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날 밤 숨진 '신의 채찍' 아틸라, 로마는 왜 그를 그토록 두려워했나
훈족의 왕 아틸라는 434–453년 동로마에 막대한 금을 받아 내고 갈리아와 이탈리아를 침공했습니다. 결혼식 날 밤의 죽음까지, 공포의 실체를 정리했습니다.
아틸라가 '신의 채찍'이라 불릴 만큼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은, 거의 20년 동안 동서 로마 어느 쪽도 그를 제대로 막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434년부터 죽을 때까지 약 18년 동안 중부 유럽에서 흑해, 도나우강에서 발트해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제국을 다스렸습니다. 동로마의 도시들을 차례로 침공해 막대한 금을 공물로 받아 냈고, 갈리아와 이탈리아까지 쳐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를 직접 만난 사람의 기록 속 아틸라는 단순한 야만인 정복자와는 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초원에서 온 훈족
훈족은 볼가강 동쪽에서 나타난 유라시아 유목민으로, 370년 무렵 유럽에 들어왔습니다. 가축의 고기와 젖을 주식으로 삼았고,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기마 궁수들은 무적이라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훈족을 피해 달아난 고트족 등이 로마 제국 안으로 밀려들었고, 378년에는 고트족이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황제 발렌스를 전사시켰습니다. 훈족의 등장은 로마 세계 전체를 뒤흔든 연쇄 반응의 시작이었습니다.
아틸라는 삼촌 루아가 죽은 뒤 형 블레다와 함께 왕위에 올랐습니다. 다만 두 사람이 공동으로 다스렸다는 설과 블레다가 실질적인 왕이고 아틸라는 2인자였다는 설이 함께 전합니다. 블레다의 죽음도 사냥 중 사고라는 설과 아틸라가 암살했다는 설이 있어 지금까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의 정체는 '돈을 내게 하는 힘'
아틸라가 무서웠던 첫째 이유는 도시를 불태우는 것보다 부유한 제국이 해마다 돈을 내게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첫 조약에서 훈족은 말에 탄 채로 로마 사절과 협상해 도망자 송환과 시장 개방을 얻어 내고, 연간 공물을 금 700로마파운드로 두 배 올렸습니다.
443년에는 로마인이 아는 한 처음으로 파성퇴와 이동식 공성탑을 들고 나타나 나이수스(지금의 니시) 같은 거점을 함락했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이중 성벽만은 넘지 못했지만,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벌금으로 금 6천 파운드를 내고 연간 공물을 세 배인 2,100파운드로 올리는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한 번의 패배보다 해마다 바치는 공물이 로마에는 더 큰 굴욕이었습니다.
금을 멀리한 왕
로마와 그리스의 기록은 아틸라를 악의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도 사절로 그를 직접 만난 프리스쿠스의 기록은 흥미롭습니다. 요르다네스가 전하는 그 묘사에 따르면 아틸라는 키가 작고 가슴이 넓으며 머리가 크고 눈이 작았고, "전쟁을 사랑하지만 행동은 절제했으며", 도움을 청하는 이에게 너그러웠다고 합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도 그를 무지한 싸움꾼이 아니라, 자기 민족의 강점과 약점을 정확히 알고 신기술을 들여와 전력을 보강한 혁신가였으며 황금을 멀리할 만큼 절제력이 강했다고 평가합니다. 두려운 평판과 계산이 빠른 협상가의 얼굴, 이 둘이 함께 있었기에 로마는 그를 더 무서워했을 것입니다.
공주의 반지와 갈리아 침공
450년, 서로마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누이 호노리아가 원치 않는 결혼에서 벗어나려고 아틸라에게 도움을 청하며 반지를 보냈습니다. 아틸라는 이를 청혼으로 받아들이고, 지참금으로 서로마 제국의 절반을 요구했습니다. 서로마는 즉시 거절했지만, 아틸라는 이를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451년 그는 군대를 이끌고 지금의 프랑스인 갈리아로 진격해 오를레앙까지 나아갔으나, 카탈라우눔 전투에서 서로마 장군 아에티우스를 만나 퇴각했습니다. 아에티우스는 서고트 왕 테오도리크 1세와 손을 잡고 있었고, 테오도리크는 이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이탈리아 침공과 베네치아
452년 두 번째 원정에서 아틸라는 이탈리아를 공격해 황제를 수도 라벤나에서 몰아내기도 했습니다. 아퀼레이아는 원래 자리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파괴되었고, 사람들이 석호의 작은 섬들로 피난한 것이 훗날 베네치아로 이어졌습니다.
교황 레오 1세가 포함된 사절단이 만토바 근처에서 아틸라를 만났고, 그는 이탈리아에서 물러나기로 약속했습니다. 기독교 기록은 공을 교황에게 돌렸지만, 이탈리아의 기근과 진영 안의 질병, 훈족 본거지를 공격한 동로마 군대도 큰 이유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혼식 날 밤의 죽음
453년, 아틸라는 일디코라는 젊은 여인과 결혼식을 올린 그날 밤 숨졌습니다. 사인을 두고는 일디코에 의한 암살, 과음으로 인한 질식 등 추측이 무성합니다. 동시대인 프리스쿠스의 기록은 밤사이 심한 출혈로 상처 없이 죽은 채 발견되었다고 전하며, 80년 뒤의 한 연대기에만 아내가 찔렀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부분의 학자는 이를 소문으로 봅니다.
그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매장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살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기 때문입니다. 금·은·철로 된 세 겹의 관에 묻혔다는 전승도 있지만, 무덤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에게 기대었던 제국
아틸라가 죽자 그의 제국은 곧 무너졌습니다. 공포의 거대한 구조물이 결국 한 사람의 힘에 기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뒤 아틸라는 전설 속 인물이 되어, 노르드 사가와 독일 서사시에 '에첼'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주세페 베르디는 1846년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 「아틸라」를 발표했습니다. 서구인에게 공포의 대명사가 된 '신의 채찍'은, 그렇게 역사와 전설 양쪽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아틸라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공포에 떨다 | 몹시 두려워하다 | 사람들은 소문만 듣고도 공포에 떨었다. |
| 명분으로 삼다 | 어떤 일을 하는 핑계로 쓰다 | 그는 청혼을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다. |
| 모래 위에 지은 집 | 기초가 약해 쉽게 무너지는 것 | 그 제국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었다. |
| 혀를 내두르다 | 몹시 놀라거나 감탄하다 | 사절들은 그의 협상 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
| 발목을 잡다 |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다 | 기근과 질병이 원정의 발목을 잡았다. |
연습: '명분으로 삼다', '발목을 잡다'를 넣어 아틸라의 이탈리아 원정에 대해 세 문장을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