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를 처음 쓴 사람: 오일러는 어떻게 수학의 말투를 바꿨나
오일러(1707–1783)는 f(x)·e·i·Σ 같은 기호를 퍼뜨리고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문제를 풀었으며, 눈이 거의 멀고도 연구를 이어 간 수학자입니다. 삶과 e^(iπ)+1=0을 쉽게 풀었습니다.
레온하르트 오일러(1707–1783)가 수학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수학의 내용과 표기법을 한꺼번에 바꿨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래프 이론을 처음 세웠고, 정수론·미적분·복소해석에서 굵직한 발견을 했으며, 함수를 뜻하는 f(x), 자연로그의 밑 e, 마이너스 1의 제곱근을 뜻하는 i처럼 지금도 교과서에 나오는 기호 상당수를 도입했습니다. 수학과 과학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글을 남긴 사람으로 꼽히며, 866편의 저작과 편지는 훗날 방대한 전집으로 묶였습니다. 공책에 수식을 한 줄이라도 써 봤다면, 우리는 이미 오일러의 말투를 빌려 쓰고 있는 셈입니다.
바젤 목사의 아들
오일러는 1707년 4월 15일 스위스 바젤에서 개혁교회 목사 파울 오일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대부분을 가까운 리엔 마을에서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수학자 야코프 베르누이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 아들에게 처음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열세 살에 바젤 대학에 들어간 오일러는 당대 유럽의 이름난 수학자 요한 베르누이를 만납니다. 바쁜 베르누이는 개인 교습을 거절했지만, 어려운 책을 혼자 읽고 막히는 부분은 토요일 오후마다 물어보러 오라고 했습니다. 오일러는 훗날 스승이 의문 하나를 풀어 주면 다른 의문 열 개가 한꺼번에 사라졌다고 회상했습니다. 이렇게 베르누이의 응원을 받아 목사 대신 수학자가 되겠다는 허락을 아버지에게서 얻어 냈습니다. 답을 대신 주지 않고 답 찾는 법을 가르치는 것, 외국어 공부에도 그대로 통하는 방법입니다.
페테르부르크와 베를린을 오가며
1727년 오일러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 아카데미에 자리를 얻었고, 러시아어를 익히며 의학 부문에서 수학 부문으로 옮겼습니다. 1741년에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의 초청으로 베를린 아카데미로 가서 25년 동안 수백 편의 논문을 썼고, 1748년 함수를 다룬 대표작 『무한 해석 입문』을 펴냈습니다. 다만 왕과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재치 있는 대화를 즐기던 왕에게 신앙심 깊고 소박한 이 수학자는 숫자 밖의 일에는 어두운 사람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예카테리나 2세가 즉위한 뒤 1766년 다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 그곳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1738년 심한 열병을 앓은 뒤 오른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고, 1766년에는 왼쪽 눈에서 백내장이 발견되었습니다. 수술로 잠시 나아졌지만 합병증으로 거의 완전히 실명했습니다. 놀랍게도 연구량은 줄지 않았습니다. 필경사에게 받아 적게 하는 방식으로 일했고, 1775년에는 평균 일주일에 한 편꼴로 수학 논문을 냈습니다. 기억력도 대단해서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외웠고, 처음 100개의 소수와 그 6제곱까지 머릿속에 담고 있었습니다.
1783년 9월 18일, 가족과 점심을 먹은 뒤 새로 발견된 천왕성의 궤도를 이야기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프랑스의 콩도르세는 추도문을 "그는 계산하기를, 그리고 살기를 멈추었다"는 문장으로 맺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기호
오일러의 가장 큰 선물은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함수 f의 x에서의 값을 f(x)로 처음 쓴 사람이 그였고, 삼각함수의 현대식 표기를 들여왔으며, 자연로그의 밑에 e, 합에 Σ, 허수 단위에 i를 썼습니다. 원주율 기호 π는 웨일스의 수학자 윌리엄 존스가 먼저 썼지만 널리 퍼뜨린 사람은 오일러였습니다. 그의 교과서가 유럽 곳곳에서 읽히면서 그의 습관이 모두의 습관이 된 것입니다. 기호는 수학의 문법과 같아서, 좋은 기호 하나가 긴 설명을 짧은 단어처럼 압축해 줍니다.
e^(iπ)+1=0을 쉽게 읽기
오일러의 이름이 붙은 가장 유명한 식은 오일러 등식 e^(iπ)+1=0입니다. 이 한 줄에는 0, 1, 원주율 π(약 3.14159), 자연상수 e(약 2.71828), 제곱하면 마이너스 1이 되는 허수 i까지 수학에서 특히 중요한 다섯 수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감탄하는지는 계산을 몰라도 느낄 수 있습니다. π는 원에서, e는 성장과 복리 계산에서, i는 음수의 제곱근을 생각하다가 나왔습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자란 개념들이 한 줄로 이어지고, 그 답이 딱 0이 됩니다. 이 등식은 지수함수와 원의 기하학을 잇는 오일러 공식 e^(ix)=cos x+i sin x에 π를 넣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1990년 수학 잡지 The Mathematical Intelligencer 독자 투표에서 "수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리"로 뽑혔습니다. 다만 오일러가 1748년에 발표한 것은 일반 공식이고, 다섯 상수를 나란히 놓은 이 형태를 그가 직접 썼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며 누가 처음 명시했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합니다.
일곱 개의 다리와 그래프 이론
1735년 오일러는 프로이센의 도시 쾨니히스베르크의 수수께끼를 풀었습니다. 강 가운데 두 섬과 도시를 잇는 일곱 다리를 각각 꼭 한 번씩만 건너며 산책할 수 있느냐는 문제였습니다. 그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고, 이 풀이는 그래프 이론의 첫 정리로 여겨집니다. 거리와 모양을 버리고 무엇이 무엇과 이어져 있는지만 보는 이 생각법은 오늘날 내비게이션과 통신망 설계에도 살아 있습니다. 또 구멍 없는 입체에서는 꼭짓점 수에서 모서리 수를 빼고 면 수를 더하면 언제나 2가 된다는 사실도 찾아냈습니다. 정육면체라면 8에서 12를 빼고 6을 더해 2입니다.
지금도 읽히는 이유
라플라스는 "오일러를 읽어라, 그는 우리 모두의 스승이다"라고 했고, 가우스는 오일러의 저작을 공부하는 것이 수학의 가장 좋은 학교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독일 공주에게 물리와 수학을 쉬운 말로 풀어 쓴 편지를 200통 넘게 보냈는데, 이 책은 그의 어떤 전문서보다 널리 읽혔습니다. 스위스 독일어, 라틴어, 러시아어 사이를 오가며 어려운 생각을 모두가 쓰는 기호로 바꾼 오일러의 삶은, 작은 표현을 매일 쌓아 가는 외국어 공부와도 닮았습니다.
오일러로 배우는 영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crunch the numbers | 계산을 해 보다 | Euler could crunch the numbers in his head. |
| against the odds | 어려움을 딛고 | He kept working against the odds. |
| leave a mark on | 흔적을 남기다 | His notation left a mark on every textbook. |
| it all adds up | 앞뒤가 맞아떨어지다 | Once you draw the bridges, it all adds up. |
| a household name | 누구나 아는 이름 | In math, Euler is a household name. |
연습 과제: 지금 배우고 있는 것 하나를 "against the odds", "it all adds up"을 넣어 영어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