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 칸은 어떻게 몽골 제국을 세웠을까? 버려진 소년 테무친의 역전기

칭기즈 칸은 어떻게 몽골 제국을 세웠을까? 버려진 소년 테무친의 역전기

부족에게 버림받은 소년 테무친은 1206년 칭기즈 칸이 됐다. 초원의 부족을 하나로 묶은 방법과 정복의 대가, 오늘날 몽골에서의 평가를 정리했다.

칭기즈 칸의 몽골 통일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먼저 20년 가까이 동맹과 배신, 전쟁을 거듭하며 서로 싸우던 초원의 부족들을 하나로 모았고, 1206년 부족 회의에서 '칭기즈 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다음 사회 전체를 10명·100명·1000명 단위의 군사 조직으로 다시 짜고, 그 군대를 중국 북부와 중앙아시아로 보냈다. 1227년 그가 숨질 무렵 몽골은 거대한 국가가 되어 있었다.

놀라운 건 출발점이다. 그는 자기 부족에게 버림받아 풀뿌리와 물고기로 끼니를 잇던 집안의 아이였다.

아버지를 잃은 소년 테무친

본명은 테무친이다. 태어난 해는 1155년, 1162년, 1167년 설이 있고, 많은 역사가는 1162년 무렵으로 본다. 아버지 예수게이는 보르지긴 씨족의 족장이었다. 어린 테무친의 혼약을 맺고 돌아오던 길에 타타르족 진영에 들렀다가 음식에 독이 섞였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족장을 잃자 그를 따르던 타이치우드족은 남은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어머니 후엘룬과 아이들은 풀뿌리와 열매를 캐고, 작은 짐승을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버텼다. 『몽골비사』는 이 시절 테무친이 동생 카사르와 함께 이복형 벡테르를 죽였다는 어두운 일화도 전한다. 공식 연대기에는 빠져 있는 이야기다.

의형제와 숙적

열다섯 살 무렵 테무친은 보르테와 결혼했지만, 곧 메르키트족이 아내를 납치해 갔다. 그는 케레이트족의 왕 토오릴, 그리고 어릴 적 의형제(안다)였던 자무카의 도움을 받아 아내를 되찾았다.

하지만 자무카와는 결국 초원의 주도권을 다투는 숙적이 됐고, 1203년에는 토오릴에게도 기습을 당했다. 크게 패한 테무친 곁에 남은 사람들은 아홉 개 부족 출신이었다. 이들이 서로와 테무친에게 맹세한 충성을 '발주나 맹약'이라고 부른다. 테무친은 전열을 가다듬어 토오릴을 꺾었고, 1204년에는 나이만족과 메르키트족까지 무너뜨렸다.

1206년, 부족을 '섞어서' 나라를 만들다

1206년 오논강 상류에서 열린 부족 회의(쿠릴타이)에서 테무친은 칭기즈 칸이 되었다. '칭기즈'의 뜻은 분명하지 않다. 강인함을 뜻한다는 설, '바다'와 연결해 '온 세상의 군주'로 보는 설 등이 있다.

진짜 힘은 그다음 개혁에서 나왔다. 15세에서 70세 정도의 남자를 10·100·1000 단위로 편성하고, 정복한 부족의 전사는 일부러 여러 부대에 흩어 배치했다. 옛 부족에 대한 충성을 약하게 만들고 칸에 대한 충성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친위대 케식은 약 1150명에서 1만 명으로 늘어나 호위대이자 장교 학교, 행정 중심 역할을 함께 맡았다. 출신보다 능력을 보아, 전투에서 자기 말을 쏘아 쓰러뜨린 적의 궁수 제베를 장군으로 삼기도 했다.

문자를 가진 유목 국가

언어 공부하는 사람에게 특히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그전까지 몽골어에는 글자가 없었다. 칭기즈 칸은 포로로 잡힌 위구르인 서기 타타통가의 도움을 받아 위구르 문자로 몽골어를 적게 했다. 명령을 정확히 전하고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역마다 말을 갈아탈 수 있는 기마 전령망을 두었고, 여러 종교를 자유롭게 믿도록 허용했다. 흔히 그가 직접 만든 성문법으로 알려진 '대야사'는 실제로 그가 법전으로 엮었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학계의 시각이다.

정복의 대가와 엇갈린 평가

1215년 금나라 수도 중도(지금의 베이징 부근)가 함락됐다. 1218년 오트라르에서 상인 약 450명이 살해되고 사신까지 죽임을 당하자, 이듬해 호라즘 원정이 시작됐다. 부하라와 사마르칸트가 무너졌고 니샤푸르와 헤라트는 파괴됐다. 당시 페르시아 역사가들이 남긴 사망자 수는 오늘날 과장으로 보지만, 신중한 추정도 백만 명을 넘는다.

칭기즈 칸은 1227년 8월 서하 원정 중에 숨졌고, 무덤은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러시아와 아랍 세계에서는 잔혹한 정복자로 기억되지만, 몽골에서는 '나라를 세운 아버지'다. 1990년 민주화 이후 울란바토르의 레닌 거리는 칭기즈 칸 거리로 이름이 바뀌었고, 국제공항과 지폐에도 그의 이름과 얼굴이 들어갔다.

칭기즈 칸으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바닥에서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 손을 잡았다가 등을 돌리는 이야기. 칭기즈 칸의 삶에 딱 맞는 한국어 표현을 익혀 보자.

표현 뜻 예문
맨손으로 시작하다 아무것도 없이 출발하다 그는 맨손으로 시작해 회사를 키웠다.
손을 잡다 협력하다 두 부족이 손을 잡았다.
등을 돌리다 관계를 끊거나 배신하다 믿었던 친구가 등을 돌렸다.
전열을 가다듬다 실패 뒤 다시 준비하다 우리는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도전했다.
한마음이 되다 모두 하나로 뭉치다 팀원 모두가 한마음이 되었다.

연습해 보기: 힘든 일을 겪고 다시 일어섰던 경험을 한국어 세 문장으로 써 보자. '전열을 가다듬다'와 '손을 잡다'를 한 번씩 꼭 넣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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