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르틴은 어떤 나라를 해방했을까? 안데스산맥을 넘은 남아메리카의 해방자
아르헨티나·칠레·페루의 해방자로 불리는 호세 데 산마르틴. 안데스산맥을 넘은 원정과 볼리바르와의 과야킬 회담, 그리고 그가 스스로 물러난 이유를 정리합니다.
호세 데 산마르틴은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의 해방자'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장군입니다. 당시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남아메리카 남부 지역의 독립운동을 이끌어 성공시켰습니다. 그는 안데스산맥을 넘어 칠레를 해방했고, 바다를 건너 페루의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1822년 에콰도르 과야킬에서 시몬 볼리바르를 만난 뒤 페루 해방의 마무리를 볼리바르에게 넘기고 정계와 군대에서 물러났습니다. 성공의 정점에서 스스로 물러났다는 점이 지금까지 그가 존경받는 큰 이유입니다.
스페인 군인에서 독립운동가로
산마르틴은 1778년 2월 25일 아르헨티나 코리엔테스주의 야페유에서 태어났습니다. 세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태어난 해를 두고는 1777년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아버지는 스페인 왕실에 봉사한 군인으로, 야페유 지역의 총독을 지냈습니다.
그는 일곱 살 무렵 스페인으로 건너가 공부했고, 1808년 스페인군에서 프랑스와 싸우며 바일렌 전투와 알부에라 전투 등에 참가했습니다. 이 무렵부터 남아메리카 독립 지지자들과 접촉하기 시작했고, 1812년 영국을 거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서 독립 투쟁에 몸을 던졌습니다. 스페인 왕을 위해 싸우던 장교가 스페인과 맞서는 편에 선 것입니다.
새로운 길: 칠레를 거쳐 페루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좋은 기병이 부족했기 때문에, 정부는 산마르틴에게 기병대를 만들어 달라고 했고 그는 기마 척탄병 연대를 조직했습니다. 1813년 산로렌소 전투 이후 1814년에는 북부군을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스페인 세력의 중심은 페루, 특히 리마였습니다. 북쪽으로 페루를 치는 길은 거듭 실패했기 때문에, 산마르틴은 쿠요 지방에서 새 군대를 조직해 칠레를 먼저 해방하고, 거기서 바다를 통해 리마를 공격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안데스산맥을 넘다
그는 멘도사를 기지로 삼아 '안데스군'을 길렀습니다. 이 군대는 아르헨티나만의 군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 국기를 쓰지 않고, 하늘색과 흰색으로 된 자기 깃발을 들었습니다.
1817년 그는 멘도사에서 안데스산맥을 넘어 칠레로 갔습니다. 군대는 여섯 갈래로 나뉘어 서로 다른 고개를 넘었고, 전체 작전에는 거의 한 달이 걸렸습니다. 병사들은 고산병을 막으려고 마늘과 양파를 먹었고, 출발할 때의 절반도 안 되는 노새 4,300마리와 말 511마리만 살아남았습니다.
칠레와 페루의 해방
산마르틴은 차카부코 전투와 1818년 마이푸 전투에서 스페인군을 물리쳐 칠레를 해방했습니다. 차카부코 승리 뒤 칠레의 최고 지도자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칠레는 칠레 사람이 이끌어야 한다며 사양하고 베르나르도 오이긴스를 추천했습니다.
다음 목표는 페루였습니다. 영국 출신 해군 지휘관 토머스 코크런이 이끄는 함대가 1820년 8월 칠레를 떠났습니다. 페루의 왕당파 군대는 거의 2만 3천 명으로 그의 병력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그는 큰 전투를 피하고 적을 나누어 고립시키는 작전을 썼습니다. 결국 페루의 독립은 1821년 7월 28일 공식적으로 선언되었고, 산마르틴은 '페루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과야킬 회담의 수수께끼
1822년 7월 26일, 산마르틴과 볼리바르는 과야킬에서 이틀에 걸쳐 두 번 비공개로 만났습니다. 증인도 회의록도 없어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두 사람의 이후 행동과 편지로 짐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회담 뒤 볼리바르가 페루를 완전히 해방하는 과업을 맡았고, 산마르틴은 갑자기 페루를 떠나 군 지휘관직을 내려놓았습니다. 이 회담의 내막은 이후 역사가들의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망명과 기억
산마르틴은 1824년 프랑스로 건너가 남은 생을 유럽에서 보냈고, 1850년 8월 17일 불로뉴쉬르메르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해는 1880년 고국으로 돌아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성당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는 시몬 볼리바르와 함께 남아메리카를 해방한 영웅이자 아르헨티나 국민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으며, 그를 기린 '해방자 산마르틴 장군 훈장'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높은 훈장입니다.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세 나라가 그를 영웅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긴 뒤에 권력을 내려놓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산마르틴으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물러나다 | 맡던 자리에서 떠나다 | 그는 성공의 정점에서 물러났다. |
| 자리를 내려놓다 |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다 | 대표는 후배를 위해 자리를 내려놓았다. |
| 허를 찌르다 | 상대가 방심한 곳을 공격하다 |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작전이었다. |
| 바통을 넘기다 | 일을 다음 사람에게 맡기다 | 그는 볼리바르에게 바통을 넘겼다. |
| 산 넘어 산 | 어려움이 계속 이어짐 | 독립까지는 산 넘어 산이었다. |
연습: 존경하는 인물에 대해 '물러나다'와 '바통을 넘기다'를 넣어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