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 여덟 살에 시재를 떨치고 스물여섯에 떠난 조선의 여성 시인
허난설헌(1563–1589)은 여덟 살에 신동으로 이름나고, 외로움과 상실을 노래한 조선 중기의 여성 시인입니다. 그의 삶과 가족, 지금 전하는 211수의 시를 정리했습니다.
허난설헌(1563–1589)은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화가로, 여덟 살에 지은 글로 극찬을 받은 신동이었고, 작품이 후대에 전해진 몇 안 되는 조선 여성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스물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211수의 시가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당시 교양 있는 사람들처럼 한시로 썼고, 외로움과 슬픔, 먼 세계에 대한 꿈, 가난한 이들에 대한 공감을 노래했습니다.
강릉의 문장가 집안
난설헌은 동해안의 강릉에서 이름난 양반 가문에 태어났습니다. 난설헌이라는 호로 알려지기 전 이름은 허초희였습니다. 집안은 유난히 문학적이었습니다. 오빠 허봉은 거침없이 말하던 정치가이자 학자였고, 동생 허균은 훗날 이름난 문장가가 되어 『홍길동전』의 작가로 전해집니다. 허균은 당시(唐詩)에 밝은 이달에게 배웠고 누이의 공부에도 함께했는데, 당시 여자아이에게는 드문 일이었습니다.
여덟 살의 신동
어려서부터 뛰어난 시인으로 인정받았지만, 여성이라 벼슬에 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여덟 살에 달나라의 상상 속 궁전을 소재로 한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을 지어 시의 천재라는 칭송을 들었습니다. 그의 시에는 도교의 신선과 하늘의 궁궐, 조선 규방의 좁은 담장을 훌쩍 넘어서는 여행이 자주 등장합니다.
불행했던 결혼
1577년 문관의 아들 김성립과 혼인했습니다. 동생 허균의 기록에 따르면 결혼 생활은 불행해서, 남편은 자주 그를 집에 홀로 두었고 시어머니와의 사이도 차가웠습니다. 딸과 아들을 낳았지만 딸은 한 해를 넘기지 못했고 아들도 몇 해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혼의 자세한 사정은 불확실하고 추측도 섞여 있다고 학자들은 말하지만, 외로움과 슬픔이 그의 작품 상당수를 관통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라질 뻔한 시
1589년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자신이 쓴 글을 불태워 달라고 부탁했고 작품의 상당수가 그 뜻대로 불탔습니다. 남은 시는 뒤에 모아졌고, 1913년에 나온 『난설헌집』에는 고시, 율시, 절구 등 여러 형식의 한시 211수가 실려 있습니다. 그의 시는 조선 밖에서도 높이 평가되어, 세상을 떠난 뒤 명성이 더 커졌습니다.
공감의 시, 그리고 오늘
자기 마음만 들여다본 것은 아닙니다. 「빈녀음(가난한 여인의 노래)」에서는 남의 고운 옷을 지으면서 정작 자신은 한 벌도 갖지 못한 가난한 처녀의 처지를 안타까워합니다. 여성의 이름이 좀처럼 기록되지 않고 글도 남기 어려웠던 사회에서, 허난설헌은 지금도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한 시인입니다. 강릉의 생가 터는 기념 공간이 되었고, 교과서에도 조선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실려 있습니다.
허난설헌으로 배우는 영어 표현
| 표현 | 뜻 | 예문 |
|---|---|---|
| a child prodigy | 신동 | She was a child prodigy. |
| ahead of her time | 시대를 앞서간 | Her ideas were ahead of her time. |
| pour your heart out | 속마음을 털어놓다 | She poured her heart out in poems. |
| a pen name | 호, 필명 | Nanseolheon was her pen name. |
| against the odds | 온갖 어려움을 딛고 | Her poems survived against the odds. |
연습 과제: '시대를 앞서간' 사람 한 명을 골라 "ahead of their time", "against the odds"를 넣어 영어 세 문장으로 소개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