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엇 터브먼은 어떻게 노예들을 탈출시켰을까? '흑인의 모세' 이야기
노예로 태어난 해리엇 터브먼은 1849년 탈출한 뒤 남부로 여러 번 돌아가 약 70명을 자유로 이끌었습니다. 그 방법과 남북전쟁 속 활약을 정리합니다.
해리엇 터브먼은 긴 겨울밤과 토요일 밤 출발, 몸에 지닌 권총, 가사를 바꾼 흑인 영가 신호 같은 치밀한 방법으로 노예들을 북쪽으로 탈출시켰습니다. 그녀 자신도 메릴랜드에서 노예로 태어나 1849년 홀로 탈출했고, 그 뒤 13번가량 남부로 돌아가 약 70명을 자유로 이끌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백성을 이끌고 노예살이에서 벗어난 성경 속 예언자에 빗대어 '모세'라고 불렀습니다.
아라민타라는 소녀
그녀는 메릴랜드주 도체스터 카운티에서 노예로 태어났습니다. 정확한 출생 연도는 알 수 없지만 1822년이 가장 유력합니다. 본명은 아라민타 로스였습니다. 주인은 그녀의 언니 셋을 다른 곳에 팔아 버렸고, 가족은 다시는 그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10대 때 한 감독관이 허락 없이 자리를 비운 남자에게 약 1킬로그램짜리 쇠 추를 던졌는데, 그것이 그녀의 머리에 맞았습니다.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이틀 동안 방치된 그녀는 평생 두통과 발작, 갑자기 잠드는 증상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는 메시지라고 믿은 환상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1844년 무렵 자유 흑인 존 터브먼과 결혼했고, 이름을 해리엇으로 바꾸었습니다.
홀로 떠난 북쪽 길
1849년 9월 17일, 그녀는 두 형제와 함께 도망쳤습니다. 형제들이 겁을 먹고 돌아가자 그녀도 함께 돌아갔지만, 곧 혼자서 다시 길을 떠나 펜실베이니아에 닿았습니다. 퀘이커 교도 같은 '지하철도' 협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밤길을 약 145킬로미터 걸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유의 땅에 들어섰을 때 그녀는 "내가 같은 사람인지 보려고 내 손을 들여다보았다"고 회상했습니다.
지하철도의 차장
자유를 얻은 뒤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1850년부터 메릴랜드로 돌아가 가족을 데려오기 시작했고, 1851년에는 11명을 이끌고 캐나다까지 갔습니다. 1850년 도망노예법이 통과되어 북부에서도 붙잡혀 돌아갈 위험이 커지자, 사람들을 아예 캐나다까지 안내한 것입니다. 1857년에는 늙은 부모를 캐나다 온타리오주 세인트캐서린스로 데려갔습니다.
그녀의 방법은 영리했습니다. 밤이 길고 바깥에 사람이 적은 겨울에 움직였고, 신문이 도망 노예 광고를 월요일에야 싣는다는 점을 노려 토요일 밤에 출발했습니다. 노예 사냥꾼에 맞서고 중간에 돌아가려는 사람을 막기 위해 권총을 들고 다녔고, 영가를 신호로 써서 길이 안전한지 알렸습니다. 훗날 그녀는 "단 한 명의 승객도 잃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300명? 숫자를 바로잡기
한국어 위키백과도 머리말에서는 13번의 여행으로 약 70명을 구했다고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300명이 넘는다고 적고 있습니다. 현대 연구가 받아들이는 숫자는 약 13번, 약 70명입니다. 또 노예주들이 그녀에게 4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는 이야기도 유명하지만, 당시 기록이 없어 역사학자들은 지어낸 이야기로 봅니다. 부풀리지 않아도 그녀가 한 일은 충분히 놀랍습니다.
존 브라운과 '터브먼 장군'
1858년 그녀는 무력으로 노예제와 싸우려던 백인 활동가 존 브라운을 만났고, 브라운은 그녀를 '터브먼 장군'이라 불렀습니다. 1859년 그녀는 뉴욕주 오번의 작은 땅을 윌리엄 수어드 상원의원에게서 1,200달러에 사서 캐나다에 있던 부모를 데려왔습니다. 같은 해 10월 16일 브라운의 하퍼스 페리 습격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컴바히강 작전
남북전쟁이 시작되자 그녀는 북군을 위해 요리사, 간호사, 정찰병, 첩자로 일했습니다. 1863년 6월 1~2일, 북군 배들이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컴바히강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제임스 몽고메리 대령이 이끄는 흑인 보병 연대가 타고 있었고, 터브먼은 작전 계획을 돕고 지역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배가 다가오자 노예들이 강가로 몰려왔고, 750명이 넘는 사람이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 작전은 여성이 이끈 미국 최초의 무장 군사 작전으로 널리 여겨집니다.
말년과 남긴 것
전쟁 뒤 그녀는 오번으로 돌아갔고, 1869년 3월 18일 참전 용사 넬슨 데이비스와 결혼했으며, 1874년에는 거티라는 딸을 입양했습니다. 1899년에야 오랫동안 거절당하던 전쟁 연금을 받았습니다. 여성 참정권 운동에도 참여해 수전 B. 앤서니와 함께 연설했습니다. 흑인 노인을 위한 요양원 세우는 일을 도왔고, 1913년 3월 10일 오번에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016년 미국 재무부는 그녀를 20달러 지폐 앞면에 넣겠다고 발표했지만, 2026년 7월 재무장관은 더 이상 그런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2024년에는 메릴랜드 주방위군 준장으로 사후 진급했습니다.
해리엇 터브먼으로 배우는 한국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목숨을 걸다 | 죽을 위험을 무릅쓰다 | 그녀는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이끌었다. |
| 어둠을 틈타다 | 어두운 때를 이용하다 | 일행은 어둠을 틈타 북쪽으로 갔다. |
| 앞장서다 | 맨 앞에서 이끌다 | 그녀는 늘 앞장섰다. |
| 부풀려지다 | 실제보다 크게 전해지다 | 구출 인원은 부풀려져 전해졌다. |
| 굴하지 않다 | 어려움에 꺾이지 않다 | 그녀는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다. |
연습해 보기: '목숨을 걸다'와 '앞장서다'를 넣어, 존경하는 사람에 대해 세 문장을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