801년에는 교황과 정교협약을 맺었고, 1802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만들었습니다. 이 훈장은 지금도 프랑스 최고 훈장입니다.
1804년 12월 2일 노트르담 대성당 대관식에서 그는 교황에게 축성을 받은 뒤, 왕관은 자기 손으로 썼고 이어 조제핀에게 관을 씌웠습니다. 권력은 교회도 혈통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제국보다 오래 살아남은 법전
1804년 시행된 민법전, 훗날의 나폴레옹 법전은 법 앞의 평등, 종교적 관용, 재산권 보장을 담았습니다. 반면 여성과 자녀의 권리를 줄이고 이혼을 어렵게 했습니다. 이 법전은 서유럽과 중남미 등 여러 지역의 법에 영향을 줬습니다. 1808년에는 제국대학을 세우고 이듬해 바칼로레아를 도입했으며, 1801년 프랑스에 공식 도입된 미터법도 그의 군대와 함께 서유럽에 퍼졌습니다.
그늘도 분명합니다. 1802년 식민지에 노예제를 부활시켰고, 생도맹그 원정이 실패한 뒤 해방된 노예들은 1804년 독립국 아이티를 선포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워털루까지
1805년 아우스터리츠에서 크게 이겼지만, 같은 해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 해군이 승리하면서 바다는 끝내 영국의 것이었습니다. 1812년에는 약 45만 명의 병력으로 러시아를 침공해 모스크바까지 들어갔지만, 겨울 퇴각은 재앙이었고 살아 돌아온 병력은 약 7만 5천 명뿐이었습니다.
1814년 퇴위해 엘바섬으로 쫓겨났다가 이듬해 탈출해 ‘백일천하’를 이뤘지만, 1815년 6월 18일 워털루 전투에서 패했습니다. 남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섬으로 유배된 그는 1821년 5월 5일 51세로 세상을 떠났고, 부검 결론은 위암이었습니다. 훗날 비소 독살설이 나왔지만 당시 비소가 생활용품에 널리 쓰였다는 점 등으로 힘을 잃었고, 2021년 연구도 다시 위암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유해는 1840년 파리로 돌아와 앵발리드에 묻혔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약 60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며, 그가 계몽적 개혁가였는지 과대망상의 독재자였는지는 지금도 논쟁거리입니다.
나폴레옹으로 배우는 우리말 표현
성공과 실패를 말할 때 쓰기 좋은 한국어 표현 다섯 가지입니다.
| 표현 | 뜻 | 예문 |
|---|---|---|
| 두각을 나타내다 | 재능이 눈에 띄기 시작하다 | 그는 어린 나이에 두각을 나타냈다. |
| 하루아침에 유명해지다 | 갑자기 이름이 알려지다 | 그 영화로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 |
| 욕심이 화를 부르다 | 지나친 욕심이 실패를 낳다 | 결국 욕심이 화를 불렀다. |
| 재기하다 | 실패 뒤 다시 일어서다 | 그는 사업 실패 후 재기했다. |
| 대세가 기울다 | 형세가 한쪽으로 결정되다 | 후반전에 대세가 기울었다. |
연습해 보세요: 표의 표현을 두 개 이상 넣어 나폴레옹의 삶을 세 문장으로 정리해 보세요. 다 쓰면 소리 내어 읽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