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양지에서 피어난 문장: 소동파는 왜 유배됐고 황주에서 무엇을 썼나

소식(소동파, 1037–1101)은 북송의 시인·문장가·서예가로, 왕안석의 개혁을 비판한 시 때문에 거듭 유배됐고 그 유배지에서 대표작을 남겼습니다.

소동파가 유배된 것은 왕안석의 신법을 비판한 시가 황제를 비방한 것으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1079년 '오대시안'이라 불리는 필화 사건 뒤 그는 황주로 쫓겨났고, 그곳에서 「적벽부」를 비롯해 훗날 대표작으로 꼽히는 시를 많이 썼습니다. 나중에는 더 멀리 혜주와 하이난섬의 담주까지 유배됐습니다. 본명은 소식, 호는 동파거사로, 북송의 시인이자 문장가, 서예가, 화가, 그리고 이름난 미식가였습니다. 벼슬길이 막힐수록 글은 더 깊어진, 조금 특이한 삶이었습니다.

쓰촨의 문인 집안

소식은 1037년 쓰촨성 어메이산 가까운 메이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함께 세 부자가 모두 중국 문학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이름 '식(軾)'은 수레 앞쪽의 가로대를 뜻합니다. 꼭 필요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부품처럼, 재주 많고 말이 거침없는 아들이 자신을 누를 줄 알기를 바란 아버지의 뜻이 담겼다고 합니다. 아들은 그 당부를 다 따르지는 못했습니다.

1057년, 열아홉 살의 소식은 동생과 함께 과거 최종 시험에 합격해 진사가 됐고, 인종 황제와 당대의 문장가 구양수의 눈에 들었습니다. 그 뒤 20년 가까이 여러 지방관을 지냈는데, 항저우에서는 서호를 가로지르는 둑을 쌓았고 이 둑은 지금도 '소제(蘇堤)'라 불립니다. 시만 쓰던 사람이 아니라 길과 물과 백성의 살림을 챙긴 관리였던 셈입니다.

시가 증거가 되다

문제는 정치였습니다. 그는 왕안석이 이끄는 개혁파와 자주 부딪쳤고, 소금 전매 같은 개혁 정책을 비판하는 시를 썼습니다. 개혁파는 이를 황제에 대한 비판으로 몰아 1079년 오대시안을 일으켰습니다. 다만 왕안석 본인은 이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고, 1076년 은퇴한 뒤로는 소식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옥살이는 먹는 일에 대한 생각까지 바꿨습니다. 부엌에서 죽기를 기다리는 닭 같은 심정을 겪고 나니, 입맛을 위해 생명에게 두려움과 고통을 줄 수 없게 됐다고 그는 적었습니다.

황주, 그리고 '동파'라는 이름

1080년부터 1086년까지의 황주 유배는 직함만 있고 봉급은 없는 생활이었습니다. 가난 속에서 그는 불교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1081년 친구의 도움으로 작은 집을 짓고 '동파(東坡, 동쪽 언덕)'라는 밭을 일궜는데, 그의 호 '동파'가 바로 이 밭 이름에서 나왔습니다. 천 년 가까이 불리는 이름이 죄인 신세의 관리가 괭이를 들던 밭에서 왔다는 사실이 묘하게 마음에 남습니다.

황주 시절은 그의 창작이 가장 왕성했던 때였습니다. 삼국시대 208년의 적벽대전에서 영감을 얻은 「전적벽부」·「후적벽부」와 사(詞) 「염노교·적벽회고」가 이때 나왔고, 서예 대표작 「한식첩」도 이 무렵의 작품입니다. 『삼국지』를 즐겨 읽은 한국 독자라면 적벽을 노래한 소동파가 더 가깝게 느껴질 것입니다.

호방한 사와 여산의 한 구절

남아 있는 그의 시는 약 2,700수, 편지는 800통입니다. 그중 약 350수의 사가 평가의 중심인데, 그는 '호방파'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사냥, 불교, 정치, 늙음과 죽음처럼 자기 삶에서 길어 올린 주제를 사에 담아 그 폭을 크게 넓혔습니다. 추석 밤 동생 소철을 그리며 쓴 「수조가두」도 널리 사랑받습니다.

여산을 노래한 시에는, 산속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산의 참모습을 알 수 없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와도 통하는 생각입니다. 문장으로는 '당송팔대가', 서예로는 '송사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그림에서는 대나무와 괴석을 즐겨 그리며 겉모습보다 정신을 담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다시 유배, 그리고 마지막 길

1086년 정권이 바뀌어 수도로 돌아왔지만, 1094년부터 1100년까지 다시 혜주와 하이난섬 담주로 유배됐습니다. 늘그막의 유배길을 함께한 왕조운은 1095년 혜주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100년 사면을 받아 청두로 부임하게 됐지만, 1101년 임지로 가던 길에 창저우에서 예순넷의 나이로 숨졌습니다. 동생 소철은 그의 뜻대로 둘째 부인 왕윤지 곁에 그를 묻었습니다.

동파육은 정말 그가 만들었을까

항저우 요리 동파육은 삼겹살을 지진 뒤 간장 양념에 오래 졸인 음식으로, 소동파의 이름을 땄습니다. 황주에서 가난하게 살던 그가 값싼 돼지고기를 황주(黃酒)와 얼음설탕, 간장으로 뭉근히 끓였다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이는 전설입니다. 그가 우연히 이 요리를 발명했다는 이야기에는 증거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가 중국의 고전 4대 미식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는 사실은 이 전설이 왜 그의 이름에 붙었는지 짐작하게 해 줍니다.

소동파로 배우는 중국어 표현

표현 뜻 예문
庐山真面目 (Lúshān zhēn miànmù) 사물의 참모습 这才是他的庐山真面目。
身在此山中 (shēn zài cǐ shān zhōng) 당사자라서 전체를 못 보다 你是身在此山中。
塞翁失马 (sài wēng shī mǎ) 새옹지마, 화가 복이 되기도 함 被贬也是塞翁失马。
东坡肉 (Dōngpō ròu) 동파육 我想吃东坡肉。
但愿人长久 (dàn yuàn rén cháng jiǔ) 사람이 오래 함께하기를 바람 但愿人长久,千里共婵娟。

연습: '塞翁失马'를 넣어, 나쁜 일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던 경험을 중국어 한 문장으로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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