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로는 정말 로마에 불을 질렀을까? '불타는 로마를 보며 노래했다'는 이야기의 진실

아마 아닙니다. 타키투스는 대화재가 났을 때 네로가 안티움에 있었고 서둘러 돌아와 구호를 지휘했다고 씁니다. 노래 이야기는 적대적인 후대 기록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네로가 직접 로마에 불을 질렀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서기 64년 7월 18일에서 19일로 넘어가는 밤 로마 대화재가 일어났을 때, 역사가 타키투스는 네로가 로마에서 약 56킬로미터 떨어진 안티움 별장에 있었고 소식을 듣고 돌아와 구호를 지휘했다고 기록합니다. 불타는 도시를 보며 트로이 함락의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는 네로에게 매우 적대적이었던 수에토니우스와 카시우스 디오가 전한 것입니다. 네로가 어머니와 아내를 죽인 잔혹한 황제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방화범 네로'의 모습은 그의 기록 중에서 가장 근거가 약한 부분입니다.

황제가 될 줄 몰랐던 아이

네로는 서기 37년에 태어났고,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아우구스투스의 증손녀이자 게르마니쿠스의 딸이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황제는 외삼촌 칼리굴라였고, 어머니는 한때 유배를 당했으며 어린 네로는 물려받을 재산까지 빼앗긴 채 고모 집에서 자랐습니다.

운명이 바뀐 것은 서기 49년 어머니가 황제 클라우디우스와 결혼하면서였습니다. 네로는 클라우디우스의 양자가 되었고, 54년에는 황제의 친아들 브리타니쿠스를 제치고 황제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때 나이는 겨우 열여섯 살이었습니다.

선정을 베풀던 처음 몇 년

의외로 네로의 통치 초기는 좋은 정치로 기억됩니다. 철학자 세네카와 근위대장 부루스의 보좌를 받아 선정을 베풀었고, 시와 노래, 건축 같은 예술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훗날 트라야누스 황제는 이 시기를 '네로의 5년'이라 부르며 모범적인 통치로 꼽았다고 전해집니다. 세금 징수인을 더 엄격히 감독했고, 노예가 자신의 처우에 대해 관청에 호소할 수 있게 한 것도 이때입니다.

네로는 경기와 공연을 아낌없이 열어 평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습니다. 다만 그 비용은 주로 부유층이 떠안았고, 훗날 역사를 기록한 사람들이 바로 그 귀족 계층이었다는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어머니, 아내, 그리고 동생

폭군이라는 평가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55년에 의붓동생 브리타니쿠스가 독살되었고, 59년에는 정치에 간섭하던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62년에는 아내 옥타비아를 살해했습니다. 65년에는 스승 세네카에게 자살을 명령했습니다. 화재보다 이런 가족 살해가 '폭군 네로'라는 이름의 진짜 출발점입니다.

로마가 불탄 밤

불은 대전차 경기장 키르쿠스 막시무스 주변, 불붙기 쉬운 물건을 파는 상점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강한 바람을 타고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과 빽빽한 공동주택 사이로 번져 나갔고, 엿새 동안 타다가 잦아드는 듯하더니 다시 사흘을 더 탔습니다. 로마의 14개 구역 가운데 3개가 완전히 무너지고 7개가 심하게 망가졌습니다.

로마는 원래 불이 잦은 도시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야간 소방대를 만들었지만, 그들이 쓸 수 있는 것은 물동이와 담요, 식초, 그리고 건물을 허물어 불길을 끊는 방법 정도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역사가들은 이렇게 붐비는 목조 도시에서 큰 화재는 언젠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노래하는 네로' 이야기는 어디서 왔나

이 이야기를 전하는 고대 역사가 세 명은 모두 현장을 보지 못했습니다. 타키투스와 수에토니우스는 네로가 죽고 50년도 더 지나서, 카시우스 디오는 150년 넘게 지나서 글을 썼습니다. 내용도 서로 다릅니다. 궁전에서 불타는 도시를 보며 리라를 연주하고 노래했다는 판본, 에스퀼리누스 언덕의 탑에서 지켜봤다는 판본, 그리고 사적인 무대에서 노래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만 전하는 판본이 있습니다.

가장 신중한 타키투스는 네로가 범인인지에 대해 판단을 미룹니다. 소문을 적으면서도, 불이 났을 때 네로는 안티움에 있었다고 함께 기록한 것입니다. 영어의 "로마가 불타는 동안 바이올린을 켠다"는 관용구는 바로 이 오래된 소문에서 나온 말입니다.

화재 뒤에 네로가 한 일

기록에 남은 네로의 대응은 뜻밖에 현실적입니다. 그는 자기 돈으로 시신과 잔해를 치우게 했고,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궁전과 정원을 열어 주었으며, 생존자들이 굶지 않도록 식량을 들여왔습니다. 새 건축 규칙도 만들어, 집 사이를 띄우고 벽돌로 짓고 넓은 길가에 주랑을 두게 했습니다. 그 도시 계획의 흔적은 지금의 로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의심을 산 이유는 그 다음에 지은 건물 때문이었습니다. 불탄 자리에 거대한 황금 궁전 도무스 아우레아를 세우자, 자기 궁전을 지으려고 불을 질렀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네로가 그 땅의 대부분을 이미 갖고 있었고 나머지도 불 없이 거둘 수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기독교도에게 떠넘긴 책임

민심이 흔들리자 네로는 당시 신흥 종교였던 기독교에 책임을 덮어씌우고 신자들을 학살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로마 황제 가운데 최초의 기독교 박해자로 기록되었고, 이것이 폭군이라는 낙인을 굳힌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다만 초기 저자 가운데 박해와 화재를 연결한 사람은 타키투스 한 명뿐이고, 후대 기독교 저자들은 네로를 박해자로 기억하면서도 화재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68년 속주 총독 갈바가 내전을 일으키고 원로원이 네로를 '국가의 적'으로 선고하자, 그는 로마를 빠져나가 해방 노예 파온의 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뒤에도 제국 동쪽에서는 네로가 죽지 않았고 돌아온다는 전설이 오래 남아, 그를 사칭한 사람이 적어도 세 명 나타났습니다. 귀족에게는 미움받고 평민에게는 그리움을 남긴 황제, 네로는 '불 지르고 노래한 폭군'이라는 한 장면보다 훨씬 복잡한 인물입니다.

네로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표현 뜻 예문
불난 집에 부채질하다 나쁜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다 그 말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었다.
누명을 쓰다 하지 않은 일로 비난받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썼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원인 없는 소문은 없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싶었지만 오해였다.
강 건너 불구경 남의 일처럼 바라보기만 함 이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면 안 된다.
잿더미에서 일어서다 큰 피해를 딛고 다시 일어나다 도시는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섰다.

연습: '누명을 쓰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다'를 넣어 네로와 로마 대화재에 대해 세 문장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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