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모토노 요시쓰네와 단노우라: 겐페이 전쟁을 이기고도 형에게 쫓긴 비운의 무사
미나모토노 요시쓰네(1159년경–1189)는 단노우라에서 다이라 가문을 무너뜨렸지만 형 요리토모에게 쫓겨 자결했습니다. 전공과 몰락, 벤케이 전설을 정리했습니다.
요시쓰네가 형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게 쫓긴 것은, 요리토모의 허락 없이 조정의 관직을 받고 다이라 가문과의 전쟁에서 제멋대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그 뒤 요시쓰네가 독자 세력을 꾀하는 기색을 보이자 그는 조정의 적으로 선포돼 전국에 수배됐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전쟁을 형에게 이겨 준 사람이 바로 요시쓰네였습니다. 미나모토노 요시쓰네(1159년경–1189)는 이치노타니, 야시마, 단노우라 전투에서 다이라 가문을 무너뜨린 장수로, 일본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무라이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힙니다.
아버지의 패배에서 살아남은 아이
요시쓰네는 미나모토노 요시토모의 아홉째 아들로, 어머니는 도키와 고젠, 어릴 적 이름은 우시와카마루였습니다. 1160년 헤이지의 난에서 아버지와 두 형이 목숨을 잃었을 때, 갓난아기였던 그는 어머니와 함께 수도를 빠져나가 살아남았고, 배다른 형 요리토모는 이즈로 유배됐습니다.
열 살 무렵 교토 근처 구라마데라에 맡겨져 검술과 병법을 익혔는데, 스승이 전설 속 소조보였다는 이야기도, 기이치 호겐의 병법서를 훔쳐 배웠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승려가 되기 싫었던 그는 1174년 아버지를 알던 금 상인을 따라 북쪽 히라이즈미로 가서,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우두머리 후지와라노 히데히라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벤케이와의 만남, 역사와 전설 사이
요시쓰네 하면 거구의 승병 벤케이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서 벤케이는 밤마다 교토를 돌며 오만한 무사들의 칼을 빼앗아 999자루를 모았고, 마지막 한 자루를 노리다 피리 부는 젊은이와 고조 대교에서 맞붙었다가 졌습니다. 그 젊은이가 요시쓰네였고, 벤케이는 그때부터 그의 충직한 가신이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설로 읽어야 합니다. 벤케이를 언급한 가장 이른 기록들은 그가 살았던 때보다 백 년 넘게 뒤에 쓰였고, 그가 요시쓰네의 가신이었으며 뜻밖에도 마른 승려였다는 정도만 전합니다. 유명한 일화 대부분은 14세기 작품 『기케이키(義經記)』에서 나왔습니다.
겐페이 전쟁의 영웅
1180년 미나모토 가문의 우두머리가 된 요리토모가 조정을 쥐고 흔들던 다이라 가문을 치려고 군사를 일으키자, 요시쓰네는 형 노리요리와 함께 달려갔습니다. 형제들은 그때 처음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아들 같다'는 말을 들을 만큼 가까웠습니다. 1184년 초 요리토모의 명으로 사촌 미나모토노 요시나카를 아와즈에서 쳤고, 같은 해 3월 지금의 고베 근처 이치노타니에서, 1185년 3월에는 시코쿠의 야시마에서 다이라 가문을 꺾었습니다.
단노우라, 물때가 바꾼 승부
한 달 뒤 혼슈 남쪽 끝 간몬 해협의 단노우라에서 마지막 해전이 벌어졌습니다. 다이라 쪽은 배가 더 많았고 그 바다의 조류를 잘 알았으며, 여섯 살 남짓한 안토쿠 천황과 황위의 상징인 신기까지 데리고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조류가 다이라에 유리했지만 오후에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아들을 미나모토 쪽에 인질로 잡힌 다이라의 장수 다구치 시게요시가 돌아서서 다이라를 뒤에서 치고 천황이 탄 배까지 알려 주었고, 미나모토의 궁수들이 키잡이와 노꾼을 노리자 다이라의 배들은 통제를 잃었습니다.
패배를 깨달은 다이라 사람들은 잇달아 바다에 몸을 던졌고, 어린 안토쿠 천황과 할머니 다이라노 도키코도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 다이라 가문의 시대는 이렇게 끝났고, 요리토모는 첫 쇼군이 되어 가마쿠라에 무사 정권을 세웠습니다. 요시쓰네가 배 여덟 척을 연달아 뛰어넘었다는 '핫소토비' 이야기도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한 척쯤 건너뛴 것을 후대가 부풀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영웅에서 도망자로
전쟁이 끝나자 고시라카와 법황은 요시쓰네를 이요의 수령으로 임명하고 여러 관직을 내렸지만, 의심 많은 요리토모는 이에 반대해 모두 무효로 돌렸습니다. 1185년 가마쿠라 입성을 허락받지 못하고 고시고에에서 기다리던 요시쓰네는 충성을 호소하는 '고시고에장'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다카 관문을 빠져나간 도피 이야기는 노 「아다카」, 가부키 「간진초」,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의 1945년 영화 「호랑이 꼬리를 밟은 남자들」이 됐습니다.
결국 히라이즈미로 돌아갔지만, 히데히라가 죽은 뒤 아들 야스히라가 요리토모의 압력에 굴복해 1189년 고로모가와의 거처를 공격했고, 요시쓰네는 자결로 내몰렸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벤케이는 문 앞 다리를 지키며 수많은 화살을 맞고도 선 채로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이른바 '벤케이의 다치오조(선 채로 죽음)'입니다.
죽지 않는 전설, '호간비이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누 전승에는 그가 홋카이도로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있고, 대륙으로 건너가 칭기즈 칸이 됐다는 황당한 설은 1879년 케임브리지 대학에 유학하던 스에마쓰 겐초가 퍼뜨려 한동안 일본에서 유행했습니다. 그의 관직명 '구로 호간(九郎判官)'에서 비극의 영웅이나 약자를 편드는 마음을 뜻하는 일본어 '호간비이키(判官贔屓)'가 생겼습니다. 지는 팀을 응원하는 마음에 아직도 요시쓰네의 이름이 숨어 있는 셈입니다.
요시쓰네로 배우는 일본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判官びいき (ほうがんびいき) | 약자 편들기 | 判官びいきで負けている方を応援した。 |
| 弁慶の泣き所 (べんけいのなきどころ) | 강한 사람의 약점 | 数学が彼の弁慶の泣き所だ。 |
| 立ち往生 (たちおうじょう) | 오도 가도 못함 | 雪で車が立ち往生した。 |
| 内弁慶 (うちべんけい) | 집 안에서만 큰소리치는 사람 | 弟は内弁慶だ。 |
| 潮目が変わる (しおめがかわる) | 형세가 바뀌다 | 午後に潮目が変わった。 |
연습: '判官びいき'를 넣어, 약한 쪽을 응원했던 경험을 일본어 한 문장으로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