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근 줄 알았을까? 1492년 항해의 진짜 계산 착오
당시 교육받은 유럽인은 이미 지구가 둥근 것을 알았습니다. 콜럼버스의 진짜 실수는 지구의 크기였고, 그는 끝까지 아시아에 닿았다고 믿었습니다.
네, 알았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당시 교육받은 다른 유럽인들처럼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지구가 평평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서쪽으로 갔다'는 이야기는 훨씬 뒤에 만들어진 신화입니다. 진짜 쟁점은 지구의 '크기'였습니다. 콜럼버스는 지구의 크기와 유럽에서 아시아까지의 거리를 실제보다 작게 잡았고, 그래서 전문가들은 그의 계획을 의심했습니다. 계산은 틀렸지만, 유럽이 몰랐던 두 대륙이 중간에 가로놓여 있었던 덕분에 그는 살아남았습니다.
제노바의 뱃사람
콜럼버스는 1451년 8월 말에서 10월 말 사이, 지금의 이탈리아에 있던 제노바 공화국에서 태어났습니다. 15세기 향신료와 비단 같은 값비싼 물건은 길고 비싼 길을 거쳐 아시아에서 들어왔습니다. 포르투갈이 아프리카를 돌아가는 길을 찾는 동안,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서쪽으로 건너 동인도에 곧장 가는 '지름길'을 내세웠습니다.
전문가들이 반대한 이유
포르투갈은 그의 계획을 거절했습니다. 세상 끝에서 떨어질까 봐서가 아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이후 학자들은 지구가 공 모양이라는 것을 알았고, 중세의 교육받은 유럽인에게도 상식이었습니다. 반대 이유는 계산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구 크기를 꽤 정확히 알고 있었고, 서쪽으로 가면 아시아가 너무 멀어 당시 배로는 식량과 물이 바닥난다고 보았습니다. 콜럼버스는 지구는 작게, 아시아는 크게 잡아 항해가 가능해 보이게 했던 것입니다.
1492년 10월 12일
여러 해 설득한 끝에 1492년, 스페인의 가톨릭 공동 왕인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가 후원을 결정했습니다. 그해 8월 그는 니냐호, 핀타호, 산타마리아호 세 척으로 팔로스 항을 떠났고, 10월 12일 주민들이 과나하니라고 부르던 바하마의 한 섬에 닿았습니다. 아시아 근처에 왔다고 믿은 그는 주민들을 '인디오(인도 사람)'라고 불렀고, 이 이름은 수백 년 동안 남았습니다.
네 번의 항해와 고집스러운 믿음
1492년부터 1504년까지 그는 스페인을 위해 네 번 대서양을 건넜고, 그의 탐험은 유럽과 카리브해, 중남미의 첫 번째로 알려진 접촉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아시아에 닿았다고 믿었고, 그 생각을 분명히 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새 대륙임을 알아챈 것은 다른 항해가와 지도 제작자들이었고, '아메리카'라는 이름도 그중 한 사람인 아메리고 베스푸치에게서 나왔습니다.
총독에서 죄수로, 달라진 평가
히스파니올라섬 총독이 된 그는 잔혹한 통치로 비난받았고, 1500년 체포되어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1506년 5월 20일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항해는 두 세계 사이에 동식물과 사람, 질병이 오간 '콜럼버스 교환'과 유럽의 아메리카 식민지화를 열었습니다. 오늘날 역사가들은 원주민이 입은 피해를 훨씬 무겁게 보며, 그는 예전처럼 영웅으로만 기려지지 않습니다.
콜럼버스로 배우는 우리말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닻을 올리다 | 새 일을 시작하다 | 새 프로젝트가 드디어 닻을 올렸다. |
| 얕잡아 보다 | 실제보다 작거나 쉽게 여기다 | 시험을 얕잡아 봤다가 고생했다. |
| 착각에 빠지다 | 사실과 다르게 믿다 | 그는 아시아에 왔다는 착각에 빠졌다. |
| 콜럼버스의 달걀 | 알고 나면 쉽지만 처음 생각하기는 어려운 것 | 그 아이디어는 콜럼버스의 달걀이었다. |
| 미지의 세계 | 아직 알지 못하는 곳 | 유학은 미지의 세계로 가는 첫걸음이었다. |
연습 과제: 여행이나 시험, 일을 얕잡아 봤던 경험을 "얕잡아 보다", "착각에 빠지다", "미지의 세계"를 넣어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