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다시 보기: 첫 여왕의 정치, 첨성대와 황룡사 9층탑, 비담의 난
선덕여왕(재위 632–647)은 신라 최초의 여왕으로 첨성대와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우고, 전쟁과 '여주불능선리'를 내건 비담의 난에 맞섰습니다. 사실과 전설을 나눠 정리했습니다.
선덕여왕(647년 사망)은 삼국 가운데 하나인 신라의 첫 여왕으로, 632년부터 세상을 떠난 647년까지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백성을 돌본 정치, 즉위 초에 세운 천문대 첨성대, 황룡사 9층 목탑, 그리고 훗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첫 토대를 놓은 왕으로 기억됩니다. 여자가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느냐는 의심이 많던 시대였고, 그의 치세 마지막 위기도 바로 그 주장을 내건 반란이었습니다.
덕만 공주
선덕여왕의 본래 이름은 덕만으로, 진평왕과 마야부인의 딸입니다.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신라의 엄격한 신분 제도인 골품제에서는 가장 높은 왕족만 왕위에 오를 수 있었고, 덕만이 후계자로 정해졌습니다. 진위 논란이 있는 후대의 책 『화랑세기』에 따르면, 다른 후계 후보 앞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다고도 합니다. 632년 1월, 신라 최초의 여왕이 즉위했습니다.
백성을 위한 정치와 첨성대
즉위하자마자 여왕은 백성에게 자신의 정책을 밝히고, 전국에 관리를 보내 홀아비·과부·고아·노인과 가난한 이들을 살피게 했습니다. 재위 2년째에는 농사에 필요한 때를 알 수 있도록 천문대 첨성대를 세웠습니다. 지금도 경주에 서 있는 첨성대는 높이 약 9미터의 병 모양 석탑으로, 동아시아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정확히 어떻게 쓰였는지는 학자마다 의견이 갈리지만, 신라의 과학과 선덕여왕 시대를 상징하는 유물이 되었습니다.
두 적 사이에서
여왕의 시대는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642년 백제 의자왕이 몸소 군대를 이끌고 신라 서쪽의 40여 성을 빼앗았고, 요충지 대야성이 함락되면서 훗날 왕이 되는 김춘추의 딸과 사위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여왕은 위기를 넘기려 당나라와의 동맹을 추진했고, 이 선택은 한반도의 앞날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또 당에서 7년 동안 공부하고 돌아온 승려 자장의 건의로, 불교를 일으키고 나라를 하나로 모으려 황룡사에 거대한 9층 목탑을 세웠습니다. 탑은 훗날 몽골 침입 때 불타 없어졌지만, 커다란 주춧돌은 지금도 경주에 남아 있습니다.
비담의 난, 그리고 사실과 전설
647년 초, 상대등 비담 등 고위 귀족들이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여주불능선리)"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반란 중에 큰 별이 궁 근처로 떨어지자 비담이 여왕이 죽을 징조라고 퍼뜨렸고, 김유신이 불붙인 연을 하늘로 띄워 별이 다시 올라갔다고 믿게 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여왕은 반란 중에 세상을 떠났고, 반란은 진압되었으며, 사촌 진덕여왕이 뒤를 이었습니다. 당에서 보낸 모란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을 것이라 알아맞혔다는 '지기삼사' 일화는 전설이지만,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슬기로운 왕으로 기억했는지 보여 줍니다.
선덕여왕으로 배우는 영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a reigning queen | 직접 다스리는 여왕 | Seondeok was a reigning queen. |
| an observatory | 천문대 | Cheomseongdae is an old observatory. |
| a rebellion | 반란 | Bidam led a rebellion. |
| foresight | 선견지명 | She was known for her foresight. |
| to lay the foundation | 토대를 놓다 | She laid the foundation for unification. |
연습 과제: 존경하는 지도자 한 명을 "foresight", "to lay the foundation"을 넣어 영어 세 문장으로 소개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