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 작자 논쟁 정리: 허균설의 근거, 반론, 그리고 '최초의 한글소설'이라는 말의 함정

홍길동전은 허균 작으로 배웠지만 근거는 택당집 한 줄뿐이다. 반론의 논거, 설공찬전·노혁전 발견, 실존 홍길동과 율도국까지 정리했다.

홍길동전의 작가는 교과서에서 허균이라고 배우지만, 실제로는 허균이 지었다는 기록이 이식의 《택당집》 한 줄에서 시작될 뿐이고, 지금 우리가 읽는 한글본을 허균이 썼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어권 연구에서도 허균 작자설은 '전통적인 귀속'으로 소개되고, 최근 연구가 이를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고 정리됩니다. 줄거리는 다들 아시니, 이 글에서는 학교에서 잘 다루지 않는 쪽, 즉 작자 논쟁의 구체적인 근거와 '최초의 한글소설'이라는 말이 왜 조심해서 써야 하는 표현인지, 실존 홍길동과 율도국 이야기까지 차례로 짚어 보겠습니다.

줄거리를 한 번만 짧게

세종 때 재상 홍 판서의 얼자로 태어난 길동은 무예와 예의를 익혔지만 서얼이라는 신분 때문에 뜻을 펴지 못해 한탄합니다. 다른 첩이 보낸 자객의 손에서 살아난 뒤 집을 떠나 도적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고, 무리를 활빈당이라 부르며 탐관오리와 타락한 승려를 징치합니다. 조정이 잡지 못하자 병조판서 벼슬을 내려 불러들이는데, 길동은 임금 앞에서 이를 사양하고 나라를 떠나겠다고 알린 뒤 공중으로 사라집니다. 그 뒤 어머니와 무리를 이끌고 율도국으로 건너가 나라를 세웁니다. 영어권 요약은 여기에 하나를 더 강조합니다. 왕이 된 길동이 자기 아들들을 차별 없이 똑같이 대한다는 결말입니다. 첫 장면의 상처가 마지막 장면에서 조용히 해소되는 구조라는 점을 기억해 두면 다시 읽을 때 훨씬 재미있습니다.

허균설은 어디서 나왔나

허균을 작가로 적은 최초의 문헌은 이식의 《택당집》이고, 여기에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어 《수호전》에 견주었다는 뜻의 구절이 있습니다. 근대에 이 기록을 처음 끌어온 사람은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다카하시 도루로, 1927년 글에서 택당집을 인용해 허균 작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제자 김태준이 1930년 《조선소설사》에 이를 따르면서 많은 학자가 정설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다카하시가 양반인 허균이 쓴 최초의 홍길동전은 한문소설이었을 것이라고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허균의 한글소설'이라고 외운 공식은 출발점에서부터 이미 어긋나 있었던 셈입니다.

이식은 허균의 제자였고 나이 차도 열다섯 살 정도라 직접 보고 들은 증인으로 믿을 만하다는 것이 지지 측의 논리입니다. 허균(1569–1618) 자신도 신분 질서에 비판적인 진보적 문인이었고, 광해군 때 역모 혐의로 처형된 인물이라 이야기의 반골 기질과 잘 맞아 보였습니다. 허균의 〈호민론〉에서 말한 '세상을 바꾸려는 백성'의 상징이 홍길동이라는 해석도 이 쪽에서 나옵니다.

반론의 근거는 생각보다 구체적이다

반대쪽 논거는 꽤 구체적입니다. 첫째, 현전 홍길동전에는 장길산이 언급되는데 장길산은 1690년대 이후에 알려진 인물이라 허균 사후 70년 이상 차이가 납니다. 선혜청 역시 1608년 이후 생겨 대동법 시행과 함께 알려진 기관이라 1618년에 죽은 허균과 시기가 잘 맞지 않습니다. 둘째, 1794년 기록인 《상서기문》에 실린 당시 유행 소설 목록에 비슷한 영웅소설 《소대성전》은 있는데 홍길동전은 없습니다. 셋째, 택당집 뒤로 허균을 작자로 적은 기록들은 대부분 택당집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윤석 교수는 이런 근거를 들어 이식이 말한 홍길동전과 지금 전하는 홍길동전이 같은 작품이라는 근거가 없다고 봅니다.

영어권에서는 역사학자 민수 강(Minsoo Kang)이 2013년 논문에서 더 나아가, 허균설이 결함 있는 연구에 기대고 있으며 현전본은 19세기 중반 무렵 서얼이나 평민 출신의 무명 작가가 썼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 2019년에는 황일호(1588–1641)가 홍길동을 주인공으로 쓴 《노혁전》이 발굴되어, 홍길동 이야기를 소설로 쓴 사람이 허균만은 아니었다는 점도 드러났습니다. 물론 허균 지지 측은 후대에 첨삭됐을 뿐 허균의 소설이 바탕이었다는 점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고 맞섭니다. 현재로서는 "허균이 지었다고 전한다"가 가장 정확한 말입니다.

'최초의 한글소설'은 왜 조심해서 말해야 하나

오랫동안 홍길동전은 최초의 한글소설로 소개됐지만, 1997년 채수가 1511년 무렵 지은 《설공찬전》의 국문본이 발견되면서 이 표현에 논란이 생겼습니다. 설공찬전은 한문 원작을 한글로 옮긴 것이라 '처음부터 한글로 쓴 소설'과는 다르다는 반론이 있고, 반대로 홍길동전은 허균이 썼다는 원본 자체가 전하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영어 위키백과도 이 문제를 '최초의 순한글 소설' 지위 논쟁이라는 항목으로 따로 다룹니다. 결국 '한글소설'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문제라, 단정하기보다 "초기 한글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말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실존 홍길동은 소년 영웅이 아니었다

소설 속 길동은 도술을 쓰는 젊은 의적이지만, 연산군 때의 실존 인물 홍길동(洪吉同)은 노인이자 외척 신분의 도적이었고, 도술 대신 형 홍일동의 관복을 입고 도적질을 했다고 합니다. 영어권 자료는 1500년에 체포된 도적의 기록과 함께 16세기 초의 임꺽정을 인물상의 바탕으로 꼽습니다. 소설이 배경을 일부러 세종 때로 옮긴 것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율도국을 두고는 류큐국이라는 주장, 부안 위도가 모델이라는 추측 등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 오히려 요즘 비평에서는 적서 차별로 타자화된 홍길동이 율도국을 점령해 그곳 사람들을 타자화하는 결말이 식민주의적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통쾌한 결말로만 기억하던 분이라면 한 번쯤 다르게 읽어 볼 만한 시각입니다.

세계에서는 어떻게 읽히나

중국 쪽 연구자 엘런 위드머는 홍길동전을 《수호전》에서 많은 것을 가져온,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후손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영어권에서는 흔히 로빈 후드와 비교되고, 민수 강은 이 작품을 문학적 성취와 문화적 영향 모두에서 한국 고전 산문 소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우리가 서류 견본에 '홍길동'을 쓰는 습관도 외국 독자에게는 미국의 '존 도(John Doe)'와 같은 관습으로 소개됩니다.

홍길동전으로 배우는 영어 표현

영어 뜻 예문
traditionally attributed to 전통적으로 ~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The novel is traditionally attributed to Heo Gyun.
an illegitimate son 서자, 얼자 Gildong was born an illegitimate son.
a righteous outlaw 의적 He became a righteous outlaw.
a placeholder name 견본용 가상의 이름 Hong Gildong is a placeholder name in Korea.
the authorship is disputed 작자가 논쟁 중이다 The authorship is still disputed.

연습: "traditionally attributed to"와 "disputed"를 써서, 작자가 불확실한 다른 고전 한 편을 영어 두 문장으로 소개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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