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료마와 삿초 동맹: 번을 버린 하급 무사가 메이지 유신에 남긴 것
사카모토 료마(1836–1867)는 도사번의 하급 무사로, 사쓰마와 조슈의 동맹과 대정봉환 교섭에 참여했고 31세에 교토에서 암살됐습니다. 생애와 전설을 정리했습니다.
사카모토 료마가 메이지 유신에서 한 일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앙숙이던 사쓰마번과 조슈번이 1866년 비밀 동맹(삿초 동맹)을 맺는 교섭에 참여했고,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1867년 스스로 정권을 내놓게 한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선거로 뽑는 의회와 헌법을 갖춘 새 국가의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시코쿠 도사번의 하급 무사였고, 1867년 12월 동료 나카오카 신타로와 함께 교토에서 암살당해 메이지 유신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일본에서 가장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인물 가운데 하나라서, 사람과 전설을 나눠 보는 일이 더 흥미롭습니다.
술 빚던 집안이 산 무사 신분
료마는 1836년 1월 3일 도사번의 고치, 지금의 고치현에서 태어났습니다. 사카모토 집안은 '고시(鄕士)', 즉 무사 계급에서 가장 낮은 신분이었는데, 이 신분도 조상이 양조업으로 돈을 모아 사들인 것이었습니다. 도사번은 상급 무사와 하급 무사의 구분이 유난히 엄격해서, 대우가 다른 것은 물론 사는 동네까지 나뉘어 있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그가 훗날 봉건제와 신분제가 없는 일본을 꿈꿨다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공부에는 소질이 없었습니다. 열두 살에 사숙에 들어갔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따돌림을 당한 뒤 열네 살에 누나의 권유로 검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른이 될 무렵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검의 달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에도의 검술 도장과 검은 배
1853년 그는 번의 허락을 받아 에도의 이름난 호쿠신잇토류 지바 도장에서 수련했고, 면허를 받아 사범으로 가르치기까지 했습니다. 바로 그해 미국의 페리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와 일본에 쇄국을 끝내라고 압박했고, 이듬해 막부가 맺은 가나가와 조약은 많은 일본인에게 불평등 조약이자 약함의 증거로 비쳤습니다. 쇼군의 권위는 크게 흔들렸고, 료마를 비롯한 많은 무사가 권력을 교토의 조정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탈번, 그리고 죽이려던 사람의 제자가 되다
1862년 료마는 친구 다케치 한페이타와 생각이 갈렸습니다. 료마는 일본 전체를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봤고, 다케치는 도사번 안의 개혁에만 매달렸습니다. 결국 료마는 허락 없이 번을 떠났는데, 당시 이를 '탈번'이라 했고 죽음으로 다스릴 수 있는 죄였습니다. 낭인이 된 그는 '사이타니 우메타로'라는 가명으로 막부에 맞섰고, 신센구미 등에게 자주 쫓겼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는 근대화를 주장하던 막부 고위 관리 가쓰 가이슈를 죽이러 갔다가 도리어 서양에 맞서려면 장기적으로 국력을 길러야 한다는 설득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됐습니다. 그 뒤 사쓰마번의 도움으로 나가사키에 민간 해군 겸 무역 회사인 가메야마 샤추를 세웠고, 이것이 훗날 가이엔타이(해원대)가 됩니다.
삿초 동맹의 진짜 주역은
사쓰마와 조슈는 일본 서남부의 강력한 두 번으로, 오랫동안 원수 사이였습니다. 조슈는 신식 무기가 절실했지만 서양과 닿는 길이 거의 없었고, 사쓰마는 스코틀랜드 상인 토머스 글로버를 통해 영국과 무기 거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료마의 제안에 따라 사쓰마의 사이고 다카모리가 조슈에 무기를 대 주는 거래를 주선했습니다. 나카오카 신타로의 중재로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와 조슈의 가쓰라 고고로가 마주 앉았고, 두 번은 1866년 동맹을 맺었습니다.
드라마는 흔히 료마를 동맹을 혼자 성사시킨 천재로 그리지만, 영어권 자료는 '중립적인 외부인'으로서 그의 역할이 생각만큼 크지 않았고 교섭의 결정적 역할은 사쓰마의 고마쓰 다테와키가 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래도 동맹의 힘은 분명했습니다. 1866년 여름 막부의 조슈 정벌군이 크게 패했고, 1868–1869년 보신 전쟁에서 막부를 무너뜨린 관군은 주로 사쓰마와 조슈의 무사들이었습니다.
데라다야의 권총과 선중팔책
1866년 3월 교토의 여관 데라다야에서 막부 쪽 사람들이 료마를 습격했습니다. 목욕하던 오료가 습격자들을 알아채고 2층으로 달려가 알렸고, 료마는 스미스 앤드 웨슨 리볼버로 맞서 위기를 넘겼습니다. 무사 차림에 서양 구두를 즐겨 신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전통과 근대가 뒤섞인 료마를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1867년 나가사키 앞바다의 도사번 배 위에서 고토 쇼지로와 논의하며 쓴 '선중팔책'은 선거로 뽑는 양원제 의회, 헌법, 국군 창설, 금은 교환 비율 규제 등을 담았고, 훗날 일본 의회 제도의 토대가 됐다고 평가됩니다.
오미야 여관의 밤
1867년 12월 10일, 료마는 교토의 오미야(오우미야) 여관에서 습격을 받아 서른한 살로 숨졌습니다. 함께 있던 나카오카는 이틀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음력으로 따지면 그날은 료마의 생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신센구미가 의심받았지만 1870년 다른 친막부 조직인 미마와리구미 대원들이 범행을 자백했고, 그런데도 진짜 범인은 지금까지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드라마와 게임 속의 료마
료마는 일본 대중문화에서 끝없이 그려집니다. 2010년 한 기사는 그를 다룬 TV 드라마가 적어도 7편, 소설 6편, 만화 7편, 영화 5편이라고 셌습니다. NHK 대하드라마 「료마전」, 드라마 「JIN-진-」, 『은혼』의 사카모토 다쓰마, 게임 「용과 같이 유신!」이 모두 그를 바탕으로 합니다. 「료마전」에서 그를 연기한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료마가 누구든 자신을 겹쳐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료마로 배우는 일본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犬猿の仲 (けんえんのなか) | 견원지간, 사이가 아주 나쁨 | 薩摩と長州は犬猿の仲だった。 |
| 手を結ぶ (てをむすぶ) | 손을 잡다, 협력하다 | 両藩は手を結んだ。 |
| 脱藩する (だっぱんする) | 번을 떠나다 | 龍馬は土佐を脱藩した。 |
| 先見の明 (せんけんのめい) | 앞을 내다보는 안목 | 彼には先見の明があった。 |
| 志半ば (こころざしなかば) | 뜻을 이루기 전에 | 龍馬は志半ばで倒れた。 |
연습: '手を結ぶ'를 넣어, 사이가 나빴던 사람들이 힘을 합친 이야기를 일본어 한 문장으로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