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쿡 선장은 세 번의 항해에서 무엇을 남겼을까? 지도와 논쟁
제임스 쿡은 세 번의 항해로 뉴질랜드를 측량하고 호주 동해안에 상륙했으며, 남극권을 넘었고 1779년 하와이에서 숨졌습니다.
제임스 쿡(1728–1779)은 영국 해군 장교이자 탐험가, 그리고 뛰어난 지도 제작자였습니다. 1768년부터 1779년까지 세 번의 항해에서 뉴질랜드 두 큰 섬의 해안선을 측량했고, 기록상 처음으로 호주 동해안에 상륙한 유럽인이 되었으며, 남극권을 넘었고, 기록상 처음으로 하와이 제도에 닿은 유럽인이 되었습니다. 다만 그가 간 곳 대부분에는 이미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쿡이 땅을 '발견'했다기보다는, 유럽을 위해 전에 없이 정확한 지도를 그렸다고 말하는 편이 맞습니다.
농장 일꾼의 아들, 석탄 배에서 배우다
쿡은 1728년 잉글랜드 북부 요크셔의 마턴에서 농장 일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가게에서 견습 생활을 했지만, 곧 항구 도시 휫비로 가서 석탄을 나르는 상선의 견습 선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755년 영국 해군에 들어갔습니다.
7년 전쟁 때는 세인트로렌스강으로 들어가는 뱃길을 측량하는 일을 도왔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뉴펀들랜드 해안을 여러 해 동안 측량했습니다. 정확한 지도와 꼼꼼한 천문 관측 덕분에 해군성과 왕립학회의 눈에 들게 됩니다. 1762년에는 엘리자베스 배츠와 결혼해 여섯 아이를 두었습니다. 화려하게 시작한 영웅이 아니라, 묵묵히 기술을 쌓아 기회를 만든 사람이었던 셈입니다.
첫 항해: 금성, 타히티, 그리고 봉인된 명령
첫 번째 큰 임무는 1769년 금성이 태양 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태평양에서 관측하는 인데버호 항해였습니다. 배는 1768년 8월 26일 94명을 태우고 플리머스를 떠났습니다. 1769년 4월 타히티에 도착해 6월 3일 관측을 마친 뒤, 쿡은 봉인된 명령서를 열었습니다. 유럽 지리학자들이 있다고 믿던 남쪽의 큰 대륙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를 찾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타히티의 사제이자 항해가였던 투파이아가 스스로 배에 올라 길잡이와 통역을 맡았습니다. 흔히 '유럽의 탐험'이라고 부르지만, 그 뒤에는 태평양 사람들의 지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뉴질랜드, 보터니만, 그리고 '캥거루'
1769년 10월 뉴질랜드에 닿은 쿡은 약 반년에 걸쳐 해안을 측량해, 1770년 3월 말까지 두 큰 섬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서쪽으로 더 나아가 1770년 4월 29일 호주 동해안의 한 만에 상륙했는데, 식물학자들이 그곳에서 식물을 많이 모은 덕분에 이름이 결국 '보터니만'이 되었습니다.
6월 11일에는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 부딪혀 좌초했고, 오늘날 쿡타운 근처의 강어귀에서 몇 주 동안 배를 고쳤습니다. 영어 단어 'kangaroo'는 이 지역 구구이미디르어에서 회색 캥거루를 가리키는 '강구루'에서 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참혹했습니다. 바타비아에서 일곱 명이 병으로 죽고 영국으로 가는 동안 스물세 명이 더 숨졌으며, 투파이아도 바타비아에서 이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번째 항해: 남극권과 새 시계
1772년부터 1775년까지 레절루션호를 이끈 쿡은 1773년 1월 남극권을 넘었고, 따뜻한 바다에 큰 남방 대륙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 항해에는 라컴 켄들이 존 해리슨의 H4를 본떠 만든 시계 K1이 실려, 바다 위에서 경도를 알아내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는 신선한 음식을 자주 보충하고 침구를 말리는 등 위생을 지키게 해 괴혈병을 막으려 했고, 이 공로로 왕립학회의 코플리 메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가 효과가 있다고 본 맥아즙이 아니라 감귤류가 진짜 해결책이었습니다.
세 번째 항해와 하와이에서의 죽음
1776년에 시작한 마지막 항해의 목표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북서 항로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1778년 하와이 제도에 닿았고, 이어 북아메리카 북서 해안과 알래스카의 많은 부분을 측량했습니다.
하와이로 돌아와 케알라케쿠아만에 머물던 1779년 2월 13일, 하와이 사람들이 작은 배 한 척을 가져갔습니다. 다음 날 쿡은 족장 칼라니오푸우를 인질로 잡아 배를 되찾으려 했고, 모여든 사람들과 싸움이 벌어져 쿡과 해병 네 명, 하와이 사람 열일곱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와이 사람들이 쿡을 로노 신으로 여겼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습니다.
영웅인가, 식민지화의 상징인가
쿡의 항해가 남긴 지리와 과학 지식은 그 뒤 수십 년 동안 탐험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찾아간 땅의 원주민 다수에게 쿡은 유럽과의 접촉이 가져온 폭력과 질병, 땅의 상실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입니다. 첫 항해 250주년 무렵에는 여러 동상이 훼손되었고, 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한쪽 이야기만 듣기보다 두 시선을 함께 아는 것이 역사를 읽는 좋은 방법입니다.
제임스 쿡으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닻을 올리다 | 일을 새로 시작하다 | 새 프로젝트가 닻을 올렸다. |
| 암초에 부딪히다 | 뜻밖의 어려움을 만나다 | 계획이 암초에 부딪혔다. |
| 미지의 세계 | 아직 알지 못하는 곳 | 유학은 미지의 세계로 가는 길이었다. |
| 순풍에 돛 단 듯 | 일이 아주 순조롭게 | 돌아오는 길은 순풍에 돛 단 듯하지 않았다. |
| 공과가 엇갈리다 | 잘한 점과 잘못한 점이 함께 있다 | 그에 대한 평가는 공과가 엇갈린다. |
연습: 새 학교나 새 직장에서 보낸 첫 주를 '미지의 세계', '암초에 부딪히다'를 넣어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