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전, 착한 동생 이야기만은 아니다: 매품 파는 흥부, 평양의 흥보, 놀부를 위한 변론

흥부전은 권선징악 동화로 알려졌지만 몰락 양반과 신흥 부자를 함께 비꼰 판소리계 소설이다. 가장 오래된 이본 흥보만보록과 남원 흥부마을까지 정리했다.

흥부전의 숨은 주제는 '착하면 복 받는다'가 아니라, 무능한 몰락 양반과 돈만 아는 신흥 부자를 함께 비꼬는 조선 후기 사회 풍자라는 것이 국문학계의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형제간의 우애와 권선징악은 겉으로 드러난 주제이고, 그 이면에서는 신분제가 흔들리던 시대의 빈부 갈등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이 글은 줄거리 대신, 어릴 때 동화책으로만 만난 흥부전에서 잘 보이지 않던 부분, 곧 매품 대목과 가장 오래된 이본, 그리고 놀부를 다시 보는 시각을 정리해 봅니다.

줄거리는 한 문단으로

부잣집 두 아들 가운데 형 놀부는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반씩 나누라는 유언을 어기고 동생 흥부 식구를 내쫓습니다. 굶다 못해 형 집을 찾은 흥부는 놀부 아내에게 밥주걱으로 뺨을 맞는데, 붙은 밥풀을 떼어 먹고는 반대쪽 뺨도 쳐 달라고 합니다. 다리 다친 제비를 고쳐 주자 제비가 박씨를 물어 오고, 박에서 재물이 쏟아집니다. 놀부는 일부러 제비 다리를 부러뜨렸다가 박에서 나온 도깨비, 빚쟁이, 흙탕물에 망하고, 결국 잘못을 뉘우쳐 형제가 화해합니다. 우리말 자료는 놀부가 망한 뒤 흥부의 도움으로 살아간다고 정리합니다.

흥부인가 흥보인가

판소리 쪽에서는 흔히 '흥보가'라고 부르고, 국문본 소설도 '흥보전'이라는 이름으로 전합니다. 판소리 흥보가는 박 타는 대목이 중심이라 '박타령'이라고도 불립니다. 흥부전은 판소리 다섯 바탕 가운데 하나인 흥보가의 사설이 글로 정착한 판소리계 소설이고, 그래서 운문체 문장에 양반의 말과 서민의 말이 뒤섞여 있습니다. 소리판에서 흥보가는 무엇보다 웃음으로 사랑받는데, 놀부의 심술을 늘어놓는 '놀부 심술' 대목을 빠른 자진모리장단으로 부르는 것이 유명합니다. 다만 뒷부분은 앞부분만큼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고, 명창들의 더늠이 덜 쌓였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동화책에서 빠진 매품 대목

동화책에서는 흥부가 그저 착하고 가난하게만 나오지만, 소설과 판소리에는 흥부가 돈을 받고 남 대신 볼기를 맞는 '매품'을 팔러 병영에 가는 대목이 있습니다. 흥부전의 특징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자기 볼기가 매품 맞는 것 말고는 쓸모가 없다고 장황하게 늘어놓는 자기 비하적 풍자입니다. 병영까지 가는 말 삯조차 걱정해야 하는 처지, 서른 날에 아홉 끼를 먹는다는 '삼순구식' 같은 말이 이 이야기의 가난이 얼마나 구체적인지를 보여 줍니다. 웃기지만 웃고만 넘길 수 없는 대목이고, 이 장면을 알고 나면 흥부를 단순한 '착한 사람'으로만 보기 어려워집니다.

놀부를 위한 변론

조선 후기에는 신흥 계급이 등장하면서 유교적 질서의 뿌리가 흔들렸습니다. 이 시대 배경에 비추면 흥부는 무능하고 몰락한 양반, 놀부는 탐욕스러운 신흥 상인 계급을 비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어권 연구도 같은 구도를 소개하며, 민담에서 온 '표면적 주제'보다 판소리가 더한 '이면적 주제', 곧 부유한 하층민과 가난한 양반의 출현이 기존 질서를 흔드는 현실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정리합니다. 놀부를 무작정 감싸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놀부가 악인인 동시에 시대가 낳은 인물이라는 점, 흥부 역시 비판의 대상이라는 점을 보면 이 소설이 훨씬 어른스러운 작품으로 읽힙니다. 장남을 가장 중히 여기는 가치관을 뒤집는 이야기라는 점도 외국 독자들이 흥미롭게 보는 부분입니다.

가장 오래된 흥부전은 평양 이야기였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이본은 《흥보만보록》으로, 1833년 무렵 필사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본은 두 가지 점에서 다른 이본과 크게 다릅니다. 배경이 삼남 지방이 아니라 평양 서촌이고, 흥부의 성을 '장'으로 적어 아버지 이름이 장천이며 흥부가 무과에 급제해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다른 이본들은 대개 형제의 성을 밝히지 않거나, 박과 소리가 같은 '박'씨, 제비를 뜻하는 한자와 소리가 같은 '연'씨로 적습니다. 우리말 위키백과는 이 본이 2017년에 발굴되었다고 전합니다.

그 밖에 대표적인 판본은 1880년 무렵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25장본 경판본과, 1870년에서 1873년 사이에 정리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재효의 《박타령》입니다. 하버드 옌칭 도서관에는 조선어를 배우던 일본인 하시모토 아키미가 1853년 텍스트를 1897년에 옮겨 적은 필사본도 남아 있습니다.

흥부는 남원 사람이었을까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를 흥부가 태어난 곳으로, 아영면 성리를 흥부가 자리 잡고 부자가 된 곳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주민들은 두 곳에 흥부전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고 흥부전의 원형 격인 설화가 전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1991년에는 아영면 성리에서 흥부전 줄거리와 비슷한 천석꾼 임씨의 약력을 새긴 비석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남원시는 이곳을 '흥부마을'로 꾸며 관광객을 모으고 있지만, 앞서 본 《흥보만보록》의 배경은 평양이니 흥부의 고향은 판본마다 다르다고 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흥부전의 먼 친척들

흥부전은 한 사람이 성공하자 다른 사람이 흉내 냈다가 실패하는 '모방담'의 전형입니다. 신라의 방이 설화, 그리고 다리 다친 제비를 고쳐 준 처녀는 보물 박을 얻고 흉내 낸 이웃 처녀는 독사가 든 박을 얻는 몽골의 '박 타는 처녀' 이야기가 아주 닮았습니다. 몽골 이야기가 한국에서 건너간 것인지, 반대로 한국이 받아들인 것인지는 의견이 갈립니다. 서양에서는 프랑스 동화 〈요정〉(다이아몬드와 두꺼비)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흥부전으로 배우는 영어 표현

영어 뜻 예문
repay a kindness 은혜를 갚다 The swallow repaid Heungbu's kindness.
greedy 욕심 많은 Nolbu was greedy and cruel.
disinherit 상속권을 빼앗다 Nolbu took the whole inheritance.
a hidden theme 이면적 주제 The tale has a hidden theme.
a rags-to-riches story 가난뱅이가 부자 되는 이야기 It is a rags-to-riches story.

연습: "a hidden theme"을 써서, 어릴 때 읽은 동화 한 편의 숨은 주제를 영어 두 문장으로 설명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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