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은 왜 의사의 길을 버렸을까: 센다이의 환등기 사진과 『아Q정전』

루쉰은 일본 센다이에서 의학을 배우다 처형 장면 환등 사진을 보고 1906년 문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광인일기』와 『아Q정전』까지의 길.

루쉰이 의학을 포기한 이유는 중국에 먼저 필요한 것이 몸의 치료가 아니라 정신의 각성이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905년 일본 센다이 의학전문학교 강의실에서 그는 러시아 첩자로 몰린 중국인이 공개 처형되고, 같은 중국인 군중이 무심하게 구경하는 환등기 사진을 보았고, 그때부터 문학으로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길을 택했습니다. 1906년 3월 그는 조용히 학교를 떠났습니다. 열두 해 뒤 발표한 『광인일기』는 중국 현대 소설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몰락한 집안에서 자라다

루쉰은 1881년 9월 25일 저장성 사오싱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저우장서우(周樟壽)였고, 난징의 학교에 들어가면서 저우수런(周樹人)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집안은 땅과 전당포, 관직으로 부를 쌓았고, 할아버지 저우푸칭은 한림원에 임명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1893년 할아버지가 과거 시험관에게 뇌물을 쓰려다 들켰습니다. 참수형 선고는 항저우 감옥 수감으로 바뀌었지만, 가족은 1901년 그가 풀려날 때까지 관리들에게 계속 돈을 바쳐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술과 아편에 빠져 건강을 잃고 1896년 서른다섯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집안이 무너지는 모습을 가까이서 본 소년에게 서양 의학은 새로운 희망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해군 학교에서 일본 유학으로

1898년 그는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광로학당으로 옮겨 1902년 1월에 졸업했습니다. 수사학당을 반년 만에 그만둔 것은 기관실 근무로 배치될 처지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같은 해 청나라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의 고분학원에서 공부하며 쥘 베른의 소설을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1904년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환등기 사진 한 장

수업 중에 보여 준 러일전쟁 환등 사진 속에 바로 그 처형 장면이 있었습니다. 루쉰은 이 경험을 소설집 『외침(납함)』 서문에 적었고, 작가는 사회의 병을 진단하는 ‘문학의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몸이 아무리 튼튼해도 정신이 잠들어 있으면 소용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잘 풀리지는 않았습니다. 1906년 6월 어머니가 정한 대로 글을 모르는 주안과 결혼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애정은 없었고, 루쉰은 평생 그녀의 생활비를 댔습니다. 1909년에 낸 번역 소설집 『역외소설집』은 1,500부를 찍어 41부만 팔렸다고 합니다.

『광인일기』, 처음 쓴 이름 ‘루쉰’

1912년 2월 그는 새로 세워진 중화민국 교육부에 들어가 1926년까지 베이징에서 살았습니다. 1918년 잡지 『신청년』에 『광인일기』를 실으면서 처음으로 ‘루쉰’이라는 필명을 썼는데, ‘루(魯)’는 어머니의 성에서 따왔습니다.

소설은 문언으로 쓴 짧은 머리말 뒤에,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먹으려 한다고 믿는 남자의 일기 13편을 옮겨 적은 형식입니다. 남자는 역사책의 행간에서 ‘사람을 먹는다’는 글자를 읽어 내고, 마지막은 “아이들을 구하라”는 외침으로 끝납니다. 일기 형식은 고골의 같은 제목 단편에서 영향을 받았고,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유교 전통에 대한 공격으로 읽습니다.

흔히 ‘중국 최초의 현대 소설’로 불리지만, 천헝저의 「하루」가 반년쯤 앞서 비슷한 요소를 썼기 때문에 학자들 사이에 이견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이 입말에 가까운 글말인 백화(白話) 문학의 초기 대표작이라는 점이고, 백화는 1940년대에 표준 글말이 되었습니다.

아Q의 ‘정신 승리법’

『아Q정전』은 1921년 12월 4일부터 1922년 2월 12일까지 베이징의 신문 부록에 연재되었고, ‘바런(巴人)’이라는 다른 필명을 써서 작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모두 아홉 장으로, 1923년 소설집 『외침』에 실린 작품 가운데 가장 깁니다. 아Q는 약한 사람은 괴롭히고 강한 사람 앞에서는 움츠러드는 가난한 날품팔이로, 신해혁명 때 혁명당에 끼려다 거절당하고 결국 강도 사건의 희생양이 되어 처형됩니다.

이름의 ‘Q’는 같은 소리를 내는 한자가 너무 많아 화자가 정확한 글자를 몰라서 로마자로 대신 썼다는 설정입니다. 지고 나서도 머릿속으로 이겼다고 우기는 아Q의 버릇에서,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아Q 정신’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한국어의 ‘정신 승리’와 꼭 닮은 말입니다.

‘쇠로 된 방’의 질문

『외침』 서문에는 친구 첸쉬안퉁과 나눈 ‘쇠로 된 방’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문 하나 없는 쇠 방에서 많은 사람이 잠든 채 죽어 가고 있을 때, 그대로 자게 두는 것과 몇 사람이라도 깨우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나으냐는 물음입니다. 루쉰은 깨우는 쪽을 골랐습니다. 1926년에 나온 두 번째 소설집 『방황』에는 「축복」, 「술집에서」 같은 작품이 실렸습니다.

상하이에서 보낸 마지막 십 년

1926년 그는 베이징을 떠나 샤먼대학에서 가르쳤고, 1927년 1월에는 광저우 중산대학의 중문과 주임이 되었습니다. 그해 10월 상하이로 옮겨 그곳에서 남은 생을 보냈습니다. 제자였던 쉬광핑과 함께 살았고, 1929년 외아들 저우하이잉이 태어났습니다. 상하이 시절에는 소설보다 짧고 날카로운 시사 산문, 곧 잡문에 힘을 쏟아 잡문집만 16권을 남겼습니다.

1936년 10월 19일 새벽, 그는 상하이 집에서 폐결핵으로 쉰다섯 해의 삶을 마쳤습니다. 장례 때 관은 ‘민족혼(民族魂)’이라고 쓴 흰 깃발로 덮였습니다.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그를 “20세기 아시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불렀습니다.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에게 루쉰의 단편은 좋은 교재입니다. 길이가 짧아서 한국어 번역으로 줄거리를 먼저 잡고, 원문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 하나를 골라 소리 내어 읽는 식으로 공부하기 좋습니다.

루쉰으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표현 뜻 예문
펜을 들다 글쓰기를 시작하다 그는 의학을 접고 펜을 들었다.
행간을 읽다 숨은 뜻을 알아채다 광인은 역사책의 행간을 읽었다.
정신 승리 져도 이긴 척 스스로 위로함 아Q의 정신 승리는 늘 씁쓸하다.
눈을 뜨게 하다 현실을 깨닫게 하다 그 소설이 많은 독자의 눈을 뜨게 했다.
전환점이 되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다 사진 한 장이 전환점이 되었다.

연습: 여러분의 삶에서 ‘전환점이 된’ 일을 하나 떠올려, ‘전환점이 되다’와 ‘눈을 뜨게 하다’를 넣어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

루쉰 이야기로 언어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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