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 그녀의 이름은 누가 왜 지웠을까?

섭정에서 파라오가 된 하트셉수트는 약 20년간 이집트를 다스렸지만 사후 이름이 깎여 나갔습니다. 즉위 과정과 삭제의 이유를 정리했습니다.

하트셉수트의 이름을 지운 사람은 오랫동안 의붓아들 투트모세 3세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의 아들 아멘호테프 2세 시대까지 이어진 정치적 작업으로 보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영어판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름과 형상을 체계적으로 없앤 작업은 투트모세 3세 치세 말기에 시작되어 아멘호테프 2세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녀가 죽고 20년쯤 지난 뒤의 일이라, 개인적인 복수보다는 왕위가 남자에서 남자로 곧장 이어진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목적이 더 유력하게 거론됩니다.

"가장 고귀한 숙녀"로 태어나다

하트셉수트는 투트모세 1세와 정비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며, 이름은 "가장 고귀한 숙녀"라는 뜻입니다. 그녀는 이복동생 투트모세 2세와 결혼했고, 두 사람 사이에는 딸 네페루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위를 이을 아들은 그녀가 아니라 후궁이 낳은 투트모세 3세였습니다. 궁정에서 가장 높은 혈통을 가졌지만 자기 아들이 없었다는 점이 이후의 모든 이야기를 움직이는 출발점입니다.

섭정에서 공동 파라오로

병약했던 투트모세 2세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하트셉수트는 아직 어린 의붓아들이자 조카인 투트모세 3세를 대신해 섭정이자 공동 파라오로 이집트를 다스렸습니다. 당시 투트모세 3세는 두 살 남짓이었고, 섭정은 기원전 1479년 무렵 시작된 것으로 봅니다.

현대 학자들은 투트모세 3세의 명목상 재위 7년째 무렵 그녀가 정식 파라오의 자리에 올랐고, 자기 즉위를 1년째부터 센 것으로 봅니다. 투트모세 3세는 쫓겨나지 않고 왕으로 남았지만, 서열이 낮은 공동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 역사가 마네토는 그녀의 재위를 21년 9개월로 기록했습니다.

가짜 수염은 변장이 아니라 직함이었다

하트셉수트의 공식 초상은 시간이 갈수록 여성의 모습에서 남성의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왕의 두건, 이마의 코브라 장식, 짧은 치마, 그리고 가짜 수염까지 갖췄습니다. 이를 두고 남장을 해서 성별을 숨기려 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학자들은 대체로 파라오라는 자리의 상징을 갖춘 것으로 해석합니다. 수염은 일종의 제복이었던 셈입니다.

정당성을 세우는 데에는 신화도 동원됐습니다. 아문 신이 투트모세 1세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녀를 낳게 했다는 "신성한 탄생" 이야기를 신전에 새기게 했고, 아버지가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했다는 비문도 남겼습니다.

전쟁보다 교역, 푼트 원정

그녀의 치세에서 가장 유명한 일은 재위 9년째의 푼트 원정입니다. 사절단은 살아 있는 몰약 나무 31그루와 유향을 가지고 돌아왔고, 이 항해는 데이르 엘바흐리 신전 벽에 푼트의 여왕 아티의 모습과 함께 새겨졌습니다. 장사를 위한 항해를 돌에 새겨 남김으로써, 신들이 자신의 통치를 축복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준 것입니다. 이집트학자들은 그녀의 치세를 매우 성공적이었던 시기 가운데 하나로 평가합니다.

오벨리스크와 장제전

카르나크 신전 입구에는 그녀가 세운 한 쌍의 오벨리스크가 있었고,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그중 하나는 지금도 서 있습니다. 재위 16년째 새로 주문한 오벨리스크 하나는 아스완 채석장에서 금이 가 버려, 지금도 "미완성 오벨리스크"로 그 자리에 누워 있습니다.

대표작은 데이르 엘바흐리의 장제전 제세르-제세루로, 재상 세네무트가 설계했다고 전해집니다. 세네무트는 공주의 교육도 맡았던 최측근이었는데, 재위 16년에서 20년 사이에 기록에서 사라집니다. 죽었는지 실각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미라는 정말 찾았을까

2007년 이집트 고고학자 자히 하와스는 왕가의 계곡 KV60 무덤에서 나온 이름 없는 여성 미라가 하트셉수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상자에서 나온 어금니가 미라의 빈 잇자리에 맞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11년에는 그 이가 아래턱의 것이고, 미라에서 빠진 것은 위턱 어금니라는 지적이 나와 확정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지워진 이름, 다시 돌아오다

그녀의 이름이 들어간 카르투슈는 정으로 쪼아 내거나 투트모세 1세·2세의 이름으로 바꿔 새겼고, 장제전의 조각상은 부서져 구덩이에 묻혔습니다. 한국어판 위키백과는 이 작업이 여성의 직함과 공적 지위를 없애는 방향이었다고 설명합니다. 학자들은 왕위 계승을 깔끔하게 보이려는 목적, 후계자의 정통성을 굳히려는 목적, 여성 왕이라는 선례를 지우려는 목적 등을 이유로 꼽습니다.

하지만 삭제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초기 이집트학자들은 신전 부조에는 남성 왕이 보이는데 글은 여성형 문법으로 쓰여 있어 혼란에 빠졌고, 이를 "하트셉수트 문제"라고 불렀습니다. 미국 역사가 제임스 헨리 브레스테드는 그녀를 기록으로 알 수 있는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여성이라고 평했습니다. 지우려 했던 시도가 오히려 그녀의 이야기를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든 셈입니다.

하트셉수트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표현 뜻 예문
실권을 쥐다 실제 권력을 가지다 그녀는 섭정으로서 실권을 쥐었다.
자취를 감추다 흔적 없이 사라지다 세네무트는 어느 날 기록에서 자취를 감췄다.
역사에서 지우다 기록에서 없애다 후대 왕들은 그녀를 역사에서 지우려 했다.
빛을 보다 세상에 알려지다 그녀의 업적은 수천 년 뒤에야 빛을 보았다.
발판을 마련하다 다음 단계로 가는 기반을 만들다 신관들의 지지가 즉위의 발판을 마련했다.

연습: 존경하는 인물에 대해 "실권을 쥐다", "빛을 보다"를 넣어 세 문장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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