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이달고는 누구일까? '돌로레스의 외침'으로 멕시코 독립을 연 신부

'멕시코 독립의 아버지' 미겔 이달고는 시골 신부였습니다. 1810년 '돌로레스의 외침'으로 독립 전쟁을 시작한 그의 삶과 봉기, 죽음과 남긴 것을 정리했습니다.

미겔 이달고(1753년 5월 8일–1811년 7월 30일)는 멕시코 독립 전쟁 초창기의 지도자로 '멕시코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로마 가톨릭 신부였던 그는 1810년 9월 16일 투쟁을 촉구하는 '돌로레스의 외침'으로 봉기를 시작해 독립운동을 이끌었고, 1년도 안 되어 스페인군에 붙잡혀 처형되었습니다. 멕시코의 독립은 그로부터 11년 뒤에야 이루어졌지만, 그가 외침을 터뜨린 9월 16일은 지금도 멕시코 독립 기념일입니다.

계몽사상을 읽은 신학 교수

이달고는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 시대인 1753년, 과나후아토주 펜하모의 부유한 크리오요(식민지에서 태어난 백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학생 시절에는 머리가 좋아 '여우'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나와틀어 같은 원주민 언어와 함께 당시 멕시코에서 드물던 프랑스어도 배워 교회가 금지한 유럽 계몽사상 책을 읽었습니다. 1778년 사제가 된 뒤 바야돌리드의 산니콜라스 학교에서 가르쳤지만, 사회 개혁안을 내놓았다가 1792년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돌로레스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1803년부터 돌로레스 교구의 사제로 일하면서,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올리브와 포도를 기르는 법을 가르쳐 살림을 돕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본국과 경쟁하는 작물의 재배를 막는 식민지 정책 때문에 식민 정부의 제재를 받았습니다. 그는 벽돌과 도자기 공방을 열고, 원주민에게 가죽 다루는 법을 가르치고, 양봉과 누에치기도 장려했습니다.

당시 식민지 사회의 불만은 컸습니다. 300년 식민 통치 동안 부왕 170명 가운데 크리오요 출신은 4명뿐이었고, 총독 602명 가운데서도 14명뿐이었습니다. 식민지에서는 본국과 경쟁하는 상품을 만들 수 없었고, 수입품에는 높은 관세가 붙었습니다. 1808년 나폴레옹이 스페인 왕위를 빼앗아 자기 형 조제프를 왕으로 세우자, 중남미 식민지에서는 그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독립 투쟁의 불씨가 커졌습니다.

'돌로레스의 외침'

케레타로 지방의 비밀 결사에 속한 크리오요들은 1810년 12월 8일 독립을 선언하기로 했지만, 계획이 새어 나가 주요 인물들이 체포되었습니다. 그 소식은 멕시코시티에서 북서쪽으로 100마일 떨어진 돌로레스 마을에도 전해졌습니다. 이달고 신부는 1810년 9월 16일 일요일, 교회 종을 울리고 연설을 하며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그는 미사에 모인 약 300명에게 집을 떠나 국왕 페르난도 7세의 이름으로 정부에 맞서자고 외쳤습니다. 그는 과달루페 성모의 그림을 창에 걸어 깃발로 삼았고, 깃발에는 "종교 만세! 과달루페 성모 만세! 아메리카 만세, 나쁜 정부에게 죽음을!"이라고 적었습니다.

10만 명으로 불어난 봉기

원주민과 메스티소가 중심이 된 봉기는 동조자가 10만 명까지 불어나 과나후아토시를 점령하는 등 여러 도시를 해방한 뒤 수도 외곽까지 이르렀지만, 스페인군에 진압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전투 경험도 훈련도 없었고 조직적이지도 못했습니다. 특히 상류층 크리오요들은 이 봉기가 자기들을 겨냥한다고 여겨 스페인군에 협력했습니다. 이달고는 과달라하라에서 노예제 폐지를 선포하고 원주민이 내던 공납도 없앴습니다.

1811년 1월 17일 칼데론 다리 전투에서 패한 이달고 신부는 미국으로 탈출하려고 북쪽으로 피하던 중 붙잡혀 처형되었습니다. 그는 처형 직전 "나는 죽어도 영원히 기억되겠지만, 당신들은 곧 잊힐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지며, 그의 머리는 과나후아토의 곡물 창고 모서리에 10년 동안 걸려 있었습니다.

수도를 눈앞에 두고 돌아선 까닭

1810년 10월 30일 몬테 데 라스 크루세스 전투에서 이긴 뒤, 이달고의 봉기군은 10만 명 가까이 되어 수도를 지키는 왕당파 군대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동지 아옌데는 곧바로 수도를 치자고 했지만, 이달고는 반대했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도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입니다. 훈련받지 못한 봉기군이 정규군을 만날 때마다 큰 피해를 입었고, 수도는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가장 잘 훈련된 군대가 지키고 있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돌아선 뒤 많은 사람이 떠나, 봉기군은 금세 4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그가 남긴 것

이달고에 이어 모렐로스 신부가 투쟁을 이끌었지만 1815년 스페인군에 붙잡혀 총살되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은 이투르비데의 무장봉기로 이어졌고, 1821년 코르도바 조약으로 멕시코는 독립을 인정받았습니다. 그의 마을은 그를 기려 돌로레스 이달고로 이름이 바뀌었고, 멕시코의 한 주도 그의 이름을 따 이달고주가 되었습니다.

미겔 이달고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표현 뜻 예문
들고일어나다 여럿이 함께 맞서 일어나다 마을 사람들이 들고일어났다.
불씨를 지피다 큰일의 시작을 만들다 그의 외침이 독립의 불씨를 지폈다.
선수를 치다 남보다 먼저 행동하다 계획이 새자 그는 선수를 쳤다.
뜻을 이루지 못하다 바라던 목적을 끝내지 못하다 그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름을 남기다 후세에 오래 기억되다 그는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연습: '들고일어나다'와 '이름을 남기다'를 넣어, 우리나라 역사 속 인물에 대해 세 문장을 써 보세요.

미겔 이달고 이야기로 언어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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