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 투탕카멘은 왜 죽었나? 암살설·말라리아·'파라오의 저주'를 차례로 따져 보기

암살설은 근거가 무너졌고, 지금은 말라리아와 다리 골절이 겹쳤다는 설명이 가장 유력합니다. 저주 이야기도 숫자로 보면 성립하지 않습니다.

투탕카멘의 사인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지금 가장 근거가 탄탄한 설명은 암살이 아니라 병과 부상이 겹쳤다는 것입니다. 그는 기원전 1323년 무렵 열아홉 살 안팎에 세상을 떠났는데, 자히 하와스가 이끈 연구팀은 몸을 약하게 만든 여러 질환, 넘어지면서 생긴 듯한 넓적다리뼈 골절, 그리고 심한 말라리아 감염이 함께 목숨을 앗아 갔다고 봅니다. 유명한 '뒤통수 가격' 암살설은 1968년 엑스레이 사진에서 두개골 안의 뼛조각 두 개가 보인 데서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이후 분석에서 그 조각들은 고정되지 않은 채 굴러다니고 있었고, 근대에 미라의 붕대를 풀다가 부서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작은 왕이 어떻게 가장 유명한 파라오가 되었는지 따라가 보면, 암살설보다 훨씬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종교 개혁 한가운데서 태어난 소년 왕

투탕카멘은 이집트 제18왕조 말기, 대략 기원전 1332년부터 1323년까지 다스렸습니다. 태어났을 때 이름은 투탕카텐이었습니다. 당시 파라오 아크나톤은 태양 원반의 신 아텐 하나만 섬기도록 이집트의 종교를 크게 바꾸어 놓은 상태였습니다.

투탕카멘 시대에는 옛 신들이 돌아왔습니다. 테베의 아멘 신앙이 다시 중심이 되었고, 왕과 왕비는 이름 끝의 '아텐'을 '아멘'으로 바꿔 투탕카멘과 안케세나멘이 되었습니다. 수도도 아크나톤이 세운 아마르나에서 멤피스로 되돌렸습니다. 아홉 살, 열 살 아이가 혼자 내린 결정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곁에는 훗날 왕위를 잇는 아이 같은 실력자들이 있었습니다.

DNA가 드러낸 가족의 비밀

2010년에 발표된 DNA 검사는 그의 아버지를 KV55호 무덤의 미라로 지목했습니다. 이 미라는 아크나톤이거나 그 뒤를 잠깐 이은 스멘크카레로 여겨집니다. 어머니는 '젊은 여인'이라 불리는 이름 없는 미라로 보이며, 두 사람은 친남매였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다만 오래된 미라에서 얻은 DNA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는 반론도 있어 논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암살설은 왜 무너졌나

CT 촬영과 재분석 결과, 두개골 안의 뼛조각은 방부 처리용 수지에 붙어 있지 않았습니다. 미라로 만든 뒤에 떨어져 나왔다는 뜻이고, 치명적인 타격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사실 이 미라는 1920년대 조사 과정에서 몸통이 톱으로 잘리고 머리와 팔다리가 분리되는 등 심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이런 손상이 여러 차례 오진을 불렀습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의 연구는 말라리아의 흔적과 넓적다리뼈 골절을 확인하고, 둘이 겹쳐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무덤에서 130개가 넘는 지팡이가 나와 다리가 불편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상당수는 왕권을 상징하는 의례용 지팡이였고, 미라의 손상을 병으로 잘못 읽었을 수 있다는 반론도 강합니다.

빌린 무덤, 잊힌 왕

왕가의 계곡에 짓기 시작한 왕릉이 완성되지 않아, 그는 원래 왕을 위한 것이 아닌 작은 무덤을 급히 고쳐 묻혔습니다. 뒤를 이은 아이, 그다음의 호렘헤브는 투탕카멘의 기념물을 제 것으로 삼고 아마르나 시대 왕들을 공식 기록에서 지웠습니다. 이 망각이 오히려 행운이었습니다. 100여 년 뒤 다른 무덤 KV9를 팔 때 나온 돌무더기가 입구를 덮었고, 그 위에 일꾼들의 오두막까지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1922년 11월의 대발견

카나번 백작의 후원으로 1915년부터 왕가의 계곡을 체계적으로 뒤지던 하워드 카터는 1922년 11월 4일 무덤 계단의 첫 단을 찾아냈습니다. KV62호 무덤은 왕가의 계곡에서 거의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유일한 왕릉으로, 순금 관, 황금 가면, 왕좌, 활, 나팔, 샌들, 심지어 아마포 속옷까지 5,398점이 나왔습니다. 카터는 목록을 정리하는 데만 10년이 걸렸습니다. 철로 된 단검의 날은 운석에서 온 철로 분석됩니다.

'파라오의 저주'는 진짜였을까

무덤 안에는 저주의 글이 새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전설은 1923년 카나번 백작의 죽음에서 불붙었습니다. 모기에 물린 자리를 면도하다 베었는데, 그 상처가 감염되어 패혈증으로 숨진 것입니다. 바로 직전 소설가 마리 코렐리가 봉인된 무덤을 건드리면 '끔찍한 벌'을 받는다는 편지를 발표했고, 신문들은 앞다투어 저주를 떠들었습니다.

숫자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무덤과 석관을 열 때 그 자리에 있던 58명 가운데 12년 안에 죽은 사람은 8명뿐이었습니다. 카터는 1939년까지 살았고, 가장 먼저 무덤에 들어간 사람 중 하나인 카나번의 딸 에벌린 허버트는 1980년까지 살았습니다.

재위가 짧고 후계자들에게 지워진 소년 왕은, 바로 그 덕에 무덤이 살아남아 오늘날 고대 이집트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의 유물은 2025년 대이집트 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투탕카멘으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표현 뜻 예문
빛을 보다 숨어 있던 것이 세상에 드러나다 유물은 3천 년 만에 빛을 보았다.
설이 분분하다 의견이 여러 갈래로 나뉘다 그의 사인을 두고 설이 분분하다.
근거가 무너지다 주장의 바탕이 사라지다 새 분석으로 암살설의 근거가 무너졌다.
미궁에 빠지다 해결되지 않고 남다 사인은 아직 반쯤 미궁에 빠져 있다.
입방아에 오르다 사람들 사이에 이야깃거리가 되다 저주 이야기는 오랫동안 입방아에 올랐다.

연습: '파라오의 저주'에 대해 "설이 분분하다"와 "근거가 무너지다"를 넣어 문장 세 개를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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