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는 왜 스물두 살에 음악을 시작했을까? 생애와 대표작 정리
법률학교를 나와 법무부 공무원으로 일하던 차이콥스키는 22살에 음악원에 들어갔습니다. 늦깎이 작곡가의 생애와 백조의 호수·호두까기 인형 이야기.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는 원래 음악가가 아니라 공무원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황실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법무부에서 약 3년 일한 뒤, 1862년 스물두 살에 새로 문을 연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작곡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늦게 출발한 사람이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교향곡 『비창』을 남겼습니다. 그의 생애와 대표작을 차례로 정리해 봅니다.
우랄의 공장 도시에서 법률학교로
차이콥스키는 1840년 5월 7일 우랄 지방의 공업 도시 봇킨스크에서 제철소를 관리하던 광산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다섯 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1850년 집에서 약 1,300킬로미터 떨어진 상트페테르부르크 법률학교로 보내졌습니다. 열네 살 때에는 어머니를 콜레라로 잃었습니다.
음악원에서는 안톤 루빈시테인에게 작곡을 배웠고, 1865년 졸업과 함께 안톤의 동생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의 제안으로 모스크바 음악원 이론 교수가 됐습니다. 서유럽식 음악원 교육을 받은 초기 러시아 작곡가였기에, 발라키레프가 이끈 민족주의 그룹 '러시아 5인조'와는 거리를 두면서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실패로 시작한 『백조의 호수』
1875년 5월 볼쇼이 극장의 베기체프가 800루블에 발레 음악을 의뢰했고, 차이콥스키는 이듬해 4월까지 곡을 완성했습니다. 1877년 3월 4일 모스크바 초연에서 비평가들은 음악이 "너무 시끄럽고, 너무 바그너 같고, 너무 교향악적"이라고 혹평했습니다. 하지만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뒤인 1895년, 프티파와 이바노프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새로 안무한 판이 큰 성공을 거두었고, 오늘날 대부분의 발레단이 이 판을 바탕으로 공연합니다.
짧은 결혼, 그리고 한 번도 만나지 않은 후원자
1877년 서른일곱 살의 차이콥스키는 옛 제자 안토니나 밀류코바와 결혼했지만, 결혼은 두 달 반 만에 무너졌습니다. 전기 작가들은 대체로 그가 동성애자였다고 보며, 소련 당국은 이 주제를 억눌렀습니다.
같은 해 철도 재벌의 미망인 나데즈다 폰 메크가 후원자가 되어 1877년부터 1890년까지 그를 지원했습니다. 두 사람은 끝내 직접 만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덕분에 그는 교직을 떠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4번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학자 와일리는 그가 폰 메크 덕분에 러시아 최초의 전업 직업 작곡가가 되었다고 평가합니다.
거절당한 협주곡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처음에 친구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에게 퇴짜를 맞았고, 바이올린 협주곡도 바이올리니스트 아우어가 처음엔 연주를 거절했다가 나중에 크게 성공시켰습니다. 지금은 두 곡 모두 공연장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협주곡에 속합니다. 첫 반응이 최종 평가는 아니라는 좋은 예입니다.
『호두까기 인형』과 마지막 교향곡 『비창』
『호두까기 인형』은 1892년 12월 18일 마린스키 극장에서 오페라 『이올란타』와 함께 초연됐지만, 당시에는 성공작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을 크리스마스 전통으로 만든 것은 1954년 뉴욕 시티 발레단의 발란신 판이었습니다.
1891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카네기홀 개관 공연을 지휘했고, 1893년에는 조카 다비도프에게 헌정한 교향곡 6번 『비창』을 완성했습니다. 그해 11월 6일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식 사인은 콜레라였지만 1980년대 이후 자살설이 제기됐고, 연구자 와일리는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우리는 모르며, 어쩌면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정리합니다.
지금도 사랑받는 이유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한 번도 유행에서 밀려난 적이 없고, 영국과 미국에서의 인기는 베토벤 다음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비결은 복잡한 기교보다 감정의 직접성에 있습니다.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긴 선율을 되풀이하며 조금씩 끌어올려, 듣는 사람의 마음을 끝까지 흔듭니다. 러시아에서는 너무 서구적이라는 말을,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틀을 넘어섰다는 말을 들었던 그는 결국 온 세계가 알아듣는 음악의 언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늦게 시작해도, 첫 평가가 나빠도 끝내 빛을 볼 수 있다는 것.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에게도 힘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차이콥스키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늦깎이 | 남보다 늦게 어떤 일을 시작한 사람 | 그는 늦깎이 작곡가였다. |
| 혹평을 받다 | 아주 나쁜 평가를 받다 | 초연은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
| 퇴짜를 맞다 | 제안이나 작품이 거절당하다 | 그의 협주곡은 처음에 퇴짜를 맞았다. |
| 빛을 보다 | 뒤늦게 인정받다 | 이 발레는 그가 죽은 뒤에야 빛을 봤다. |
| 가슴을 울리다 | 깊이 감동시키다 | 마지막 선율이 가슴을 울린다. |
연습해 보기: 『호두까기 인형』의 한 장면을 듣고, '늦깎이'나 '빛을 보다'를 넣어 자신의 이야기를 한국어 두 문장으로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