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무엇을 가르쳤을까? 정치에 실패하고 교실에서 성공한 '전하는 사람'

공자는 무엇을 가르쳤을까? 정치에 실패하고 교실에서 성공한 '전하는 사람'

공자는 사람이 태어남이 아니라 배움과 예, 남을 아끼는 마음으로 훌륭해진다고 가르쳤습니다. 노나라에서의 삶과 13년의 여정, 『논어』의 탄생을 따라갑니다.

공자가 가르친 배움의 핵심은 "사람은 핏줄이 아니라 배움으로 훌륭해진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옛 지혜를 공부하고, 예를 진심으로 실천하고, 다른 사람을 아끼는 것. 그 중심에 있는 덕목이 바로 '인(仁)'입니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 무렵부터 479년 무렵까지 지금의 중국 산둥성에 있던 노나라에서 살았습니다. 흥미롭게도 공자는 자기 사상을 직접 책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읽는 『논어』는 제자들과 후대 사람들이 그가 죽은 뒤 오랜 시간에 걸쳐 엮은 책입니다.

'컨퓨셔스'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영어권에서 부르는 'Confucius'는 중국어 이름이 아닙니다. '공부자(孔夫子)'를 라틴어식으로 바꾼 이름으로, 16세기 말 예수회 선교사들이 만들었습니다. 본명은 공구(孔丘), 자는 중니(仲尼)입니다. 전통적으로는 기원전 551년 9월 28일 노나라 추읍, 지금의 취푸 근처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정확한 날짜는 어디까지나 전승입니다.

가난한 소년, 장부를 적고 가축을 돌보다

아버지 숙량흘은 지역 수비대를 이끌던 나이 많은 무관으로, 공자가 세 살 무렵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 안징재는 가난 속에서 아들을 키웠고 마흔이 되기 전에 숨졌습니다.

젊은 공자는 말단 관리, 장부 정리, 양과 말 돌보기처럼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했습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어머니의 장례를 제대로 치르고 삼년상을 지냈다고 전해집니다. 훗날 공자가 효를 그토록 강조한 것도 이런 경험과 떼어 놓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는 열아홉 살에 결혼해 아들 공리와 두 딸을 두었습니다.

짧았던 벼슬길

기원전 501년 공자는 한 고을의 수령이 되었고, 일부 기록에 따르면 이후 형벌을 담당하는 대신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노나라의 실권은 세 귀족 가문이 쥐고 있었습니다. 공자는 이들의 성벽을 허물어 군주의 권위를 되살리려 했지만 세 번째 성읍에서 실패했고, 기원전 497년 노나라를 떠났습니다.

13년 동안 이어진 길 위의 시간

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위·송·정·조·초·제·진·채 같은 나라를 돌며 자기 생각을 받아 줄 군주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등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정은 대체로 기원전 497년부터 484년까지로 봅니다. 예순여덟 무렵 노나라 재상 계강자의 초청으로 고향에 돌아온 공자는 남은 시간을 관리들에게 조언하고 제자를 가르치는 데 썼습니다. 그는 기원전 479년 무렵 세상을 떠나 취푸 북쪽에 묻혔고, 후손 10만여 명이 잠든 공림은 오늘날 세계유산이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린 교실

『사기』에 따르면 공자의 제자는 3천 명가량이었고, 그중 뛰어난 제자는 72명 또는 77명이었다고 합니다. 숫자는 문헌마다 다릅니다. 『논어』에서 공자는 말린 고기 한 묶음만 가져오면 누구든 가르쳤다고 말합니다. 배움이 주로 귀족의 것이던 시대에 이 말은 가볍지 않았습니다. 또 공자는 자신을 새것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옛 지혜를 '전하는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술이편 1장).

네 단어로 보는 공자의 생각

  • 인(仁): 어짊. 『논어』에는 인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짧게 답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 예(禮): 공동체를 묶는 예절과 의례. 다만 공자는 공경 없는 예, 슬픔 없는 상례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 군자(君子): 출신이 아니라 인격을 닦아 훌륭해진 사람.
  • 효(孝): 부모와 웃어른에 대한 존경과 충실함.

가장 널리 알려진 가르침은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입니다. 또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된 앎이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외면당한 사상가에서 나라의 학문으로

공자를 쓰지 않은 제후들의 시대가 지나자, 한나라 무제 때 유학은 나라의 공식 학문이 되었고 오랫동안 관리 교육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송나라의 주희는 『논어』를 '사서'의 하나로 꼽았고, 그의 주석은 동아시아 전체의 표준 해석이 되었습니다. 조선의 선비들이 읽은 『논어』도 그 흐름 위에 있습니다.

공자로 배우는 우리말 표현

표현 뜻 예문
몸소 보여 주다 직접 행동으로 본보기가 되다 선생님은 늘 몸소 보여 주셨다.
내가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마라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말 할머니는 "내가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마라"라고 하셨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다 모르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해야 실력이 는다.
뜻을 세우다 이루고 싶은 목표를 마음에 정하다 열다섯 살에 교사가 되겠다는 뜻을 세웠다.
대를 이어 전하다 다음 세대로 물려주다 이 장 담그는 법은 대를 이어 전해졌다.

연습: 나에게 영향을 준 선생님을 한국어 세 문장으로 소개해 보세요. '몸소 보여 주다'와 '뜻을 세우다'를 한 번씩 넣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인물로 언어 배우기

주제별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