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와 탐정 뒤팽, 그리고 풀리지 않은 죽음: 에드거 앨런 포가 문학에 남긴 것

까마귀와 탐정 뒤팽, 그리고 풀리지 않은 죽음: 에드거 앨런 포가 문학에 남긴 것

에드거 앨런 포(1809–1849)는 시 「갈까마귀」, 고딕 공포 단편, 근대 추리소설의 출발점으로 알려진 미국의 시인·작가·비평가입니다.

에드거 앨런 포(1809–1849)는 미국의 작가이자 시인, 편집자, 문학 비평가로, 시 「갈까마귀」와 기괴하고 미스터리한 단편소설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어셔가의 몰락」, 「고자질하는 심장」, 「검은 고양이」 같은 공포 단편과 탐정 뒤팽이 나오는 「모르그가의 살인」이 있습니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연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과학소설의 탄생에도 큰 몫을 했습니다. 또 글만 써서 먹고살려 한 첫 번째 유명 미국 작가였는데, 그 선택 때문에 평생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부잣집에 맡겨진 고아

포는 1809년 1월 19일 보스턴에서 배우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1810년 가족을 버리고 떠났고, 어머니는 이듬해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 살도 안 된 아이를 데려간 사람은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의 부유한 상인 존 앨런 부부였습니다. 부부는 아이에게 '에드거 앨런 포'라는 이름을 주었지만 정식으로 입양하지는 않았습니다.

양아버지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버릇없이 받아 주다가도 갑자기 엄하게 벌하곤 했다고 합니다. 가족은 몇 해 동안 영국에서 살았고, 에드거는 스코틀랜드와 런던에서 학교를 다니다 1820년 리치먼드로 돌아왔습니다. 1826년 막 문을 연 버지니아 대학교에 들어가 고전어와 현대어를 공부했지만, 도박 빚을 지고 돈 문제로 양아버지와 다투다 1년 만에 학교를 떠났습니다.

군인이 된 시인 지망생

돈도 갈 곳도 없던 포는 1827년 '에드거 A. 페리'라는 가명으로 미 육군에 입대했습니다. 같은 해 첫 시집 『태멀레인 외 시편』이 '한 보스턴 사람'이라는 이름으로만 나왔는데, 겨우 50부를 찍었고 거의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군인으로서는 유능해서, 부사관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계급인 원사까지 진급했습니다.

이후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지만, 양아버지가 끝내 그와 인연을 끊자 수업과 점호, 예배에 일부러 빠져서 스스로 퇴교 처분을 받아 냈습니다. 이렇게 그는 작가로 살 자유를 얻었고, 동시에 완전히 혼자가 되었습니다.

잡지로 먹고사는 삶

1830–1840년대 미국에서는 잡지가 쏟아져 나왔지만 몇 호 만에 사라지는 일이 많았고, 원고료도 늦게 주거나 아예 떼먹기 일쑤였습니다. 포는 1833년 단편 「병 속에서 발견된 원고」로 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리치먼드의 잡지 『서던 리터러리 메신저』에서 일하며 시와 소설, 날카로운 서평을 잔뜩 실었습니다. 1836년에는 사촌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했는데, 포는 스물일곱, 버지니아는 열세 살이었습니다.

그 뒤 필라델피아와 뉴욕에서 잡지 편집자로 일하며 1838년 유일한 장편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을, 1839년 단편집 『그로테스크와 아라베스크 이야기』를 냈지만 손에 쥔 돈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을 때 포는 무엇보다 무서운 비평가로 유명해서, 신랄한 서평 때문에 '도끼 든 사나이(tomahawk man)'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갈까마귀」로 하루아침에 유명해지다

1845년 1월 29일 뉴욕 신문 『이브닝 미러』에 시 「갈까마귀」가 실리자 순식간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포의 이름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알려졌지만, 받은 원고료는 9달러뿐이었다고 합니다. 슬픔에 잠긴 남자 앞에서 까마귀가 "Nevermore(다시는 없으리)"를 되풀이하는 이 시는 영어 시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포는 나중에 「작법의 철학」이라는 글에서 이 시를 계산하듯 한 단계씩 짜 맞췄다고 설명했지만, 정말 그렇게 썼는지는 비평가들 사이에서 의심을 받아 왔습니다.

유명해졌다고 삶이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내 버지니아는 1842년 결핵 증세를 보이기 시작해 1847년 1월, 지금의 뉴욕 브롱크스에 있던 포드햄의 작은 집에서 숨졌습니다. 전기 작가들은 포의 작품에 자꾸 나오는 '아름다운 여인의 죽음'이라는 주제를, 곁에 있던 여성들을 거듭 잃은 그의 삶과 연결 짓곤 합니다.

탐정의 탄생

1841년 『그레이엄스 매거진』에 실린 「모르그가의 살인」은 최초의 근대 추리소설로 불리며, 포 자신은 이런 작품을 '추론의 이야기'라고 불렀습니다. 파리에 사는 은둔형 인물 C. 오귀스트 뒤팽이 두 여성이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을 치밀한 추론으로 풀어내고, 그의 친구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천재 탐정, 그 곁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친구, 추리 과정보다 진상을 먼저 터뜨리는 결말까지 추리소설의 약속이 거의 다 이 작품에 들어 있습니다. 셜록 홈스와 에르퀼 푸아로 같은 후대 탐정들도 이 틀을 따릅니다. 뒤팽은 「마리 로제 수수께끼」와 「도둑맞은 편지」에도 다시 등장합니다. 홈스를 만든 코넌 도일은 "포가 숨을 불어넣기 전까지 탐정소설은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말했고, 미국 추리작가협회의 상은 지금도 '에드거 상'이라고 불립니다.

단 하나의 효과를 향해

포의 대표 소설은 고딕 공포와 '어두운 낭만주의'에 속하며, 부패, 생매장에 대한 공포, 죽은 자의 귀환처럼 죽음을 둘러싼 주제가 되풀이됩니다. 그의 창작 이론은 엄격했습니다. 교훈을 늘어놓는 글을 싫어했고, 좋은 작품은 오직 하나의 효과를 노려야 하며 그 효과에 보탬이 되지 않는 것은 군더더기라고 보았습니다. 포의 단편을 읽을 때 "이 이야기가 만들려는 단 하나의 감정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사소한 묘사 하나하나가 왜 거기 있는지 보입니다.

그는 암호에도 푹 빠져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 신문 독자들에게 암호문을 보내 달라고 해서 풀어 보였고, 암호를 중심에 둔 단편 「황금 벌레」는 신문과 잡지에서 암호 퍼즐이 유행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수수께끼 같은 죽음과 남긴 영향

1849년 10월 3일 포는 볼티모어에서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그것도 남의 옷을 입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나흘 뒤인 10월 7일 마흔 살로 세상을 떠났고, 진짜 사인은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자마자 문단의 적수 루퍼스 그리스월드가 포를 타락한 미치광이로 그린 부고와 회고록을 냈는데, 증거로 내세운 편지들은 나중에 위조로 밝혀졌습니다.

포는 미국보다 유럽에서 먼저 인기를 얻은 초기 미국 작가 중 한 명으로, 보들레르의 프랑스어 번역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쥘 베른은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의 속편을 썼고, 러브크래프트는 포를 '소설의 신'이라 불렀으며, 히치콕은 포의 소설이 좋아서 서스펜스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작가 히라이 타로는 포의 이름 소리를 따서 '에도가와 란포'라는 필명을 지었습니다. 단편이 짧은 편이라 영어 원문 읽기를 처음 시작하기에도 좋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로 배우는 영어 표현

표현 뜻 예문
nevermore 다시는 …없다(시적 표현) Those happy summers would return nevermore.
a telltale sign 진실을 드러내는 단서 Her red eyes were a telltale sign she had been crying.
send a shiver down your spine 등골을 오싹하게 하다 The ending sent a shiver down my spine.
solve a mystery 수수께끼를 풀다 The detective solved the mystery in one night.
a dream within a dream 꿈속의 꿈처럼 비현실적인 것 That trip felt like a dream within a dream.

연습 과제: "a telltale sign"을 넣고 마지막 단어가 "nevermore"로 끝나는 세 문장짜리 무서운 이야기를 영어로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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