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보 슈사쿠는 어떤 기사였을까? 오시로고 19전 전승과 '귀가 붉어진 한 판'
혼인보 슈사쿠는 쇼군 앞의 대국 오시로고에서 19전 전승을 거두고, 열일곱 살에 '귀가 붉어진 한 판'을 두었으며, 콜레라 환자를 돌보다 서른셋에 숨졌습니다.
혼인보 슈사쿠(1829–1862)는 바둑 역사상 가장 뛰어난 기사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일본 에도 시대의 프로 기사입니다. 쇼군 앞에서 두는 '오시로고'에서 19판을 모두 이겨 '불패의 슈사쿠'라 불렸고, 뒤에 '기성(棋聖)'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혼인보 가문에서 콜레라에 걸린 사람들을 돌보다 자신도 감염되어 겨우 서른세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요즘은 만화 『고스트 바둑왕(히카루의 바둑)』으로 그를 처음 아는 사람도 많지만, 실제 슈사쿠도 그 자체로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바둑이란
바둑은 중국어로 '웨이치', 일본어로 '고'라 부르는 오래된 판 놀이로, 보통 가로세로 19줄 판 위에 흑돌과 백돌을 번갈아 놓아 상대보다 더 많은 집을 차지하는 쪽이 이깁니다. 규칙은 간단하지만 깊이는 끝이 없습니다.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막부의 보호를 받는 바둑 가문에 일류 기사들이 속해 있었고, 그 으뜸이 혼인보 가문이었습니다.
인노시마의 천재 소년
슈사쿠는 1829년 빈고국의 섬 인노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인 그는 에도(지금의 도쿄)로 보내져 바둑 명가 혼인보 가문에서 수련했고, 스승 혼인보 슈와 역시 당대 최강 기사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귀가 붉어진 한 판
1846년 열일곱 살의 슈사쿠는 당대 최고수 가운데 한 명인 이노우에 겐난 인세키와 지금까지 전해지는 명국을 두었습니다. 구경하던 이들 대부분은 겐난이 유리하다고 보았는데, 대국을 지켜보던 한 의사가 슈사쿠의 어떤 한 수 뒤에 겐난의 귀가 빨개진 것을 알아챘습니다. 흔들렸다는 표시였습니다. 슈사쿠는 결국 두 집 차로 이겼습니다. 이 수는 '귀가 붉어진 묘수'로 불리며, 이 대국은 지금도 세계의 바둑인들이 연구합니다.
오시로고 불패
해마다 최고의 기사들은 쇼군 앞에서 두는 '오시로고'에 초대되었는데, 이것이 바둑계의 가장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슈사쿠는 여기서 19판을 두어 모두 이겼습니다. 스승 슈와와 함께 당대 최강으로 꼽혔고, 1853년부터는 오타 유조와 30번기도 두었습니다.
슈사쿠류 포석
흑의 포석 '슈사쿠류'는 그의 이름을 땄지만 그가 처음 만든 것은 아니고, 그가 완성의 경지로 끌어올린 것입니다. 1930년대까지 초반 포석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화려한 수보다 꾸준한 우세를 노리는 아주 탄탄한 방식입니다.
콜레라 속의 희생
1862년 에도에 콜레라가 크게 번졌습니다. 혼인보 가문에서 환자가 나오자 슈사쿠는 직접 간호에 나섰다가 감염되어 그해 9월 3일 서른셋의 나이로 숨졌습니다. 남을 돌보다 맞은 이른 죽음은 그의 전설을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숫자와 만화에 남은 이름
수학의 '에르되시 수'를 본뜬 '슈사쿠 수'는 대국의 고리를 따라 어떤 기사가 슈사쿠와 얼마나 가까운지를 나타냅니다. 또 『고스트 바둑왕』에서는 가상의 기사 후지와라노 사이의 영혼이 슈사쿠를 통해 바둑을 두었다는 설정이어서, 전 세계 새로운 세대가 그를 알게 되었습니다.
혼인보 슈사쿠로 배우는 우리말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포석을 깔다 | 앞날을 위해 미리 준비하다 | 지금부터 포석을 깔아 두자. |
| 묘수 | 뛰어나게 좋은 수나 방법 | 위기를 벗어날 묘수를 찾았다. |
| 정석대로 하다 | 정해진 바른 방법을 따르다 | 이번에는 정석대로 하자. |
| 훈수를 두다 | 옆에서 끼어들어 조언하다 | 친구가 옆에서 훈수를 뒀다. |
| 자충수 | 스스로에게 불리한 행동 | 그 결정은 자충수였다. |
연습 과제: 우리말에는 바둑에서 온 표현이 많습니다. "포석을 깔다", "묘수"를 넣어 내 외국어 공부 계획을 세 문장으로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