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다 러브레이스는 왜 최초의 프로그래머라고 불릴까? 시인의 딸이 내다본 컴퓨터의 미래
1843년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해석기관 논문에 긴 주석을 달고 베르누이 수를 계산하는 절차를 적었습니다. '최초의 프로그램'이라는 평가의 근거와 한계를 함께 살펴봅니다.
에이다 러브레이스가 최초의 프로그래머라고 불리는 이유는, 1843년에 발표한 해석기관(Analytical Engine) 해설 주석에서 이 기계로 베르누이 수를 계산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적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 '노트 G'는 흔히 처음으로 출판된 컴퓨터 프로그램이라고 소개됩니다. 다만 찰스 배비지가 그보다 앞서 발표하지 않은 프로그램을 이미 썼고, 러브레이스의 독창성을 두고 이견을 내는 역사가도 있다는 점은 함께 알아 두는 편이 공정합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특별한 까닭은 따로 있습니다. 기계가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시대에, 계산기가 숫자를 넘어 음악 같은 기호의 세계까지 다룰 수 있으리라고 상상했다는 점입니다.
시인 바이런의 딸로 태어나다
에이다는 1815년 12월 10일 런던에서 오거스타 에이다 바이런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유명한 시인 바이런 경, 어머니는 사회 개혁가 앤 이사벨라 밀뱅크였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바이런은 에이다가 태어나고 한 달쯤 뒤 아내와 갈라섰고, 1816년 4월 21일 별거 증서에 서명한 뒤 며칠 만에 영국을 영영 떠났습니다. 에이다는 세상이 다 아는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 채 자랐습니다.
병약한 소녀와 수학 선생님들
어린 에이다는 자주 아팠습니다. 여덟 살 때는 두통 때문에 시야가 흐려질 정도였고, 1829년 6월에는 홍역을 앓은 뒤 몸이 마비되어 거의 1년을 누워서 지냈습니다. 1831년이 되어서야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집에서 수학과 과학을 꾸준히 배웠습니다. 윌리엄 프렌드, 윌리엄 킹, 그리고 과학자로 이름난 메리 서머빌이 그녀를 가르쳤고, 1840년대에는 수학자 오거스터스 드모르간이 그녀의 수학 공부를 많이 도왔습니다. 침대 위에서 보낸 긴 시간이 오히려 생각하는 힘을 단련시켰는지도 모릅니다.
배비지와의 만남
1833년 6월 5일, 에이다는 메리 서머빌의 소개로 수학자 찰스 배비지를 처음 만났습니다. 배비지는 톱니바퀴로 움직이는 계산 기계에 평생을 건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구상한 해석기관은 명령을 읽어 계산 순서를 바꿀 수 있는, 말하자면 범용 컴퓨터의 먼 조상이었습니다. 열일곱 살의 에이다는 이 기계의 발상에 깊이 빠져들었고, 두 사람의 교류는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결혼, 그리고 '러브레이스 백작 부인'
1835년 7월 8일 에이다는 윌리엄 킹과 결혼했습니다. 남편이 1838년 초대 러브레이스 백작이 되면서 그녀는 러브레이스 백작 부인이 되었습니다. 부부 사이에는 1836년생 바이런, 1837년생 앤 이사벨라, 1839년생 랠프까지 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에이다 러브레이스'라는 이름은 바로 이 작위에서 왔습니다.
번역보다 세 배 긴 주석
1842년부터 1843년 사이, 에이다는 이탈리아 공학자 루이지 메나브레아가 해석기관에 대해 쓴 논문을 영어로 옮겼습니다. 번역은 1843년 9월 학술지 『사이언티픽 메모어스』에 'AAL'이라는 머리글자로만 실렸습니다. 정말 눈여겨볼 부분은 그녀가 덧붙인 A부터 G까지 일곱 개의 주석입니다. 주석의 분량은 번역 본문의 약 세 배에 달했습니다. 번역자가 원문보다 몇 배나 긴 해설을 붙였다는 것은, 그녀가 단순한 번역자가 아니라 그 기계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 저자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노트 G에 베르누이 수를 기계로 계산하는 방법이 담겨 있었습니다.
'시적인 과학'과 기계가 만드는 음악
에이다는 자기 생각하는 방식을 '시적인 과학'이라고 불렀습니다. 수학과 상상력을 떼어 놓지 않겠다는 태도였습니다. 그 상상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 음의 관계를 기계의 표기법으로 나타낼 수만 있다면 해석기관이 정교하고 과학적인 음악을 작곡할 수도 있다는 문장입니다. 숫자를 다루는 기계도 기호만 정하면 음악을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은, 오늘날 컴퓨터가 글자와 그림과 소리를 똑같이 처리하는 모습을 백 년도 더 앞서 내다본 셈입니다.
"기계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는 신중함
동시에 에이다는 기계의 힘을 부풀리지 않았습니다. 해석기관은 무언가를 스스로 만들어 낼 능력이 전혀 없다고 적었습니다. 훗날 앨런 튜링은 이 생각을 '러브레이스 부인의 반론'이라고 이름 붙여 다루었습니다. 인공지능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 질문은 여전히 논쟁거리입니다. 대담한 상상과 냉정한 한계 인식을 함께 지녔다는 점이 그녀의 진짜 깊이입니다.
너무 이른 죽음, 남겨진 이름
에이다는 1852년 11월 27일 런던 메릴본에서 서른여섯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인은 자궁경부암이었습니다. 본인의 바람에 따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버지 바이런 곁, 노팅엄셔 허크널의 세인트 메리 막달레나 교회에 묻혔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는 프로그래밍 언어에 'Ada'라는 이름을 붙였고, 그 기준 문서는 그녀의 생일인 1980년 12월 10일에 승인되었습니다. 2009년부터는 해마다 10월 둘째 화요일을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날'로 정해 과학기술 분야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을 기립니다.
에이다 러브레이스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앞을 내다보다 | 미래를 미리 짐작하다 | 그녀는 컴퓨터의 미래를 앞을 내다보듯 그렸다. |
| 덧붙이다 | 이미 있는 것에 더 보태다 | 번역에 긴 주석을 덧붙였다. |
| ~에 빠져들다 | 어떤 일에 깊이 몰두하게 되다 | 소녀는 계산 기계의 발상에 빠져들었다. |
| 이견을 내다 | 다른 의견을 말하다 | 그 평가에 이견을 내는 역사가도 있다. |
| 이름을 남기다 | 후세에 이름이 전해지다 | 그녀는 프로그래밍 언어에 이름을 남겼다. |
연습 과제: 미래를 앞서 내다봤다고 생각하는 인물을 한 명 골라, '~에 빠져들다'와 '이름을 남기다'를 넣어 세 문장으로 소개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