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는 왜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를 그렸을까? 식당 벽에 남긴 '검은 그림'의 비밀
고야가 자기 집 식당 벽에 그리고 제목도 붙이지 않은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 그림 속 장면과 신화, 여러 해석, 프라도 미술관에 오기까지를 정리했습니다.
고야가 왜 이 그림을 그렸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는 남에게 보여 줄 생각 없이 자기 집 벽에 직접 이 그림을 그렸고, 제목이나 메모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는 1820년에서 1823년 사이에 고야가 집 벽에 그린 이른바 '검은 그림' 14점 가운데 하나이며, 지금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자식 가운데 하나가 자신을 몰아낼 것이라는 예언을 두려워한 거인 크로노스, 로마식 이름으로 사투르누스가 자기 아이를 잡아먹는 그리스 신화의 장면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귀머거리의 집'과 검은 그림
1819년 고야는 마드리드 근처 만사나레스 강가에 있는 2층집을 샀습니다. 이 집은 '킨타 델 소르도', 곧 '귀머거리의 집'이라 불렸는데, 이전 주인이 귀가 들리지 않았던 데서 온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야 자신도 1792년 열병을 앓은 뒤로 청력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1819년부터 보르도로 떠난 1823년까지 이 집 벽에 14점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처음에는 방을 좀 더 밝은 그림으로 꾸몄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위를 모두 지금 '검은 그림'이라 부르는 섬뜩한 그림으로 덮었습니다. 누구의 주문도 받지 않고 혼자 보려고 그린 이 그림들은, 전쟁의 폭력과 종교재판의 공포를 지켜본 화가의 말년 마음 상태를 비춘 것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가장 섬뜩한 사실은 이 그림이 식당에 그린 여섯 점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입니다. 고야는 날마다 이 그림을 마주하고 밥을 먹은 셈입니다.
그림에는 무엇이 그려져 있나
어둠 속에서 거대한 형체가 불쑥 나타나 사람의 몸을 뜯어 먹고 있습니다. 머리와 왼팔 일부는 이미 사라졌고, 거인은 팔을 한 번 더 베어 물려는 참입니다. 입은 쩍 벌어지고 눈은 튀어나올 듯 부릅떠 있습니다. 화면에서 밝은 부분은 먹히는 몸의 하얀 살과 붉은 피, 그리고 몸을 움켜쥔 거인의 하얗게 질린 손가락 마디뿐입니다.
사실 신화는 이보다 덜 잔인합니다. 사투르누스는 갓 태어난 아이들을 통째로 삼켰고, 아내가 막내 유피테르 대신 강보에 싼 돌을 건네자 그것을 삼킨 뒤 아이들을 산 채로 토해 냈다고 합니다. 결국 예언대로 유피테르가 아버지를 몰아냈습니다. 고야의 거인은 삼키는 것이 아니라 찢어발기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무엇을 뜻할까
고야가 아무 설명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해석이 나왔습니다. 젊음과 늙음의 갈등, 모든 것을 삼키는 시간, 신의 분노, 그리고 전쟁과 혁명 속에서 제 자식들을 집어삼킨 조국 스페인에 대한 비유 등입니다. 고야의 여섯 자녀 가운데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것은 아들 하비에르뿐이었기에, 가족 관계와 연결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고야 연구자 프레드 리히트는 전통적인 제목 자체가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사투르누스를 상징하는 낫이나 모래시계가 없고, 먹히는 몸도 아기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검은 그림'의 제목은 모두 고야가 죽은 뒤 다른 사람들이 붙인 것입니다.
먹히는 몸이 남성인지 여성인지조차 확실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함께 살던 가정부이자 연인이었을지도 모르는 레오카디아 소리야와의 관계로 이 그림을 읽으려는 해석도 있습니다. 제목도, 작가의 설명도 없는 그림 앞에서 사람들은 결국 자기 안의 두려움을 비춰 보게 됩니다.
루벤스의 사투르누스와 무엇이 다를까
플랑드르 화가 루벤스도 같은 주제를 그렸고, 고야는 아마 그 그림을 본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루벤스의 사투르누스는 냉정하게 계산하며 움직이고 아이는 분명히 고통스러워하지만, 고야의 사투르누스는 광기에 사로잡혀 있고 먹히는 몸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습니다. 고야는 1796–1797년에 같은 주제의 분필 소묘도 그렸는데, 거기에는 훗날 벽화의 피비린내나 광기가 없습니다.
벽에서 프라도 미술관으로
1823년 프랑스로 스스로 망명을 떠나면서 고야는 이 집을 손자 마리아노에게 넘겼습니다. 집은 여러 주인을 거쳐 1874년 프랑스의 데를랑제 남작에게 넘어갔습니다. 벽에서 50년을 보낸 그림들이 크게 상하자, 남작은 프라도 미술관 수석 복원가의 지휘 아래 그림을 회벽에서 캔버스로 옮기게 했습니다. 그림들은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전시된 뒤 스페인 정부에 기증되었습니다.
「사투르누스」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등골이 오싹하다 | 몹시 무섭다 | 그림을 보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
| 소름이 돋다 | 무섭거나 놀라 피부에 돋는 느낌 | 거인의 눈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
| 수수께끼로 남다 | 끝까지 알 수 없다 | 그림의 뜻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
| 세월 앞에 장사 없다 | 누구도 시간을 이길 수 없다 |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화가도 늙었다. |
| 생각할 거리를 주다 | 깊이 생각하게 하다 | 검은 그림은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
연습 과제: 무섭다고 느꼈던 그림이나 영화 하나를 "등골이 오싹하다"와 "수수께끼로 남다"를 넣어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